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오楊照 인터뷰訪談 : 고전에서 또 다른 중국을 발견하다從經典中發現另一個中國

양자오 인터뷰: 고전에서 또 다른 중국을 발견하다
楊照:從經典中發現另一個中國|訪談

.楊照, 출처 香港大學

양자오楊照

독서를 통해 전통 문화에 접근하고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독서는 동시에 우리에게 문제를 제시한다. 우리는 어떻게 선인들의 고전을 읽어야 할까? 또 우리는 왜 고전을 배워야 할까? 이에 대해 양자오(楊照)는, “우리와는 다른 시간적, 공간적 환경에서 생산된 그 문헌들에는 인간의 경험과 느낌이 기록되어 있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 그 경험과 느낌에 호응하거나 우리의 것과 대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와 유사한 경험과 느낌을 읽어내 시공을 넘어 동감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속에서 우리와 다른 경험과 느낌을 읽어내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대담 : 문학신문 기자 진잉(金瑩)

“역사는 마땅히 우리가 인류 경험의 다양성과 인류 삶의 전체적인 가능성을 보게 해주고, 나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갖가지 현실 상황에 도전하고 의문을 제기하게 해줘야 합니다.”

Q

《상서》, 《시경》부터 《순자》, 《전국책》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 고전 10권에 대한 선생님의 자세히 읽기와 독서 안내는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한 동기에 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양자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저는 ‘타이완민룽(敏隆)아카데미’에서 모두 13기, 130회에 달하는 ‘중국사의 재인식’이라는 제목의 커리큘럼을 연속으로 진행했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신석기시대부터 신해혁명에 이르기까지 정리했지요. 그 과정에서 중국이 인류 문명의 독특한 케이스로서 기원전 3000년부터 현재까지 동일한 문자, 동일한 기호 체계가 5천 년간 단절 없이 이어져왔으며 우리가 고전 속에서 또 다른 중국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실로 얻기 힘든 기회임을 절감했습니다.

‘중국사의 재인식’이 끝난 뒤, 수강생들이 제게 계속 더 배우고 싶어 해서 저는 또 중국 전통 고전을 읽는 커리큘럼을 개설했습니다. 《상서》, 《시경》부터 천천히 《논어》, 《맹자》까지 강의하면서 세심하게 선독(選讀)과 해설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5년간 제게 중국사 강의를 들었는데, 저는 이번에는 제 주관적인 선택과 판단을 자제하고서 그들이 스스로 원전에 접근하고 원전을 통해 중국사를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Q

이 시리즈의 전체 서문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통적인 독법, 그러니까 이 텍스트들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답습하지 않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져 온 수많은 견해들은 특별히 자세하게 검증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말로 고전 원문의 의미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훗날 다른 시대의 다른 현실적 요구로 인해 ‘유용하지만’ 진실을 잃은 해석이 가해진 것인지 말이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 때문에 ‘역사적 독법’과 ‘문학적 독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역사적 독법’과 ‘문학적 독법’이 무엇인지 정의해주시겠습니까?

양자오: 역사학에서 저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사상사입니다. 그래서 전통 전적을 읽을 때 몇 가지 기본 모델을 갖고 있습니다. 즉, 전적을 읽을 때면 그 전적이 존재했던 시대로 돌아가 그 시대에 어떤 이들이 살았으며 그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무슨 문제를 제시했는지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사상사의 한 가지 방법론적인 깨우침은 제게 대단히 유용한데, 그것은 옛날 사람들이 남긴 모든 자료, 특히 사상사적인 자료를 모종의 대답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 명의 독자로서 우리는 먼저 캐묻고 문제를 제시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뭐라고 대답하고 있는가?”, “그가 물어봐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라고 말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옛날 사람이 잘 대답했는지 더 적절히 평가할 수 있고, 혹은 그가 제시한 답이, 유사한 문제와 부딪쳤을 때 우리가 제시하는 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역사적 독법’입니다. 전적을 그것이 생산된 역사적 시대 배경 속으로 돌려놓고 그 특정 배경 아래, 그러니까 시대를 무시하는 보편적 시각을 멀리한 채 그 전통 고전들을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전제인 동시에 ‘역사적 독법’의 조작적 정의입니다.

