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외번역지원 사업이 국내 출판에 끼치는 영향

현재 한국 출판시장에서 한 해에 출간되는 신간 도서 8만여 종 중 4분의 1은 번역서이며 동시에 연간 베스트셀러 상위 30종 중 16종이 번역서이기도 하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출판시장에서 번역서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그리고 국내 번역서의 국가별 비중은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12~2015년 통계를 기준으로 일본이 1위, 영미권이 2위이고 프랑스, 독일, 중국이 엇비슷한 수준으로 3~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 2위인 일본과 영미권이 각기 매년 5천여 부, 4천여 부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중국은 4백여 부에 그쳤다. 게다가 중국 번역서는 베스트셀러가 적은 철학, 사회과학, 역사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출판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더 떨어진다. 예를 들어 2018년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상위 200위 중 중국 번역서는 자기계발서인 120위인 쉬셴장, 《하버드 첫 강의 시간관리 수업》 단 1권뿐이다. 그 이전을 생각해도 1990년대 후반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과 《허삼관 매혈기》 이후로는 일반 독자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남은 중국 베스트셀러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중국 번역서의 출간 종수는 2012년 364종, 2013년 318종, 2014년과 2015년 각기 480종으로, 수치가 떨어지기는커녕 꾸준히 높아졌다. 독자에게 외면 받는 종류의 책은 출판사에게도 외면 받는 것이 당연한 자본주의 출판시장에서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논리와는 전혀 무관한 이유로밖에 설명이 안 되며 또 그 이유는 국내가 아니라 중국 번역서의 본국인 사회주의 중국의 특수한 대외 문화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출처 Hunan Today

2007년 제17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식 제기된 ‘저우추취(走出去)’ 전략은 무엇보다 경제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과 초국적 경영을 독려, 지원하는 것이었지만, 문화 분야에서도 ‘중국 문화의 세계 보편화’와 ‘중국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대외 선전’을 표방하여 국제 출판 저작권 교류 분야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구체적인 방안은 바로 해외번역지원 사업이었다. 중국 정부는 2007년 중국도서대외추광계획(中國圖書對外推廣計劃. 이하 ‘도서대외’), 2009년 경전중국국제출판공정(經典中國國際出版工程. 이하 ‘경전중국’), 2010년 중화학술외역항목(中華學術外譯項目. 이하 ‘중화외역’) 2014년 실크로드서향출판공정(絲路書香出版工程. 이하 ‘실크로드서향’)을 국무원, 신문출판광전총국, 국가사회과학기금, 중국편집학회의 주도 하에 차례로 출범시켜 중국의 현재와 과거의 우수한 문화와 학술 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발전상과 주요 정책을 담은 주요 도서의 해외 번역, 출판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비공식적으로 그 지원 액수는 연간 700억 원을 상회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지원 도서 종수는 2018년 기준, 연간 672 종에 이른다.

위 해외번역지원 사업들의 공통된 업무 프로세스는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중국 출판사와 번역자의 도서 선정 → ② 해외출판사와의 출판 계약 → ③ 출판 계약서를 첨부한 지원 서류를 사업 본부에 제출 → ④ 사업 본부의 심사를 통한 수혜 도서 최종 선정과 발표, 지원액의 50% 지급 → ⑤ 2년 전후의 기간 내에 해외 번역, 출판 → ⑥ 해외 출판 도서의 샘플본을 사업 본부에 제출, 지원액의 나머지 50% 지급

위의 프로세스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해외출판사와의 출판 계약이다. 중국 측에서 아무리 좋은 책을 선정해도 해외출판사가 그 책을 자국에서 출판했을 때 기대되는 경제적, 문화적 효과를 고려해 계약에 동의하지 않으면 아예 사업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업 신청의 주체인 중국 출판사와 번역자는 대단히 적극적이다. 백퍼센트 국유기업인 중국 출판사에게 이 사업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이고, 주로 대학교수인 번역자에게 이 사업을 통해 얻어지는 명예와 높은 고료는 대단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출처 文匯

