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 새 다리 시장에서 한오가 춘정을 팔다新橋市韓五賣春情 3

새 다리 시장에서 한오가 춘정을 팔다 3

한편, 한오의 노복은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오산에게서 받은 편지와 백은을 모두 아씨에게 전달하였다. 편지봉투를 뜯어서 편지지를 등불 아래 비춰보니:

소생 오산이 사랑스러운 한오 낭자에게 삼가 아뢰오. 지난번 만남에서 너무 큰 후의를 베풀어주었소이다. 그대와 나누었던 운우지정과 베갯머리 밀어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소이다. 마음이야 그대 곁에 당장 달려가고 싶으나 몸이 편치 않아 침과 뜸으로 다스려야하기에 그대를 마냥 기다리게 하는 실례를 범하고 말았소. 이렇게 사람을 보내어 소생을 문안하여 주시고 입에 맞는 음식까지 친히 만들어 보내주었으니 그 감동이 넘치고 넘치외다. 수일 내에 꼭 찾아갈 것이오. 백은 다섯 냥은 소생의 정표로 알고 받아주시기를 바라오.

오산 재배.

편지를 받고 나서 한오 모녀는 뛸 듯이 기뻐했다. 오산은 혼자서 주점에 남아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가 남은 순대 한 줄을 들고서 살며시 침실로 기어들었다. 오산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나랑 거래하는 베 짜는 집 사람 하나가 내가 지금 침과 뜸으로 치료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고서 오늘 순대 두 줄을 보내왔지 뭐요. 한 줄은 친구들과 같이 먹고 한 줄을 남겨 가져왔으니 당신도 한번 먹어보구려.”

“아이쿠 그래요, 내일 만나면 고맙다는 말씀 좀 꼭 전해주세요.”

그날 밤 오산은 부모가 눈치 챌까 봐 조심스럽게 침실에서 아내랑 순대를 같이 나눠 먹었다.이틀이 지나고 3일이 되는 날 바로 6월 24일이었다. 오산은 일찌감치 일어나 부모에게 말씀을올렸다.

“제가 치료를 하느라 통 가게에 나가보지 못하였으나 다행히 오늘은 몸이 한결 가벼우니 한 번 둘러볼까합니다. 게다가 성신당 거리의 베 짜는 집 몇 집에 들러 외상준 거 정산도 하여야 하니 일단 성에 들어갔다가 오겠습니다.”

오방어가 대답하였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오산은 마차를 하나 불러서 타고 뒤에서는 심부름꾼 수동이 수행하였다. 오산이 이렇게 성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오산이 저세상으로 가게 되었으니 이 일은 이제 따로 이야기를 시작하여야겠다.

여인네는 허리에 검이라도 찬 양 어리석은 남정네를 상하게 하는구나.
머리가 댕강 땅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하여도,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남정네의 골수가 말라가는도다.

오산은 마차를 타고서 회색 다리 장터에 도착하였다. 마차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가니 점원이 맞아주었다. 오산의 관심은 온통 한오에게 있었으므로 조금 앉아있는 둥 마는 둥 하고서는 바로일어나 점원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성안에 있는 베 짜는 집들에 들러 외상값을 받아야겠다. 오늘 장사 정산하는 것은 일단 외상값을 받아오고 난 다음에 하도록 하자.”

점원은 오산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으나 차마 대놓고 말리지는 못하는입장이라 그저 이렇게 넌지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리께서는 아직 몸이 완전히 쾌차하지 않으셨으니 너무 이곳저곳 돌아다니셔서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산은 점원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마차에 올라타서는 마부에게 간산문艮山門으로 들어가자고 분부하였다. 마차는 곧장 양모채羊毛寨 남횡교南橫橋에 도착하였다. 오산은 그곳에서 호시湖市에서 이사 온 한씨네를 찾았다. 옆에 있던 사람이 알려주는데 약방 옆집이 바로 그 집이란다. 오산이 그 집을 찾아 대문 앞에서 마차에서 내리니 수동이 알아서 먼저 노크를 한다. 안에서 한오의 노복이 나와서 문을 열더니 오산이 찾아온 걸 보고서는 득달같이 안으로 들어가 통기를 하였다. 오산이 안으로 들어가니 한오 모녀가 섬돌 아래까지 내려와 마중을 한다.“나리 얼굴 한 번 안 보여주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납시었나이까?”오산과 한오 모녀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가 좌정하고는 차를 마셨다. 한오가 오산에게 말하였다.