제게 있어서 ‘역사적 독법’은 주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고전들은 우리를 위해 써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아주 다른 시대에 생산되었고 우리와 아주 다른 삶을 산 선인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이질적인 성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다. 역사는 마땅히 우리가 인류 경험의 다양성과 인류 삶의 전체적인 가능성을 보게 해주고, 나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갖가지 현실 상황에 도전하고 의문을 제기하게 해줘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다른 학문들과 가장 근본적으로 다른 기능이면서 역사학의 존재 이유이자 대체 불가능한 핵심 가치입니다.

Q

‘역사적 독법’이 역사 속에서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문학적 독법’은 무엇인가요?

양자오: 읽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역사적 독법의 방식만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고전들이 그토록 기나긴 시공간을 넘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어떤 매력이 있어서일까요? 그것들을 읽어보면 틀림없이 우리가 같은 것을 추구할 만한 부분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 고전들이 우리를 위해 써진 것이 아님을 확인함으로써 오만과 자기중심적 태도를 배제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공감 능력을 키우고 동원하여 상상력을 통해 그들의 그런 이질적 삶의 세계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정신적 유산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감성과 지성의 능력을 확장해 본래 이해하지 못했던 이질적 정경(情景)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에게 있거나 있을 수 있는지 몰랐던 풍부한 감수성까지 획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는 제공되지 않는 경험, 단지 오래전의 시공간에만 존재했던 경험이 문자의 힘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자극을 주는 것을 느낍니다. 제 생각에 이 부분은 문학사의 독법과 비교적 가깝습니다. 고전과 우리가 처한 상황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보여줌으로써 고전과 개인 사이에 감정적인 연관성을 구축해주지요.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흥미입니다.”

Q

전통 문화를 대중에게 보급할 때, 대다수의 학자들은 자신이 보다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전에 ‘중간독자’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은 스스로 특정한 청중과 독자를 선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독자에게 읽히고 인정을 받기를 바라십니까?

양자오: ‘중간독자’는 전에 제가 어느 인터뷰에서 제시한 견해인데, 최근 몇 년간 강좌를 열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관찰과 사유를 통해 얻은 겁니다.

2005년부터 저는 타이완에서 ‘서양 현대 고전 자세히 읽기’라는 커리큘럼을 개설했습니다. 그때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얻었죠. 제가 강의한 서양 현대 고전들은 대부분 현실적이거나 공리적인 기능이 없었습니다. ‘쓸모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부는 조금 생소한데다 일정 정도 난이도까지 있었죠. 예를 들어 저는 첫해에 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 니체를 강의하면서 철학과 관련이 있는, 상대적으로 다소 심오한 책들을 다뤘습니다. 유료 강좌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을 매우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돈을 내는 사람이 없으면 그 강좌는 계속될 수 없었습니다. 제 동료는 처음에 꽤 회의적이더군요. 수강자가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강좌를 저는 여러 해 유지했고 중간에 끊긴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평이하고 대중소설을 이야기하는 강좌는 그 ‘서양 현대 고전 자세히 읽기’ 강좌만큼 인기가 높지 않았습니다.

강의 과정에서 저는 자주 궁금해 하곤 했습니다. 이 수강생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이들은 전에 어디에 있었을까? 나중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느 사회에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평상시에는 눈에 띄지 않고 그들끼리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고 말이죠. 그들은 평소에 자기가 문학이나 철학 등을 좋아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조심할 겁니다. 그러면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은 이 사회의 별종입니다. 하지만 그 강좌를 연 청핀서점(誠品書店) 덕분에 그들은 그 자리에 모일 기회를 얻었고 서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제시한 ‘중간독자’는 바로 이런 독자들을 가리킵니다. 깊이 있는 문화의 창조나 향유는 어김없이 이 사람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줄곧 한 서점이 어떤 서점이 되느냐는 사실 그 서점을 드나드는 대부분의 독자에 의해서도, 소수의 연구자나 전문 학자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고 바로 이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숫자가 많을 리 없고 많을 수도 없습니다만, 이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 서점은 어떤 서점이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확대해서 얘기한다면 이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이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이 사람들의 비중이 2%이냐, 8%이냐에 따라 각기 전혀 다른 사회가 된다는 겁니다. 이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이 사회는 극장, 음악, 춤, 패션이 발달하고 파리 같은 거리가 형성될 겁니다.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제가 해온 일은 바로 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음을 저는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몇 년간의 일을 통해 저는 또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그들과 소통하는지 알았습니다. 저와의 소통으로 인해 그들은 전혀 다른 것과 접촉할 기회를 얻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책을 쓰고 몇 만 권을 파는 것은 제가 하려는 일이 아닙니다.