그러면 중국 해외번역지원 사업이 지원하는 도서 중 한국어로 번역되는 도서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위에서 이미 연간 지원 도서 종수가 2018년 기준, 672종이라고 밝혔지만 ‘실크로드서향’은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한 것이어서 고대 실크로드 주변의 약소국가만 지원 대상이고 한국은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크로드서향’의 2018년 지원 도서 종수 286종을 제외하고 ‘경전중국’, ‘도서대외’, ‘중화외역’, 이 세 사업의 2018년 지원 도서 386종 중 한국어로 번역되는 도서의 비중을 계산하면 64종, 16.58%에 이른다. 더 세분화해 살피면 지원 도서가 주로 난이도 높은 학술서인 ‘도서대외’와 ‘중화외역’의 경우에는 한국어 비중이 각기 29%, 15.68%이고, 대중 교양서와 아동서도 지원 범위에 들어가는 ‘경전중국’은 5.94%이다. 이는 같은 한자문화권인 한국의 높은 중국학 수준을 반영한다. 어쨌든 위의 통계 수치에 근거하여, 매년 중국의 해외번역지원 사업이 국내 출판사에 번역비를 지원해 출판하게 하는 도서가 연간 60여 종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는 결코 무시할 만한 숫자가 아니다. 연 평균 400여 종이 출판되는 한국의 중국 번역서 시장에서 무려 15%의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본질적으로 국내 출판시장의 기본적인 수요-공급 원칙에 반하는 외부적, 인위적 변수로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는다. 긍정적인 면은,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는 도저히 출판되기 어려운 중국의 지식 콘텐츠를 우리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장자 금주금역莊子今注今譯》이나 《중국 회화사》 같은 방대한 학술서가 그 예이다. 이런 책들은 독자 수가 한정돼 있고 번역비가 많이 들어 정상적인 경로로는 한국에서 출판될 수 없다. 반대로 부정적인 면은, 아무래도 지원 도서 선정의 주도권이 중국 측에 있으므로 우리 독자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 중국 체제 선전 도서가 한국에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이야기習近平講故事》, 《중국적 가치: 그림으로 보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근원中國價値: 圖說社會主義核心價値觀的根與源》등이 그 예이다.

이런 양면성을 직시하여 긍정적인 면을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면을 최소화하는 것은 오로지 중국 해외번역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국내 출판사의 몫이다. 중국 측에서 번역비 지원을 전제로 직접, 혹은 저작권 에이전시를 통해 특정 도서의 출판을 의뢰해올 때, 그 도서가 위의 긍정적인 유형에 속하는지, 부정적인 유형에 속하는지 판단하여 냉정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나아가 직접 중국의 양서를 선정해 거꾸로 중국 측에 번역비 지원을 제안할 수 있다면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 국내 출판사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권당 적게는 8백만 원, 많게는 3천만 원에 이르는 지원비 규모에 혹하기 쉽고, 또한 직접 중국 원서를 선정해 중국 측에 제안할 만큼 전문적이거나 전략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얼마 전 ‘경전중국’ 사업이 발표한 2019년 지원 도서 93종의 명단을 확인하면 중국 해외번역지원 사업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우려가 더 심화된다. 2018년 전체 지원 도서 101종 중 6종에 불과했던 한국어 번역 예정 도서는 2019년에는 전체 93종 중 18권으로 3배 이상 늘었고 그중 무려 11권이 이념, 체제 선전 도서이다. 예를 들어 《시진핑의 언어의 힘習近平的語言力量》, 《인민 중심의 새 발전 이념의 견지堅持以人民爲中心的新發展理念》, 《색 사회주의의 향촌 진흥 노선을 걷다走中國特色社會主義鄕村振興道路》등이다. 이는 아무래도 시진핑 체제의 대외 선전 전략의 심화를 의미하는 듯하며 실제로 올해 초 게시된 ‘경전중국’ 사업 신청 안내서를 보면 ‘2021년 중국 공산당 성립 100주년’을 맞이해 관련 주제 도서를 더 적극적으로 신청하라는 식의 문구가 눈에 띈다.

물론 중국의 체제, 이념 선전 도서라고 해서 출판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중국 해외번역지원 사업 관련 도서를 계약, 출판하는 국내 출판사로서는 여러모로 신중한 태도가 요구된다. 국내 중국 번역서 시장이 아직 규모가 작아서 외부적 영향이 쉽게 가시화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이제 영상, 게임 분야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출판 분야에서도 중국의 슈퍼 파워를 경계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