“나리 기왕에 오셨으니 우리 집이나 한번 둘러보시지요.”

오산은 한오를 따라 침실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좋은 친구 찾아오니 맘이 먼저 알아보고 열리고,
내 맘 알아주는 친구니, 말이 서로 통하는구나.

오산과 한오가 위층에 올라가니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아교가 풀을 만난 듯, 둘은 맘속의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 바빴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가 있나, 노복이 술과 안주를 잘 차려가지고 와서는 경대 앞의 물건을 치우고는 거기다 차려놓았다. 노복이 술을 차려주고 내려갔으니 한오가 부르지 않는 한 다시 올라올 일은 없으렷다. 한오와 오산이 서로 마주 보고 앉으니 한오가 술을 한 잔 따라 두 손으로 받들고 오산에게 드렸다.

“나리께서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으신다 하여 소첩은 잠시도 걱정을 내려놓은 적이 없나이다.”

오산이 술을 받아들면서 대답하였다.

“내가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느라고 그대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소.”

술잔을 비우니 다시 한 잔을 따라 올린다. 이렇게 술을 비우기를 벌써 열 잔, 두 사람의 욕정이 불길처럼 타올랐으니 서로의 몸을 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로가 껴안고 사랑을 나누니 그 기쁨이 한량없었다. 사랑을 나누고 다시 일어나 앉아 옷매무새를 만지고 다시 술을 마시니 술에 취한 눈이 몽롱하며 그 여흥이 끝이 없더라. 오산은 집에서 한 달 동안 치료를 받느라고방사를 금하고 있다가 이제 한오를 보았으니 어찌 한 번의 방사로 만족하리요. 오산이 죽을 팔자이런가? 한오에게 정신이랑 혼령이 온통 다 빠져버렸구나. 욕정이 또한 불끈 솟아나니 한바탕불을 더 댕기는구나.

입맛에 맞다고 마구 먹다 보면 체하기 마련,
마음에 맞다고 마구 즐기면 재앙이 되기 마련.

오산은 두 번째 방사를 즐기면서 자기 스스로도 왠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고, 몸이 흔들리며 주체할 수가 없어 밥도 먹지 못한 채 침상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한오는 오산이 잠이든 것을 보고서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부에게 말하였다.

“나리께서 약주를 과하게 드셨는지 위에서 잠이 드셨네요. 두 분은 맘 푹 놓고 여기서 기다리시고, 괜히 나리를 재촉하지 마십시오.”

마부가 대답하였다.

“소인이 어찌 감히 재촉하겠나이까?”

한오는 말을 마치고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와 오산의 옆에 누워 잠을 청하였다. 한편, 침대 위에 누워있는 오산은 비록 눈은 감고 있으나 귀엔 끊임없이 환청이 들려왔다. 오산이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통통한 화상 하나가 보였다. 그 스님은 해진 승복을 걸쳐 입고 발엔 스님 신발을 신고 허리엔 누런 천으로 만든 부대를 차고 있었다. 화상이 먼저 오산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산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답례를 하고서는 물었다.

“스님께서는 대관절 어느 절에 계시는 분이시오, 무슨 연유로 나를 찾으시오?”

“소승은 상채원桑菜園 수월사水月寺의 주지입니다. 소승의 상좌가 세상을 떠났기에 특별히 그대에게 와서 출가를 권하는 것이오. 소승이 관상을 좀 볼 줄 압니다. 그대는 박복하여 세상의 복락을 누릴 팔자가 아니라 맑고 깨끗하게 사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니 세상을 등지고 출가하여 나의 상좌가 되길 바라오.”

“스님께서는 뭘 모르시는구먼요. 나의 부모님은 오십 평생 외동으로 나를 낳고 길러주시고 장가도 들여 주시고 가게도 열어주셨는데 제가 어찌 출가한단 말입니까?”

“그대에겐 출가하는 길밖엔 없소이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요절하고 말 것이오. 소승의 말을 듣고 어서 따라오시오.”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이곳은 아녀자의 방인데 출가한 자가 어인 일로 이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이오?”

그 스님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 오산에게 외쳤다.

“그래 나를 따라올 텐가 말 텐가?”