Q

선생님의 강좌는 모두 유료 방식인가요?

양자오: 그렇습니다. 타이완민룽아카데미의 강좌도 쭉 그랬고 지금 하고 있는 강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수강생이 진정으로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지, 진정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수강생 중에는 문과 전공자가 거의 없습니다. 수학 전공자도 있고, 건축 전공자도 있고, 물리 전공자도 있지만 모두 진심으로 즐기면서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지식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흥미입니다. 진심으로 배움을 추구해야만 사유를 할 수 있고 배운 지식도 자기 것이 됩니다.

순자의 「권학」(勸學)편을 보면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배우기 전의 사람과 배운 뒤의 사람이 똑같다면 그것은 ‘위인지학’, 즉 남을 위한 학문입니다. 배움을 통해 사람이 자신을 바꾸고, 자신의 견해와 시각을 바꿔 스스로를 단조롭고 결핍된 사람에서 점점 더 풍부한 사람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세상과 더 많은 연관성을 갖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기지학’, 즉 자기를 위한 학문입니다.

Q

최근 몇 년 사이, 전통 고전의 보급과 전파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보급과 전파와 관련된 몇 가지 움직임이 다소 ‘엄숙한’ 형태로 출현하기도 했지만 ‘풍자적’인 형태의 것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중국 전통 고전을 새롭게 읽고자 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은 어떤 태도를 갖고 계십니까?

양자오: 솔직히 저는 ‘보급’이라는 말이 조금 무섭습니다. 저는 고전을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려고 하면 반드시 고전을 오늘날의 내용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전은 우리 시대를 위해 써진 것이 아닙니다. 고전을 보급하려 한다면 고전을 포기해야 할 겁니다.

왜 고전을 읽을까요? 솔직히 말해 고전을 쓴 사람이 우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고전을 읽는 과정에서 보통 자신의 유한한 지혜로 고전의 내용을 다시 풀어 이야기하고 그럼으로써 고전을 왜소화시키곤 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고전을 이야기하지요. 이것은 사실 우리가 지식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식을 존중하지 않으면 상처 입고 피해를 보는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진정으로 지식을 존중해야만 우리는 독서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너무 오만합니다. 우리의 방식으로 옛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늘 생각하지요. 하지만 조금 겸손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고전을 강의할 때 강사는 반드시 고전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태도입니다.

Q

선생님의 고전 읽기 시리즈에서 다룬 구체적인 고전 챕터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아는 챕터들과 조금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자신이 해설할 각 챕터를 고르셨습니까?

양자오: 보통 저는 책의 기존 목차뿐만 아니라 각 챕터의 일체성도 내용의 일부로 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목차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거나 어떤 대조적 의미를 특별히 부각시킬 목적이 있지 않으면 저는 가능한 한 원서의 앞뒤 순서를 흐트러뜨리거나 강의하려는 특정 챕터를 편집하지 않습니다.

강좌도 출판도 다 시간과 분량의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뽑아서 자세히 읽고 분석한 내용은 원서의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원전들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들을 찾고 정리해냈고 독자들이 그것을 읽으면서 점차 원전에 익숙해지고 원전에 대한 친근감을 얻음으로써 향후 원서의 나머지 부분도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기초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기초는 본래 고전에 대해 느끼던 거리감을 없애고 책 전체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단초입니다.

