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이하李賀 말에 대한 시 5馬詩 其五

말에 대한 시 5馬詩 其五/당唐 이하李賀

大漠沙如雪 광대한 사막 흰 눈 같은 모래
燕山月似鉤 연연산 위엔 굽은 칼 같은 달
何當金絡腦 언제나 머리에 황금 장식 달고
快走踏清秋 맑은 가을날 전장을 내달릴까

이 시는 달리는 말에 대한 찬탄이 아니라 달리지 못하는 말에 대한 탄식을 쓴 것이다. 천리마의 능력이 있으면서도 마구간에서 채찍의 모욕을 받는 말은 큰 뜻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 중용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당(何當)! ‘언제나 그런 날이 올까?’ 라는 이 말에 작가의 혈루(血淚)가 보이는 듯하다. 슬픈 시이다.

연산(燕山)은 지금 북경의 고호인 연경(燕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연연산(燕然山)으로 지금 몽골에 있는 항애산맥(杭愛山脈)을 말한다. 높이가 4000m, 길이가 700km에 달하는 거대한 산맥이다. 한나라 때 두헌(竇憲)이 북선우(北單于)를 크게 격파하고 비석을 세운 곳이다.

구(鉤)는 낚시하는 갈고리가 아니고 창에 달린 구부러진 칼 모양을 말한다. 일종의 무기이다. 낙뇌(絡腦)는 고삐를 매다는 말 머리의 끈을 말하니, 금락뇌(金絡腦)는 거기에 금장식이 달린 것을 말한다. 결국 장군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타는 전마를 말하니, 말의 입장에서는 천리마 대접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답청추(踏清秋)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달린다는 말이다. 쾌주! 이 말에 시인의 비원이 담겨 있다.

이하(李賀, 약 791~817)는 시풍이 당대의 다른 시인들하고는 많이 달랐다. 글씨에 송 희종이나 조선의 추사처럼 이색 서풍이 있고, 그림에 명의 진홍수나 조선의 김수철처럼 이색 화풍이 있듯이, 시에도 근대 시인 이상처럼 이색 시풍이 있는 것이다. 이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독특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 독특하다. 내용도 그렇고 표현도 그렇다. 두보를 시성, 이백을 시선, 왕유를 시불이라 부르듯이 이하에게는 시귀(詩鬼)라는 별칭이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괴기스러운 면이 있다.

위진시대에 죽림칠현 중 한 사람인 유령(劉伶)은 술 속에 은거하였다 할 수 있는데 항상 종자에게 삽을 메고 따르게 하면서 자신이 술을 먹다 죽으면 바로 파묻으라고 하였다. 주은(酒隱)의 극한까지 나아가 천지가 뒤집힌 사회를 조롱하고 적의를 드러낸 것이다. 이하는 항상 날만 세면 나귀를 타고 나가면서 자신의 종에게 금낭(錦囊)이라는 자루를 들고 따르게 하였다. 자신이 시상이 떠오르면 바로 원고를 작성해 그 속에 넣기 위해서였다. 치열한 시에 대한 열정이기도 하지만 일상 사회에 대한 무시와 반감 역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하의 후원자였던 한유가 쓴 <휘변(諱辯)>에는 이하가 이렇게 된 사연을 짐작하게 해 주는 내용이 있다. 이하는 본래 당 황실 후손이라 자부심도 높고 공부도 잘했는데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진사 시험 자격이 박탈되었다. 이하와 당시 경쟁 관계에 있던 사람이 이하의 아버지 이름이 진숙(晉肅)인데 진(晉)이 진(進)과 음이 같으므로 진사(進士)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불효라는 논리였다. 이를 반박한 글이 바로 한유 글인데 당시 세상이 오늘날 조국 청문회나 검찰 수사처럼 미쳐 돌아갔는지 결국 진사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였다.

당시 진사 시험은 조선 시대의 문과 시험 같은 것으로 관리의 등용문이었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벼슬을 하지 못하고 벼슬을 하지 못하면 당시 사회 질서에서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방도가 거의 없었다. 조선 시대의 김시습 역시 세종에게 큰 총애를 받았지만 수양 대군의 계유정란으로 과거를 포기하게 된다. 김시습 시에 보이는 불교나 사회 비판 의식이 이하의 시에 보이는 괴기와 그 내용은 다르지만 그 원기는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하는 문학적 재능으로 사회에 인정받고자 했고 그러면서도 좌절된 자신의 포부에 대한 심적 고뇌가 컸다. 그의 시에 보이는 기괴한 내용이나 난해한 어구, 죽음의 세계 등은 그런 심리 작용이 다양하게 변모한 양상일 것이다. 이런 삶을 살다 이하는 27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시는 본래 23수의 연작시 중에 5번째 작품이다. 나머지 22수의 시 역시 역사상에 있었던 말을 노래하는데 모두 자신에 대한 연민과 사회에 대한 풍자가 그 속에 있다.

백설 같은 모래가 펼쳐진 광활한 대사막, 변경 연산 위에 뜬 구부러진 칼 같은 달, 그 아래에서 제대로 전마의 구색을 갖추고 맑은 가을날의 전장을 쾌주하고 싶은 말은 당시 전운이 걷히지 않은 북방 정세 속에서 이를 평정할 수 있는 재주를 갖춘 인재가 등용되면 그 뜻을 펴고 싶다는 말로 읽힌다. 바로 이하 자신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인 줄 알면서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되살아나는 꿈이 아니겠는가.

이 가을에 천리마가 족쇄를 끊고 초원을 쾌주하듯이 우리나라도 적폐들의 농간에서 벗어나 제 힘껏 달리기를 기원한다.

徐悲鸿, <八骏图>

365일 한시 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