“이런 세상에, 머리 깎은 놈이 뭐 하러 나한테 와서 이렇게 귀찮게 구는 거야?”

스님이 버럭 화를 내며 오산을 붙잡고 아래로 내려가려는 찰나 오산이 살려 달라 억울하다 소리를 질러대니 스님이 오산을 힘껏 밀쳐내었고 오산은 계단을 데굴데굴 굴렀다. 오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나니 온몸에 땀이 흥건하게 배었다.

오산이 눈을 뜨고 보니 한오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역시 꿈이었다. 정신이 몽롱하여 엉금엉금 기다시피 억지로 침대에 일어나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조금 있으려니 한오가일어나 물었다.

“나리 잘 주무셨는지요? 어려운 걸음 하셨는데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가시지요.”

“집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돌아가야겠소. 일간 날을 잡아 다시 한 번 오리다.”

한오가 일어나 간식을 준비시키려 하였다.

“내가 몸이 편치 아니하니 굳이 간식을 차릴 필요 없소이다.”

한오는 오산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서 억지로 붙잡지는 않았다. 오산은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아래로 내려와 한오 어미에게 인사를 하고선 서둘러 마차에 올랐다. 해는 이미 기울었다. 오산은 마차에 앉아 곰곰이 낮에 꾼 꿈을 생각하였다. 참으로 괴이하고 아직도 생생한 그꿈 때문에 놀랍기도 하고 근심스럽기도 하였다. 생각에 잠겨있는 그 때 배가 살살 아파오기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마부에게 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자고 몇 번이고 채근하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내려 우선 급한 대로 뛰어가서 용변을 보니 배가 아픈 게 어김없는 설사라. 온통 피똥을 쌌다. 한참이 지나고 침대에 드러누우니 머리가 어질어질, 사지가 흔들흔들 모골이 송연하였다. 아무래도 몸이 건강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방사를 과도하게 치른 탓인 것 같았다. 오방어는 아들이 얼굴이 창백한 채로 서둘러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얘야 도대체 무슨 일이냐?”

“베 짜는 집에서 술을 좀 과하게 마신 것 같습니다. 술기운에 곯아떨어졌다가 일어나 보니 목이 말라 냉수를 마셨더니 몸이 오슬오슬 떨리고 지금은 설사까지 났습니다.”

오산은 말을 하면서도 입이 덜덜 떨리고 몸에는 온통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오방어는 너무도놀라 바로 아래로 내려와 의원을 불렀다. 의원이 도착하여 맥을 짚어보았다.

“맥이 거의 끊어져 버렸으니 치료하기가 난망입니다.”

오방어는 의원에게 제발 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이 병은 설사병이 아니라 색욕을 과도하게 탐하여 원기가 다 소진되고 양기가 다 빠져나가서 생긴 병입니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원기를 돋울 약을 한 첩 지어드리리다. 만약 약을 복용한 다음에 열기가 내려가고 맥이 살아난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의원이 약을 한 첩 지어주고 일어났다. 오방어 부부가 오산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몇 번이고 물었으나 오산은 도리질만 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초저녁이 조금 지났을 무렵, 오산은 약을 먹고는 자리에 누웠다. 한데, 낮에 잠시 잠들었을 때 꿈에서 나타났던 그 스님이 다시 침대 곁에 나타나서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오산, 그대는 어이하여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냐, 어서 나를 따라 오거라.”

“왜 이렇게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이오? 어서 물러나시오.”

그 스님은 오산이 뭐라 말하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아니하고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는 누런 천의 부대를 풀어 오산의 얼굴 위에 덮어 씌워 놓고는 사라져버렸다. 오산은 침대 머리맡을 붙잡고서 소리를 지르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눈을 떠보니 부모와 아내가 모두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야, 무슨 일로 그렇게 깜짝 놀랐던 것이냐?”

오산은 정신이 갈수록 혼미해지는 것을 자신도 느끼는지라 더 이상 그냥 숨길 수만은 없어 한오와의 일 그리고 꿈속에서 보았던 스님의 일을 털어놓았다. 말을 마친 오산은 자기도 모르게 오열하였다. 오산의 말을 들은 부모와 아내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오방어가 보기에도 오산의상태가 너무 위중한지라 책망하지도 못하고 그저 위로하고 달랠 뿐이었다. 오산은 부모에게 말을 마친 후 혼절하였다 깨고 또 혼절하였다. 그러곤 다시 깨어나서 아내에게 울면서 말하였다.