고전 챕터를 선택할 때 저만의 일정한 원칙이 있기는 했습니다. 저는 되도록 전체 챕터들을 다 읽고 ‘한 덩어리’를 택했습니다. 한 줄 한 줄의 항목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항목을 택하면 가끔 가장 훌륭한 내용을 골라낼 수 있기는 하지만 옛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그 책을 엮었고 엮은 차례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논어》를 강의할 때 저는 《논어》의 각 챕터에서 내용을 뽑아오기는 했지만 주로 「선진편」(先進篇)을 강의했습니다.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말이죠. 그 과정에서 《논어》의 다른 내용을 가져와 보충을 하거나 힌트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책들도 다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자치통감資治通鑑》 원고, 출처 文學報

《자치통감》 강의를 또 예로 들어보죠. 저는 당나라 때 일어난 현무문(玄武門)의 변을 이야기하면서 ‘무덕(武德) 9년’ 전체 단락을 뽑아 해설했습니다. 저는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이라는 이 편년체 서사시를 도대체 어떻게 썼는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마광은 우선 조정에서 어떤 관직에 누구를 임명했는지 쓴 뒤, 돌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항(党項), 요(遼) 등 각국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써내려갑니다. 이것이 바로 사마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독서 방식입니다. 그는 우리가 당나라의 전체적인 정치 판도와 내우외환을 아울러 보도록 의도합니다. 그때는 태평성대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왕조가 막 수립되어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며 사공(司空), 사도(司徒) 같은 주요 관직조차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도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형제간에 유혈 분쟁이 벌어진 겁니다. 사마광은 역사로맨스를 쓰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는 이세민 주변의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에게 거사를 행하라고 권했는지도 이해가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치통감》을 읽으면 우리는 사마광의 의도를, 그리고 그의 시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Q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낫다”는 말처럼 선생님은 사실 고전을 읽고 해석하는 동시에 수강생들에게 역사를 파고들어 읽어내는 방법론을 가르쳐주고 계시군요.

양자오: 고전 강의 분야에서 저는 저만의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제 것이 아니라 고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고전의 존엄성을 지키려 하며 고전이 단순하게 이야기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고전 속에는 분명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고전 보급의 과정에서 해설자는 부분적으로 꼭 단순화를 하곤 하지만 언제나 냉정함을 지켜야 하고 자기가 단순화한 내용이 곧 고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자신과 청중에게 고전은 결코 지금 자기가 말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고, 지금은 부득이하게 단순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깨워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제가 선호해온 방식은 고전 선독입니다. 독자들은 제가 말하는 것을 듣기만 하지 않고 스스로 고전을 읽어볼 수 있으며 읽는 과정에서는 또 제 역사학의 훈련과 문학적 읽기가 그들이 더 깊이 파고들어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데 다소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역시 독자들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텍스트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2017. 2. 17 타이완 문학신문文學報

楊照

以閱讀親近傳統文化,學習先人智慧,已成為當下的熱門。但這些閱讀和傳播同時也提出了問題:我們應該如何去閱讀先人經典?我們又是為了什麼去學習傳統經典?「這些產生於不同時空環境下的文獻,記錄的都是人的經驗與感受,我們今天也就必然能夠站在人的立場上,與其經驗、感受彼此呼應或對照。也就是,我們能夠從中讀到相似的經驗、感受,隔著時空會心點頭;也能夠從中讀到相異的經驗、感受,進而擴張了我們的人生體會。」楊照如是說。

文學報 記者 | 金瑩

「歷史應該讓我們看到人類經驗的多樣性,看到人類生活的全幅可能性,進而挑戰、質疑我們視之為理所當然的種種現實狀況。」

Q

從《尚書》《詩經》到《荀子》《戰國策》,十部中國傳統經典的細讀和導讀,不得不說是一項十分巨大的工程。能否介紹下這套叢書的緣起?

