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이청조李淸照 여몽령 · 저물녘 냇가 정자에서 놀던 때 기억나지如夢令 · 常記溪亭日暮

여몽령 · 저물녘 냇가 정자에서 놀던 때 기억나지如夢令 · 常記溪亭日暮/송宋 이청조李淸照

常記溪亭日暮 저물녘 냇가 정자에서 놀던 때 기억하지
沉醉不知歸路 술에 만취해 돌아오는 길 헤맨 그 때를
興盡晚回舟 저물어서야 흥이 다해 배를 돌렸으나
誤入藕花深處 착각해 연꽃 밭 깊숙이 들어갔네
爭渡 어쩜 좋아
爭渡 어쩜 좋아
驚起一灘鷗鷺 푸드덕 날아오르는 여울의 갈매기와 백로들

이청조(李清照, 1084 ~약1155)는 북송 대의 유명한 여류 사인(詞人)으로 고향은 산동 제남의 동쪽에 위치한 장구(章丘)이다. 호는 이안거사(易安居士)이다. 이청조의 아버지는 이격비(李格非)로 《낙양명원기(洛陽名園記)》를 썼는데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어 이청조가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다.

또 남편은 조명성(趙明誠)이라는 저명한 금석학자로 이청조는 그와 함께 금석문을 수집, 정리, 교감을 같이 하였다. 이렇게만 보면 아주 복 받은 인생인데 북송이 멸망하고 금나라가 침입하였을 때 집과 함께 이 책들이 모두 불에 타고 말았다. 1129년 남편이 죽은 뒤에는 동생에게 의지해 살았다. 제남에 가면 표돌천(趵突泉) 안에 이청조 기념관이 있다.

이 시는 이청조가 결혼하기 전 16세 전후의 처녀시절 개봉에서 지내던 1099년 무렵의 일을 사로 표현한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제목의 ‘여몽(女夢)’은 곡조 이름이지만 이 시의 분위기와 연결된다. 령(令)은 ‘짧은 곡’이라는 의미이다. 사를 연구한 당규장(唐圭璋, 1901~1990)은 《백가당송사신화(百家唐宋詞新話)》에서 첫 글자 상(常)은 분명히 상(嘗)의 오자라고 하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항상’ 보다는 ‘언젠가’라는 말이 확실히 좋다.

언제가 연꽃이 만발한 정자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술에 만취해 놀던 추억을 소재로 하였다. 돌아오다가 배가 연꽃 군락에 빠진 잊지 못할 추억을 회고식 구도로 전개하고 있는데 이는 이청조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쟁도(爭渡)에서 쟁(爭)은 ‘어떻게’의 의미이고 도(渡) 는 ‘난관을 해쳐나간다’는 의미여서, 전체 의미는 ‘어떻게 이곳에서 빠져 나가지?’라는 뜻이다. 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우리말로는 ‘어쩜 좋아! 어쩜 좋아!’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이 말은 당시 늦게까지 술자리를 즐기고 취해 돌아가다가 해는 지는데 배가 연꽃 밭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의 초조해 하는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자 한 편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은 여성 특유의 어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잘 보면 이 시가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점도 있다. 이러한 점은 이청조가 개인의 감정을 풀어내는 데서 그친 사인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대중의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역량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길을 헤매는 상황에서 ‘어쩜 좋아! 어쩜 좋아!’라는 말과 함께 연못가 여울의 갈매기와 백로가 놀라서 날아오르는 데서 시는 끝난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다는 말은 없다. 이러한 것이 오히려 시의 여운을 길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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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한시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