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낙빈왕駱賓王 감옥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在獄咏蟬

감옥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在獄咏蟬/당唐 낙빈왕駱賓王

西陸蟬聲唱 가을하늘에 매미 소리 퍼져가니
南冠客思侵 갇힌 신세 타향 설움에 잠기네 
那堪玄鬢影 검은 매미 하얀 머리 내게 와서
來對白頭吟 우는 것을 어찌 견딜 수 있겠나
露重飛難進 이슬 무거워 날아도 가기 어렵고
風多響易沉 바람 심해 울어도 쉬 잦아들거니
無人信高潔 아무도 나의 고결을 믿지 않는데
誰爲表予心 누가 날 위해 내 마음 알려 줄까

이 시는 낙빈왕(駱賓王, 약 619~687)이 678년에 감옥에 갇혀 지은 시이다.

낙빈왕의 생년은 사서에 나와 있지 않아 시 내용으로 우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일단 바이두 백과를 따랐지만 생년이 좀 빠른 면이 있다. 대만 천가시에서는 640 ~ 684라 되어 있는데 생년이 좀 늦다. 우리나라 백승석(白承錫)은 <낙빈왕부연구(駱賓王賦硏究)>(영남중국어문학회 2007)에서 638년 설을 제시하였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다.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올라갈 소지가 높다. 이 설을 따르면 낙빈왕은 당시 47세이고 바이두를 따르면 66세이다. 서문과 시의 원숙한 내용이나 백두(白頭) 등의 언급으로 볼 때 상당히 나이가 있을 것으로 일단 추정된다.

서륙(西陸)은 《수서(隋書)》에서 나온 말로 가을 하늘을 의미한다. 남관(南冠)은 재미난 고사가 있다. 춘추 시대 초나라의 악관(樂官)인 종의(鍾儀)가 진(晉)나라에 잡혀가서 옥에 갇힌 적이 있는데 항상 고국인 남쪽 초나라의 의관을 착용하고 있었다. 진 혜공(晉惠公)이 옥사를 시찰하다가 이 사실을 알고는 그를 불러 사연을 묻고 음악을 청해 들은 뒤에 풀어 준 일이 있다. 이런 사연으로 남관은 후일 ‘지조를 지키는 죄수’라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서륙’이라는 어려운 말을 왜 쓴 것일까? 그 이유는 남관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을 종의에 비유하고 싶어 남관이라는 말을 시에 쓰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대구를 맞추기 위해 ‘남’과 대응이 되는 ‘서’를 가진 ‘서륙’을 써서 가을 하늘을 대신한 것이다.

매미에 대해서 벌써 4편의 시를 소개하였다. 209회에서 백거이는 매미 소리를 듣고는 승진에 누락된 자신의 상심을 써서 유우석에게 보냈는데 1년 뒤에 유우석은 불평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들린 것이며 이젠 다 옛날 일이 되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212회에서 내곡(來鵠)은 원만한 고관의 입장에서 매미 소리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온유한 태도를 보였다. 217회에서 우세남은 ‘높은 데 있어 멀리 들리는 법, 가을바람이 전해 준 건 아니네 [居高聲自遠, 非是藉秋風]’라며 매미의 성품이 고결하기 때문에 남의 도움이 없어도 절로 멀리까지 그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우세남의 시가 고결한 사람이 제 세상을 만난 희망의 축가라면, 이 시는 고결한 사람이 세상을 잘못 만났을 때 어떤 울울한 상황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비가(悲歌)라 할 수 있다.

5, 6구에서 말한 ‘이슬 무거워 날아도 가기 어렵고, 바람 심해 울어도 쉬 잦아들거니’라고 한 구절은 시인 자신이 세상을 향해 날아보려고 해도 간신들이 팔다리를 잡아 비틀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려 해도 임금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세남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도 본성이 고결하여 그 명성을 사방에 펼칠 수 있다고 했지만, 낙빈왕이 볼 때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타락한 세상이 가만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각이 정반대이다.

낙빈왕은 이 시의 앞에 이례적으로 긴 서문을 썼다. 그 서문을 반드시 이 시와 함께 읽어야 한다. 한 대목만 본다.

“늘 저녁노을이 나무 그늘을 비출 때면 가을 매미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울곤 하는데, 소리가 우울하고 탄식하는 것 같아서 이전에 들었던 것보다 더 절절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이전과 달라서 벌레 소리가 전에 듣던 것보다 더 슬퍼서 그럴까?[每至夕照低陰, 秋蟬疏引, 發聲幽息, 有切嘗聞. 豈人心異於曩時, 將蟲響悲於前聽?]

낙빈왕은 십 수 년을 낮은 관직을 돌다가 시어사(侍御史)라는 언론과 관련이 있는 관직으로 승진을 하였는데 당시 측천무후에게 나름대로 간언을 하다가 진노를 사고 무고를 당해 뇌물을 먹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가 갇힌 감옥 옆에는 법관들이 공무를 보는 건물이 있었고 거기에 늙은 회화나무가 있었다. 낙빈왕은 거기서 들리는 매미 소리를 듣고 이 시를 쓴 것이다.

이 시는 시경에서 말한 부비흥(賦比興)이 다 있다. 시인의 억울한 사연을 누가 대신 말 좀 해달라는 말은 직설이니 바로 부(賦)이고, 이슬에 날개가 젖어 못 날아간다거나 바람 때문에 매미 소리가 묻힌다는 것은 매미를 통해 자신을 비유한 것이니 비(比)이다. 그리고 매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신세를 자각하고 타향 설움과 끝 모를 비탄의 바다에 잠겨드는 것은 흥(興)이다.

검은 옷을 입은 매미가 흰 머리를 한 나에게 와서 우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매미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슬픈 상념을 견디기 어렵다는 말이다. 매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자조와 자학에 의한 심리적 굴절, 그리고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밀려들 것이다. 굳이 검은 것은 무엇이고 흰 것은 무엇이다 한정해서 그 비유를 논할 것은 아니다.

한유(韓愈)가 맹교(孟郊)에게 준 글에서, 사물이 화평함을 얻지 못하면 운다고 했는데 이 시만큼 적절한 예도 드물 것이다. 자신의 고결함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낙빈왕의 입장에서는 절로 그 소리가 슬플 수밖에 없다. 특히 마지막 구를 보면 절망적인 심리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절규하는 매미 소리로 가득 차 있어 매미와 시인이 거의 분리가 되지 않는다. 인격화된 매미이자 매미로 표현된 시인 자신이니, 이른 바 물아일체이다.

낙빈왕은 나중에 풀려난 뒤로 관직을 그만두고 서경업(徐敬業)의 반란군에 참여하여 무후를 탄핵하는 글도 썼는데 무후가 그 글을 읽어보고는 이런 사람을 발탁하지 않았다며 재상을 질책했다는 일화가 있다. 반란이 실패하자 항주의 영은사(靈隱寺) 등에 숨어 살며 종적을 감추었는데 항주의 서호를 다루는 글에 낙빈왕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전해 온다.

양산박으로 모여든 108 영웅호걸들이 자진해서 도적이 되었는가? 다 이 시를 쓴 사람처럼 더러운 세상이 그들을 양산으로 올라가게 내 몬 것이다. 이시는 고결한 사람이 왜곡된 세상의 버림을 받을 때 그 마음이 돌아서는 어떤 전환 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시를 잘 이해하고 있고, 세상에는 이 시를 자신의 이야기로 읽을 사람이 역시 많을 것이라 본다.

江蘇 南通 駱賓王 墓, 출처 yiwus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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