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유운柳惲 다듬이질 시擣衣詩 其一

다듬이질 시擣衣詩 其一/ 남북조南北朝 유운柳惲

孤衾引思緒 작은 이불 그리움 일으키고
獨枕愴憂端 베개 하나 근심에 슬퍼지네
深庭秋草綠 깊은 뜨락 가을 풀 푸르고
高門白露寒 높은 대문 흰 이슬 차갑네
思君起清夜 당신 생각에 한밤에 일어나
促柱奏幽蘭 줄 조여 유란곡을 연주하네
不怨飛蓬苦 날리는 망초 원망치 않지만
徒傷蕙草殘 시드는 혜초 공연히 슬프네

이 시는 동일 제목에 5편으로 되어 있는 일종의 연시(聯詩)이다. 구분은 되어 있지만 내용이하나로 이어져 있으니 실제로는 5언 20운 40구로 되어 있는 장시(長詩)이다. 멀리 북쪽 변방으로 군대에 간 남편을 위해 겨울옷을 만들기 위해 이웃집 여인들과 함께 다듬질하면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줄거리이다.

이 시는 그중 가장 앞에 놓인 한 수인데 가을이 와서 남편이 없는 빈방에서 그리워하고 또한 슬퍼한다는 내용이다. 육조 시대에는 이름 다듬이질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았다. 다듬이질은 자연스럽게 남편을 기다리는 부녀들의 정한을 떠올리게 되어 일종의 규원시(閨怨詩)로 자리잡은 것이다.

고금(孤衾)과 독침(獨枕)은 1인용 이불과 베개 1개를 말한다. 남편이 있으면 큰 이불을 둘이 덮고 자고 베개 2개를 나란히 놓고 마주 보며 잠들 텐데, 지금 혼자라 이불도 작은 것 하나를 아무거나 되는 대로 덮고 자고 베개도 하나뿐이다. 이걸 보면 절로 남편의 부재와 남편에 대한 걱정으로 그립고 슬퍼진다.

심정(深庭)과 고문(高門)은 실제로도 그럴 수 있겠지만 남편이 없으니 집이 더 크고 허전해 보이고 대문도 더 높아 보이는 심리가 반영된 말이다. 집이 깊고 대문이 높으니 귀족이나 부잣집을 연상할 수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유란(幽蘭)은 유란곡(幽蘭曲)을 말한다. 이 곡은 금곡(琴曲)의 이름으로 초나라 송옥(宋玉)이 창작한 것이다. 유란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난초꽃을 말한다. 아무도 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 난초꽃! 김소월의 산유화와 같은 이미지인데 바로 이 시의 화자를 비유한 말로 마지막 혜초(蕙草)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 시에서 가장 묘미가 있는 구절은 마지막 2구이다. 괴롭게 날리는 망초는 원망하지 않지만 시들어가는 혜초를 보며 부질없이 상심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괴롭게 이리저리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다니는 것은 지금 변방에 징집되어 가 있는 남편을 말할 것이다. 그럼 남편이 변방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정말로 그렇다면 남편에게 왜 겨울에 밤새 다듬이질을 해 옷을 만들어 보내겠는가? 이 말은 남편이 변방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고생하느라 내가 있는 집에 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변방에서 거지꼴로 다니는 것은 남편의 의사가 아니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그래도 여인의 원망이 없을 리 없지만 이 여인은 그런 것은 원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혜초가 가을이 와서 서리를 맞아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슬퍼진다고 한다. 혜초 역시 난초와 함께 굴원이 노래한 향초로, 현인이자 군자를 상징하는 풀이다. 여기서는 바로 이 시의 화자 자신을 상징하고 있다. 남편이 군대에서 병역 의무를 하느라 못 돌아오는 것은 원망하지 않지만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거울로 보면 절로 슬퍼질 것이다. 고대의 병역은 정해진 기한이 없는 경우가 많아 10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 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정서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80 이상 늙은 사람들에게 이 시를 풀어서 들려주면 아마도 무슨 말을 할 듯하다. 문득 6.25 때 잠시 피신 갔다가 행방불명된 남편을 평생 기다리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한 편의 시로 먼 과거의 어느 마실에 다녀오는 기분이다.

유운(柳惲, 465~517)은 산동성 해현(解縣) 사람으로 남조 양(梁)나라 때 심약과 함께 문학을 주도한 사람이다. 그는 시를 잘 지어 출세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거문고와 바둑에도 깊은 안목이 있었다.

唐 张萱 <捣练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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