楊照:從2007年到2011年,我在台灣「敏隆講堂」連續開設了13期共130講的「重新認識中國歷史」課程,將中國歷史從新石器時代到辛亥革命做了一次整理。在開課的過程中,我深刻地感覺到,中國是人類文明中的奇特狀態,從公元前3000年到現在,同一套文字,同一套符號與意義結合的系統,歷時五千年而沒有斷裂消失,讓我們可以從經典中窺見另一個中國,實在是一個難得的機會。

在「重新認識中國歷史」之後,我的學員希望繼續跟著我學習,於是我又開設了解讀中國傳統經典的課程,從《尚書》《詩經》慢慢講到《論語》《孟子》,為他們進行細緻的選讀和導讀。我想,他們用5年時間聽我講中國通史,這次,我希望能降低個人主觀的選擇判斷成分,讓他們可以自己去接觸原典,能夠從原典來認識、了解中國歷史。

Q

在這套書的總序中,你說:「我不會提供『傳統』的讀法,照搬傳統上對於這些文本的解釋。許多傳統上視之為理所當然的說法,特別需要被仔細檢驗,看看那究竟是源自經典原文的意思,還是後來不同時代,因應其不同現實需求,所給予的『有用』卻失真的解讀。」並由此提出「歷史式讀法」和「文學式讀法」。你如何定義「歷史式讀法」和「文學式讀法」?

楊照:我史學上最重要的背景是思想史,所以讀傳統典籍的方式有一些基本模式。即,讀一部典籍,就要回到典籍所處的時代,想像一下那個時代里生活著什麼樣的人,他們在關心什麼,提出了什麼問題。而思想史中有一個方法論上的提醒,對我來說非常有用:你要把所有過去的人留下的材料,尤其是思想上的材料,當作是一種回答。作為一名讀者,你要先去追問,而且要有能力去提出問題:他在回答什麼?他要問的問題是什麼?只有這樣,我們才能夠更貼切地去評估古人回答得好不好,或者認識到他給出的答案,與面對類似問題時我們給出答案有何區別。

這就是我所說的「歷史式」的閱讀方式。將典籍放回其產生的歷史時代背景中,在那個特定背景下,而非從一種忽略時代的普遍角度出發,來讀這些傳統經典,這是關鍵的前提,也是「歷史式讀法」的操作性定義。

對我而言,「歷史式讀法」主要是「求異」。這些經典不是為我們而寫的,它們產生於很不一樣的時代,由過著和我們很不一樣的生活的先人們所記錄下來,所以裡面一定有異質的成分。正因為有不同,所以才值得我們去追求。歷史應該讓我們看到人類經驗的多樣性,看到人類生活的全幅可能性,進而挑戰、質疑我們視之為理所當然的種種現實狀況。這是歷史與其他學問最根本的不同作用,也是史學之所以存在和無可取代的核心價值。

Q

「歷史式讀法」是在歷史中求異,「文學式讀法」呢?

楊照:在閱讀過程中,我們也不可能完全採用歷史式的閱讀方式。這些經典跨越那麼長的時空,留存至今,有何魅力?這其中的閱讀肯定又有求同的部分。我們先確認了這些經典不是為我們而寫的,於是我們就能排除傲慢、自我中心的態度,培養並動用我們的同理心,想像進入他們那樣異質的生活世界中,去接近他們的心靈遺產。在這一過程中,我們得以拓展自己的感性與知性能力,不僅了解了原本無法了解的異質情境,更重要的是,還感受了原本從來不曉得自己身體里會有、可以有的豐富感受。感受我們的現實生活中不可能提供的經驗,只存在於古遠時空中的經驗,卻借文字跨越了時空,對我們說話,給我們以新鮮、強烈的刺激。對我而言,這部分就比較接近文學史的讀法,分析和揭示經典跟我們的處境的聯繫,讓經典和個人從情感上建立聯繫。

「求知路上最關鍵的一件事情,就是有發自內心的興趣。」

Q

在進行傳統文化的大眾傳播時,大多數學者都希望自己能夠吸引和影響更多讀者。但你曾提出一個「中間讀者」的概念,似乎你對自己的聽眾和讀者是有選擇的。你希望自己的作品被什麼樣的讀者閱讀和認可?

