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사공서司空曙 강 마을의 어느 날에江村卽事

강 마을의 어느 날에江村卽事/당唐 사공서司空曙

釣罷歸來不系船 낚시 마치고 돌아와 배를 안 매 두니
江村月落正堪眠 강 마을에 달은 지고 바로 잠들 시간
縱然一夜風吹去 설령 밤중에 바람에 떠밀려 가더라도
只在蘆花淺水邊 갈대꽃 핀 얕은 물가에 있을 뿐이거니

원제의 즉사(卽事)는 즉일(卽日)이 바로 그날, 즉경(卽景)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경치를 뜻하는 말이듯이, 바로 금방 일어난 일을 서술할 때 쓰는 말이다. 한시에서는 이 말 자체를 제목으로 삼거나 이 말이 들어간 제목이 아주 많은데 바로 자신에게 생긴 일에 대하여 딱히 제목을 정하기 곤란하거나 즉흥적으로 쓸 때 이런 제목을 붙인다. 한시 백일장을 보면 즉사나 즉경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다.

고기잡이를 나갔다 돌아온 어부는 배를 정해진 장소에 매어두지 않았다. 다음 구를 보면 아마도 이 어부가 늘 그런 것은 아니고 오늘은 달이 지는 너무 늦은 시간에 돌아왔기에 바로 잠을 자기 위해 굳이 귀찮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인 듯하다. 따라서 2구는 1구의 원인이 된다.

피곤하다 해도 만약 배를 잃게 되면 어부의 마음은 불안해질 것이다. 어부가 배를 매어 두지 않고 잠자러 가는 구체적인 이유는 그 아래 제시되어 있다. 설령 밤중에 바람이 불어와 이 배가 떠밀려 이동한다 하더라도 어차피 갈대꽃이 핀 이 강변 한 구석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풍취거(風吹去)’의 ‘거(去)’의 주체는 바람이 아니고 배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배가 떠밀려 가는 것을 나타낸 글자이다.

시는 밤중에 돌아온 어부가 배를 매 두지 않고 곧장 자기 집으로 자러 가는 상황과 배를 매 두지 않는 어부의 생각을 서술하는데서 그치고 있다. 그러나 시에 남는 여운은 그 이상이며 이 때문에 한 편의 시가 된다.

예의나 인간의 관습,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노장 사상이 그 저변에 흐르고 있다. ‘배를 매어 두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계선(不系船)’ 3 글자가 그러한 시상의 진원지이다. 본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상 작은 일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자신의 경험에서 재발견한 것이라 할까.

어부가 몰고 왔다가 매어두지 않은 배는 일상의 자잘한 일이지만 구속받지 않는 삶의 여유와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마치 취미나 일화 한 가지가 어떤 사람을 이해하는 창이 되듯 이 시는 독자를 삶에 대한 여유와 사색으로 이끈다. 강 마을의 가을 강변 밤 풍경을 배경으로 배 한 척이 놓여 있어 시의(詩意) 못지않게 화의(畵意) 역시 풍부하여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사공서(司空曙, 약 720~790)는 당나라 때 전기(錢起), 한굉(韓翃)등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시인으로 고향은 하북성 영년(永年)이다. 벼슬은 좌습유나 수부 낭중(水部郎中) 등 비교적 낮은 관직을 지냈고 당시에 상당한 시명이 있었다. 지난 109회, 135회에 이 시인의 시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는 강서(江西)로 귀양을 가서는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지낸 적이 있고 은거생활을 한 적도 있다. 이 시는 사공서의 그런 삶을 반영한다.

五代 趙幹, <江行初雪圖>, 台北故宮博物院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