365일 한시-고섬高蟾 금릉에서 저물녘에 바라보며金陵晩望

금릉에서 저물녘에 바라보며金陵晩望/당唐 고섬高蟾

曾伴浮雲歸晚翠 예전엔 뜬구름 저녁 산으로 돌아가는 것 같더니
猶陪落日泛秋聲 지금도 지는 해에 가을 소리 떠다니는 것 같네
世間無限丹青手 이 세상에 그림 그리는 사람 무수하지만
一片傷心畫不成 한 조각 슬픈 이 마음은 그려낼 수 없으리

고섬(高蟾)은 당나라 때 하북성 창주(滄州) 출신의 시인으로 생몰년을 알 수 없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10년 동안 과거에 떨어지다가 876년에 급제하여 어사 증승(御史中丞)을 지냈다.

이 시는 육조 시대 남조의 도읍이었던 금릉(金陵), 즉 지금의 남경에 가서 저물녘 푸른 산을 감도는 구름과 낙조 속에 가을벌레 소리를 듣고 고금 왕조의 쇠락을 생각하며 회고와 애상에 젖은 감회를 그렸다. 제목의 만망(晩望)은 저물녘에 1, 2구에서 묘사한 풍경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며, 금릉은 바로 시인이 머무는 곳이다.

첫 두 구가 교묘한 대를 이루고 있다. 증반(曾伴)은 유배(猶陪)와, 부운(浮雲)은 낙일(落日)과, 귀(歸)는 범(泛)과, 만취(晚翠)는 추성(秋聲)과 각각 대를 이루고 있다. 해석 순서는 뒤의 5언을 새긴 뒤에 증반(曾伴)과 유배(猶陪를 풀이해야 한다. 마치 5언 시 앞에 두 글자씩 더 보탠 것 같다. 반(伴)은 ‘짝하다’, 배(陪)는 ‘견주다’라는 의미인데 이 두 말은 모두 뒤에 서술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부운귀만취(浮雲歸晚翠)와 낙일범추성(落日泛秋聲), ‘뜬구름 저녁에 푸른 산으로 돌아가고 지는 해에 가을 소리 들린다.’는 다소 도참서에나 나올 법한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
삼국 시대 동오와 남조의 동진, 송, 제, 진, 이 왕조는 모두 금릉에 도읍을 했는데 모두 단명하였다. 왕조의 흥망이 뜬구름처럼 일어났다가 마치 아침에 일어난 구름이 저녁에 스러지는 것처럼 몰락한 것이다. 시인은 이 금릉에 도읍했던 남조의 여러 왕조가 무상하게 스러져 간 것을 첫 구의 경치에 담아낸 것이다.

또 당나라는 현종 때 극성에 달했다가 안록산과 연이은 사사명 등의 반란으로 그 기세가 크게 꺾여 이후는 지방 번진들이 할거하면서 쇠약해져 갔다. 양행밀(楊行密)이 892년 양주(揚州)을 점령하여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 되었는데 시인은 이러한 시대상을 보면서 이를 떨어지는 해에 가을 소리가 떠다닌다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즉 금릉에 도읍한 남조의 여러 왕조는 마치 뜬구름이 저녁이 되어 푸른 산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사라지더니, 지금 당나라도 번진이 할거하여 마치 지는 해에 가을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이다. 푸른 산으로 돌아가는 구름과 지는 해에 가을 소리를 바라보고 있는 시인은 이곳이 옛날 흥망성쇠가 무상했던 금릉임에 착안하여 그 무상감과 애상감을 이렇게 아름다운 비유와 대구로 묘사한 것이다. 이 시인의 탁월한 솜씨에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청산으로 돌아가는 구름과 지는 해에 가을벌레 소리를 접하고 있는 시인의 마음에 얼마나 큼 감회가 일 것인가? 풍광과 역사의 회고가 시인의 가슴에서 만나 빚어내는 만단정회와 깊은 비애감! 이를 이 세상에 그 어떤 화공이 그려낸단 말인가? 그래서 시인은 세상에 화공이 많지만 그려낼 수 없다고 단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경주나 부여, 평양 등을 방문하여 청산에 돌아가는 구름과 지는 해를 보고 가을 벌레소리를 듣는다면 그 감회가 오죽하겠는가? 앞의 두 구는 대구와 비유가 정교하고 정경이 융합되어 있어 좋고, 뒤의 두 구는 그 정회의 깊이를 남다르게 표현한 솜씨가 참으로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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