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유한劉翰 입추일立秋日

입추일立秋日/송宋 유한劉翰

乳鴉啼散玉屏空 공활한 옥 병풍 어린 까마귀 울어 예고 
一枕新涼一扇風 잠자리에 시원한 바람 부채로 부치는 듯
睡起秋聲無覓處 잠에서 깨어보니 가을바람 찾을 길 없고 
滿階梧葉月明中 달빛 훤한 뜰에는 가득한 오동나무 잎

입추가 아직 한참 남았을 것 같지만 이번 주 목요일 8일이 입추이다.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지만 사실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유한(劉翰)은 장사(長沙) 출신으로 오대와 북송 시기에 활약한 명의(名醫)이다. 구판본 《천가시》에는 작가가 유무자(劉武子)로 되어 있는데 무자(武子)는 이 사람의 자이다. 이처럼 자를 이름처럼 쓰며 행세한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의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명한 중의(中醫) 집안에서 자라나 강동과 오월 지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송시기사》 에는 오공거(吳公踞, 호 운학(雲壑) 자 거보(居父))의 빈객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 시는 가만히 보면 앞 2구는 추풍(秋風)에 대해, 뒤의 두 구는 추성(秋聲)에 대해 서술하여 그 두 덩어리가 제목인 입추(立秋)를 받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옥병은 잡티 하나 없이 맑게 갠 가을 하늘을 비유한 말이다. 그래서 공활하게 보인다. 차가운 가을 공기에 놀란 어린 까마귀 새끼들이 울면서 그 허공 속으로 흩어져 간다. 정지용이 말한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의 서리 까마귀가 바로 이 시의 어린 까마귀이다. 또 이 까마귀가 울고 가 버려 하늘이 덩그렇게 빈 것이 아니라 공활한 하늘로 이 까마귀가 지나가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본 모습이다. 잠자리에 들 무렵,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는데 마치 누군가가 부채로 부쳐주는 바람 같다. 어린 까마귀 나는 특유의 가을 하늘의 정취와 이제 갓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을 노래하고 있다.

잠에서 깨어 잠결에 들었던 가을바람을 찾아보니 바람이 불어 온 곳은 찾을 길 없고 뜰에 오동나무 잎만 무수히 떨어져 있다. 그것도 환한 달빛 속에.
1구가 가을하늘의 모습이라면, 2구는 가을바람의 감촉이고, 3구가 가을바람의 소리라면 4구는 가을바람의 종적으로 오동나무 잎을 지목하고 있는 셈이다.

오동잎이 입추가 되면 가장 먼저 떨어져 가을을 알린다는 말이 있다. 이 시의 기본 발상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면서도 가을하늘의 정취와 가을바람의 촉감을 아우르고 가을바람의 종적을 매우 시적으로 묘사하여 입추의 계절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정말 가을이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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