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인문학 9 – 신장 반몐과 이탈리아 파스타

중국 신장의 시골 식당에서 본 반몐

북방의 주식은 밀이고, 여러 가지 밀 음식 가운데 국수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나는 2012년 처음 신장에 발을 디뎠었다. 2105년부터는 매년 한두 차례씩 모두 184일간 여행을 했다. 대부분은 현지식이었다. 하루 2~3끼로 계산하면 400여 끼를 현지에서 먹은 셈이다.

신장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양고기였다. 양파를 듬뿍 넣고 볶은 것에서부터 큼직한 살코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구운 양꼬치, 누린내 없이 잘 삶아낸 수육까지. 낭을 굽는 큰 화덕 안에서 구워낸 낭캉러우(馕坑肉)는 신비로운 맛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양의 종자나 조리법이 다르기도 하고, 여행의 흥취가 내 평범한 입맛을 압도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신장에서 내게는 양고기에 앞서는 것이 있었으니, 신장의 국수 반몐(拌麵)이다. 반몐은 비벼서 또는 섞어서 먹는 국수라는 뜻이다. 반몐은 신장 사람들의 주식으로 일상의 식탁에서부터 잔칫상은 물론 노동현장까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도시는 물론 산골 오지의 움막식당까지, 어디에서든 5분 대기조와 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음식이다. 처음에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지만 지금은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반몐이 식탁에 오르는 장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식욕이 돈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방금 건져 올린 뜨끈뜨끈한 국수를 넓은 접시에 깐다. 그 위에 뜨거운 불에 잽싸게 볶아낸 즉석 고기요리 한 공기를 툭 엎어서 식탁에 올려준다. 식기래야 접시 하나가 전부이다. 별도로 주는 반찬도 없다. 손님은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면서 후룩후룩 먹으면 그만이다. 주문하고 먹는 것 모두 간단하지만 맛과 흥취는 최고다. 신장의 황량한 주변 환경에 견주어 보면 중간 크기의 접시 위에 차려진 화려한 잔칫상이다. 볶음 요리도 다양하고 맛있다. 주방장의 손도 인심이 넉넉하다. 담아주는 양도 적지 않은데 추가하는 면도 공짜다.

면과 볶음요리를 섞으면 반몐이 된다.

신장 반몐의 매력은 단연코 면에 있다. 탱글탱글한 면발은 한국인 식감에 딱 맞는다. 우리 자장면의 면과 똑같다. 반몐 식당에서는 밀가루 반죽이 영업 준비의 반이다. 크게 반죽을 한 다음 작은 덩어리로 나누고 손으로 눌러 어른 손가락 굵기의 면으로 만든다. 이것을 기름칠을 해서는 큼지막한 양푼에 동심원 모양으로 담아둔다. 주문이 들어오면 양푼에서 왼손으로 한 가닥을 들고 오른손으로 잡아 늘이면서 조리대로 꺼낸다. 당기는 대로 잘도 늘어난다. 국수 한 그릇에 한 가닥이라 일근면(一根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조리대로 옮겨진 면발을 본격적으로 늘이기 시작한다. 두 손으로 양쪽 끝을 잡고 아래위로 흔들면서 늘인다. 늘어나면 반으로 접어 다시 늘인다. 이렇게 하기를 네댓 번. 양손으로 잡고 좌우로 늘이는 동작을 라(拉)라고 하기 때문에 반몐을 라타오쯔(拉條子)라고도 한다. 늘어진 면발을 양손에 쥐고 조리대에 내리치면서 탄성을 더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수타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적당히 늘어난 면을 끓는 솥에 넣고 긴 젓가락으로 저어준다. 옆에서는 볶음요리를 준비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 위에 지글지글하는 볶음 요리를 쏟아붓는다. 컬러풀한 볶음요리와 면발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어서 먹방 사진으로도 훌륭하다. 볶음요리는 반몐에서는 부수적이지만 실제 반몐의 종류를 정하는 포인트이다. 양고기 소고기 닭고기는 기본이요 마늘종 감자채 토마토 고추와 같은 채소가 많이 사용된다.

