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의 정국 – 역자 후기

이중톈의 글쓰기 전략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역자는 자기가 번역하는 외국어 텍스트의 글쓰기 전략에 관해 객관적으로 성찰할 여유를 갖기 힘들다. 이미 정해놓은 스케줄에 맞춰 정해진 번역량을 소화하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중톈 중국사》의 글쓰기 전략에 대해서도 무려 제 13권의 출간을 눈앞에 둔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고유한 개성을 짚어볼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행히 2017년 5월 11일, 이중톈이 어느 인터넷 사이트와 진행한 인터뷰가 직접적인 참고 자료가 돼줄 듯하다.

그 인터뷰에서 이중톈은 우선 자기가 중국사를 쓰게 된 동기를 짧게 밝혔다.

“옛날 사람이 쓴 역사는 옛날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사람의 역사는 어디에 있을까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현대인이 쓴, 중국 문명을 잘 정리한 중국사가 필요합니다.”

설마 ‘지금 사람’이 쓴 ‘옛날 역사’가 거의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중톈은 단지 자신을 만족시킬 만한 이상적인 중국사가 없다는 것이며, 그래서 자신이 그 중국사를 써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쓸 중국사를 차별화하기 위해 어떤 목표를 세웠을까? 인터뷰의 관련 내용을 정리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첫째, 그것은 충분히 통속적이어야 해서 현대적 담론 체계로 서술하여 독서의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둘째, 그것은 충분히 재미있고 필력도 충분히 우수하여, 역사의 피와 살을 표현하는 동시에 유머러스해서 독자가 읽기를 차마 못 멈추게 해야 한다. 
셋째, 그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저자가 충분한 학술적 수양을 갖춰서 고증이 강력하고 허튼 소리가 없어야 한다. 
넷째, 그것은 또 충분히 넓은 시야를 갖추고 중국 문명의 정신적 핵심을 종적으로 파고드는 한편, 중국 문명과 외국 문명의 차이를 횡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이 내용을 보고 나는 조금 소름이 끼쳤다. 번역 과정에서 내가 경험한 이중톈 글쓰기의 몇 가지 전략이 정확하게 위의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먼저 ‘가독성’과 관련된 첫 번째 목표는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도달하려 한다.

“이 시리즈를 쓰는 과정에서 저 자신에게 부여하는 조건은 아주 깔끔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쓸 것은 한 마디로만, 한 칼로 끝낼 것은 한 칼로만 해결하려 하죠. 이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은, 우수한 외과 의사가 돼서 매번 정확하게 메스를 놀려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가독성이 있어야 하죠. 《이중톈 중국사》의 표현 방식은 제 전작인 《삼국지 강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 책은 티브이 프로그램의 강연록이기 때문에 구어적이지만 중국사는 그렇지 않죠. 품격 있는 문체가 요구됩니다. (…) 그리고 저는 이 책이 리듬이 상당히 빠르고 그러면서도 리듬이 매우 분명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리듬이 빨라야 한다는 것은 저의 또 다른 조건입니다. 심지어 진정으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들자마자 숨 쉴 틈 없이 읽기를 바랍니다.”

확실히 이중톈의 문체는 간결하고 빠르다. 그러면서도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의미 맥락은 촘촘하고 긴밀하다. 하지만 독자는 단지 간결하고 빠른 문체에만 혹해 “숨 쉴 틈 없이” 책을 읽지는 않는다. 그러려면 글에 흡인력이 있어야 하며 그 흡인력은 또 다른 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역사 서술에) 추리소설의 기법을 도입해 끊임없이 미스터리를 배치합니다. 역사 속에는 본래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거나 이유를 잘 모르는 수수께끼가 많습니다.”

이 추리소설 기법은 재미를 지향하는 두 번째 목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실제로 《이중톈 중국사》를 읽다 보면 저자가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조성하고 또 독자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 후 그 질문의 답을 꼼꼼히 찾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이른바 ‘시나리오식 기법’을 병행한다. 주요 인물과 사건을 부각시킬 때마다 반드시 구체적인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마치 영화를 보듯 역사를 간접 체험하게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실증성과 연관된 세 번째 목표와, 동서 비교 사학의 시각을 확보하려는 네 번째 목표도 이중톈은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중톈 중국사》의 글쓰기는 확실히 묘하다.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술술 읽어나가는데도 각 대화마다, 장면마다 출처가 있다. 그리고 한나라의 국력을 강조하기 위해 로마를, 당나라의 세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로마를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고대 동서양과 동북아 문명의 교류도 낱낱이 들여다봄으로써 《이중톈 중국사》만의 참신성을 확보해간다.

요컨대 위에서 말한 간결하고 빠른 문체 그리고 추리소설과 시나리오의 기법이 《이중톈 중국사》가 표방하는 대표적인 글쓰기 전략이다. 우리 독자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찬찬히 짚어나간다면 각자 색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중톈易中天, 사진 출처 华西都市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