楊照:「中間讀者」是我以前接受一次訪談時提出的說法,這個說法也是我這些年開授講堂過程中通過觀察和思考得出的。

從2005年開始,我就在台灣開設「西方現代經典細讀」的課程。其中很個有趣的經驗:我講的西方現代經典,大多沒有現實功利的作用,可以說,其中沒有任何一本是「有用」的書,有些書還稍微有點冷僻,帶有一定難度。舉個例子,我第一年講了馬克思、達爾文、弗洛伊德、尼采,我還講了很多與哲學相關、相對深奧一點的書籍。因為是收費課程,所以它是否受人歡迎的表現很直觀:如果沒有人付錢,這個課程就無法繼續下去。同事一開始很懷疑,會有人來報名嗎?但出乎意料的是,這個課程我堅持了這麼多年,一直沒有中斷過。反倒是一些相對淺顯、講述大眾小說的課程,其歡迎程度沒有這個「西方現代經典細讀」的受歡迎程度高。

在開課過程中,我也會經常好奇,這些學員到底是誰?他們以前在哪?後來我想,每個社會中一定存在著這麼一批人,你平時看不到他們,他們也看不到彼此。他們平時可能不太敢讓別人知道自己的喜歡,喜歡文學,喜歡哲學等等,這會讓旁人覺得他們是日常生活中的怪人。他們是這個社會中的奇異分子。可是,誠品書店的存在,讓他們可以有機會聚齊在這裡,找到彼此。

我提到的「中間讀者」,指的就是這樣一批讀者。比較深層的文化創造或者享受,一定和這群人有關。我一直認為,一個書店會成為一個什麼樣的書店,其實不是由進入這個書店的大部分讀者決定的,也不是由少數研究者、專業學者決定的,而是由這樣一群人決定的。這群人不會很多,也不可能很多,但這群人有多少,就決定了這家書店會成為一家什麼樣的書店。擴大來說,這群人有多少,就決定了這個社會是一個什麼樣的社會。如果這群人在社會中的比重是2%,那是一種社會,如果有8%,那則會是另外一種社會。當這群人到了更高的比例,這個社會中就會有劇場、音樂、舞蹈、時裝,就會有巴黎的街道,這是一個人類的普遍現象。

我明確地知道,這些年來,我從事的工作就是在服務這群人。通過這些年的工作,我也大概知道他們是誰,知道怎麼有效地和他們說話。因為我和他們說的話,他們可能有機會接觸到不一樣的東西。這就是我想做的事情。寫一本書,賣個幾萬冊,這不是我要做的事情。

Q

你的課程採取的都是收費授課的模式?

楊照:是的。我在台灣敏隆講堂的課程,一直採用收費授課的模式,包括我現在還堅持只上收費課程,並不是為了錢,而是為了確認來上課的人是真正想要了解課程內容,有沒有真正的求學之心。我的學員中幾乎沒有學文科的,他們之中有學數學的,有學建築的,有學物理,都是發自內心喜歡才來上課。求知路上最關鍵的一件事情,就是有發自內心的興趣。只有發自內心想去求知,你才能去思考,你學到的知識才是你自己的。

荀子的《勸學》篇里提到「為人之學」和「為己之學」。學習前和學習後一樣,你還是同一個人,這是「為人之學」。通過學習,你改變了自己,改變了自己的看法和眼光,讓自己從一個單調貧乏的人變成一個越來越豐富的人,與世界有了更多的關聯,這才是「為己之學」。

「講經典,我有我的傲慢。但這個傲慢不是我的,而是來自經典。」

Q

近幾年來,傳統經典的普及和傳播已經成為社會熱門,有些傳播和普及會以相對嚴肅的面貌出現,但也有不少「戲說」的方式。在重新解讀中國傳統經典的過程中,你抱著怎樣的態度?