반몐 메뉴의 제일 윗자리는 대부분 궈유러우(過油肉) 반몐이 차지하고 있다. 반몐의 대표선수인 셈이다. 궈유러우는 본래 산시(山西)의 전통적인 볶음요리이다. 그 지방 상인들이 실크로드를 오가면서 현지 국수에 고향 요리를 얹어 간단하게 먹은 것이다. 외지에서 들어왔으나 신장 반몐의 상석을 차지해버렸다. 산서성에서는 돼지고기를 얹어먹지만 이슬람 지역인 신장에서는 양고기로 대체되었다. 어떤 음식과도 기꺼이 결합할 줄 아는 면의 위대함이랄까.

면의 태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죽과 가루를 거쳐 밀에 이른다. 밀은 9천 내지 7천여 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중앙아시아와 신장을 거쳐 중원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밀은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의 것이라고 한다.

밀가루 반죽으로 만들어낸 면 역시 비슷한 경로로 전해졌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 유물은 신장 투루판의 화염산에서 발굴된 것이다. 지금은 우루무치 고고학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데 2500년 전의 국수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화염산의 고대 국수는 오늘날의 신장 반몐과 똑같아서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 <누들 로드>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신장을 거쳐 중원으로 간 국수는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고 다양한 식생활 환경에서 수많은 종류로 분화되고 발전되었다. 중국 요리는 송대에 골격이 갖춰진 것으로 보는데, 국수는 그 당시 이미 길거리 음식으로까지 자리 잡았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의 국수는 일일이 나열하는 게 어려울 정도다.

신장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토마토 계란 볶음이 얹힌 반몐을 후룩후룩 먹다보면 토마토 소스를 얹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 파스타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기 전의 관행으로 말해서 스파게티이지만, 조금 가려서 말하자면 ‘건조 파스타’(pastasciutta)라고 해야 할 것이다. 파스타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음식을 통칭하는 말이니 파스타를 신장의 반몐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아무튼 맛은 달라도 탱탱한 백색 면에 컬러풀한 토마토 볶음이 얹힌 반몐은 재료나 조리법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스파게티와 꽤나 유사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는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중국에서 배워 그의 고향에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건 사실과 다르다.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에 돌아가서 저술한 <동방견문록>에는 국수전파설의 흔적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펄쩍 뛰기도 한다. 실제로 13세기 말 파르마 출신의 수도사 프라 살림베네가 쓴 <연대기>에 파스타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음식을 언급한 것이 있다. 13세기 말~14세기 초에 나폴리에서 나온 또 다른 <요리책>에서도 파스타와 관련된 언급이 있다. 마르코 폴로의 국수전파설은 1929년 미국 뉴욕의 <마카로니 저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인들에게 마카로니와 스파게티(둘 다 파스타의 일종)를 홍보하고자 만든 잡지가 마케팅 목적으로 마르코 폴로 국수전파설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밀이 처음 재배된 메소포타미아의 서쪽으로는, 로마 시대에 이미 밀이 주식이 되어 있었다. 이에 더해서 건조 면을 만들어 보관성이나 이동성을 높인 것은 훗날 이슬람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것이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 전해졌다. 그 이후 파스타의 발전은 이탈리아의 몫이었을 것이다.

밀과 국수는 중국에서 다양하게 발전했다. 서양에서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꼽는 것 이상으로 동양에서는 중국의 다양한 국수를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어떤 국수들은 유사한 것도 있다. 이런 것들은 재미있는 연상을 깔고 있는 식탁의 화제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마르크 폴로를 등장시켜 역사적 사실이라고 운운하면 자칫 힐난의 눈길을 자초하기 십상이다.

끝으로, 신장 여행의 반 정도를 나와 함께 했던 여행친구의 한 마디가 입술에 붙어 있다. 한국의 자장면 요리사들을 신장으로 초청해서 반몐 연수를 3개월씩만 시켜주면 한국인의 자장면 행복도가 몇 배는 커지리라는 농반진반~! 신장 반몐에서 식감과 정성과 맛을 듬뿍 받았기 때문이다.

<감수 : 라영순 중앙대학교 HK교수(접경인문학연구단), 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중국여행객 윤태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