“부모를 잘 봉양해주시오. 그리고 어린 아들도 부탁하오. 가게에서 들어오는 수입이면 집안 살림을 꾸릴 수는 있을 것이오.”

“쓸데없는 말씀 마시고 몸조리나 잘하셔요.”

오산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계집종에게 자기를 일으켜 세우라 하고는 부모에게 말씀을 올렸다.

“소자는 이제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듯합니다. 이 몹쓸 자식을 키워주시느라 괜히 헛고생만 하셨습니다. 제가 명이 짧고 팔자가 박복하여 이런 요물을 만나 고생하였으니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에게 저처럼 그릇된 일을 따라 하여 몸을 망치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인 것을 제가 남아로 태어나서 여색을 탐하느라 이렇게 몸을 망치고 말았나이다. 제가 죽거들랑 저의 시신을 물에 버려 처자를 버리고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를 씻을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그 스님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오산이 애처롭게 소리를 질렀다.

“스님, 저하고 무슨 원수가 졌다고 이렇게 저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건가요?”

“소승은 색계를 범하여 저세상으로 떠나 구천을 맴돌면서 귀신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나리가 백주대낮에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서는 일시에 또 마음이 동하여 나리를 저의 귀신세계의 동반자 삼고자 하였나이다.”

스님이 말을 마치고 떠나갔다. 오산은 깨어나서 잠들었던 동안 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부모에게 들려주었다. 오방어가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말하였다.

“그래 귀신이 달라붙었던 것이구먼.”

오방어는 서둘러 대문 밖의 거리에다 향을 사르고 촛불을 사르고 음식을 차린 다음 하늘에다대고 고사를 지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제가 직접 그대를 찾아뵙고 제사를 드리겠나이다.”

오방어는 축수를 마치고 지전을 살랐다. 오방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들은 여전히 침대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아들이 일어나 앉더니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는것이었다.

“오방어, 내가 부처의 색계를 범하여 양모채에서 자결하고자 하였는데 마침 네 아들이 그곳에서 정욕을 불사르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전에 범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네 아들이 나를 대신하여 죽든지 아니면 네 아들이 나를 위하여 재를 올리거나 중이 되도록 하라고 하였지. 한데 마침 네가 아들을 대신하여 나에게 재를 올려주고 음식도 챙겨주고 지전까지 살라줘서 내가 천도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이제 네 아들을 놓아주고 더 이상 여기서 화를 부리지 않겠노라. 내가 양모채에 가서 네가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을 기다릴 것이니 이번에 내가 천도에 성공하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더니 오산은 두 손을 합장하고 예를 갖추었다. 오산은 제 정신이 돌아오고 안색 역시 다시 활기가 돌았다. 아내가 오산의 몸을 만져보니 온몸의 열도 가라앉았다. 오산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더 이상 설사도 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뛸 듯이 기뻐하였다. 전에 오산을 진찰하였던 의사를 다시 불러 보이니 그 의사가 검진을 하고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맥이 다 돌아왔으니 이젠 살 길이 열렸습니다.”

의사가 지어준 첩약을 먹으며 며칠간 몸조리를 하였더니 오산의 몸은 점점 호전되었다. 오방어는 스님을 여럿 청하여 한오의 집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 바탕의 재를 올렸다. 한오네 식구들이 꿈을 꾸니 그 꿈에 통통한 스님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서 어디론가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오산은 반년 정도 더 몸을 추스르고 난 다음 다시 새 다리 시장의 가게에 나가 장사를 하였다. 어느 날 오산이 점원과 예전 일을 자기도 모르게 언급하게 되었다가 오산은 후회막급이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세상 살면서 바보 같은 일에 휘둘리면 절대 안 되지.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귀신이라도 나서서벌준다고 하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닌 것이야. 나도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지.”

이 날 이후 오산은 지난 일을 더욱 반성하고 다시는 한오 집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전후 사정을 아는 지인들은 오산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어리석은 마음으로는 모든 여인이 다 예뻐 보이고,
냉정한 마음으로는 모든 여인이 다 그저 그렇다.
이치를 꿰뚫으면 사악한 마음이 사그라질지니,
한평생 나가야 할 길이 평안하기 그지없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