楊照:說實在的,我有點害怕「普及」這個詞語。我以為,經典不可能講給所有人聽。若要講給所有人聽,就必須把典籍講成現在的內容。但是,典籍不是為我們這個時代而寫的。如果想要普及經典,你就會放棄經典。

為什麼讀經典?很坦率地說,因為寫經典的人比我們聰明。但是現在的人們在閱讀經典的過程中,經常會拿自己的有限的智慧去重講經典所表達的內容,這樣會把經典矮化。但現在有太多人用這種方式講述經典。這其實涉及到我們對待知識的態度。一個人如果不尊重知識,受傷和損害的是你自己。只有真正尊重知識,你才能從閱讀中學到更多。我們有時太傲慢了,老是覺得可以用我們的方法去判斷古人。但你如果稍微謙卑一點,越是可以學到最多。在講述經典的時候,講述者一定要對經典有一種敬意。這是我的態度。

Q

從具體篇目來看,這套書在選擇傳統經典的篇目時,與我們常見的篇目似乎有所不同。你是以什麼標準選擇自己所要講授的篇目的呢?

楊照:一般來說,我既將書中原有的篇章順序,當作書內容的一部分,也將書中篇章的完整性,當作內容的一部分。這意味著,除非有理由相信書中順序並無意義,或為了凸顯某種特別的對照意義,否則,我儘量不打破原書的先後順序,並且儘量選擇完整的篇章來閱讀,不加以裁剪。

從課堂到成書,受限於時間與篇幅,選出來詳細解讀的內容,可能只占原書的一小部分,不過,我希望能夠在閱讀中摸索、整理出一些趨近這本原典的路徑,讓讀者在閱讀中逐漸進入、熟悉原典,培養出一種與原典親近的感受,來作為未來進一步自行閱讀其他部分的根底。打好這樣的根底,排除原本對經典抱持的距離感,是閱讀、領略全書最重要的開端。

在選擇篇目時,我也有自己一定的規矩。我會儘可能讀一個完整的篇章,選擇「塊」,而不是選一條一條的條目。選擇條目,有時固然能選摘出最精彩的內容,但未必能讓讀者理解到那個時代的人是用什麼樣的方式來編撰這本書,而經典中的編選次第都是有意義的。

比如,講《論語》時,雖然我也要從《論語》的各個篇章中選取內容,可我講授的主體是《先進篇》,從第一條講到最後一條,在這個過程中,我才拿《論語》中其他內容來做補充或者啟發。後來所有的書都是如此。

又比如《資治通鑑》,我講唐朝的玄武門之變,就選了「武德九年」一整段。我希望讀者能看到司馬光寫《資治通鑑》這部編年史時,究竟是怎麼寫下來的。

司馬光先寫朝廷任一個什麼樣的官職,然後寫突厥發生什麼事,党項、遼等各國發生什麼事情,如此一路下來。這才是司馬光要我們閱讀的方式,他要讓我們看到唐代的整個政治局勢,內憂外患。那不是一個太平時代,新的王朝剛剛建立起來,還沒有站穩腳步,連司空司徒這些重要官職還沒有定下來,卻出現了內部的兄弟鬩牆。司馬光不是在寫《甄嬛傳》,當你讀到這些,你才會理解李世民周圍的人為何會用這樣的方式勸他行事。如果用這種方式閱讀《資治通鑑》,你就可以看到司馬光的用意,看到司馬光的眼光。

Q

「授人以魚不如授人以漁。」你的解讀方式,其實是在解讀經典的同時,教授學員如何進入歷史閱讀的方法論。

楊照:講經典,我有我的傲慢。但這個傲慢不是我的,而是來自經典,我必須用這種方式保護經典的尊嚴,我不願意把經典講得那麼簡單。我也一直認為,經典中一定有些東西是我無法理會的。在普及經典的過程中,講述者一定會進行部分簡化,但講述者要時刻保持冷靜,不要自認為簡化的內容就是經典。你要時刻提醒自己和聽眾,經典並非如我所講那麼簡單,這是不得已的簡化。

所以,一直以來,我比較喜歡的方式是經典選讀。讀者不是只聽我講,而是可以自己進行閱讀,在閱讀的過程中,我的史學訓練和文學閱讀能稍微幫讀者進入得深入一點,可以幫助讀者多讀到一點。但是,一切仍需要讀者自己判斷,因為,文本就在那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