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얼시劉二囍-서점의 온도書店的溫度 역자 후기

역자 후기

1200북숍, 광저우의 밤을 밝히는 7개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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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류얼시라는, 인구 1500만 명의 대도시 광저우에 사는 30대 중반의 괴짜 청년이 있다. 체구가 작고 비쩍 말랐으며 자주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빵모자를 즐겨 쓴다. 사실 ‘류얼시’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그는 자신의 본명과 프라이버시를 남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꺼린다.

본래 안휘성 출신인 그는 2003년 화난이공대학 건축과에 합격해 처음으로 광저우에 왔다. 그 대학 건축과는 전국 랭킹 5위의 명문 학과이므로 아마 그도 학창 시절에는 주변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었을 것이다. 그 덕분인지 2008년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무난히 대형 국영기업에 건축디자이너로 취직했다. 하지만 금세 직장생활에 염증이 났다.

“건축디자인은 대부분 대단히 프로세스화된 업무여서 재미가 없더라고요. 내 건축의 욕구를 실현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3년 만에 그는 모두가 선망하는 그 기업을 나와, 집을 사려고 모아뒀던 돈으로 동료와 함께 커피숍을 열었으며 1년도 안 돼 분점 하나를 또 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번창 일로에 있던 그 사업을 갑자기 동료에게 다 넘기고 타이완으로 석사 공부를 하러 떠났다.

“그때 생각에, 만약 이렇게 계속 편안하게 가게 주인으로 살면 결국 ‘안락사’를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그 후, 2년간의 타이완의 유학생활은 그가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그는 2013년 10월 1일부터 51일간 1200킬로미터를 걸어 타이완 섬을 일주했다. 그 과정에서 무상으로 하룻밤의 숙소를 제공해준 여러 타이완인들의 마음씨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1995년 처음 문을 열어 타이완의 문화 성지가 된, 타이베이 청핀(誠品)서점 둔난점(敦南店)의 경영 방식에 시선이 끌렸다. 그 서점은 24시간 운영으로 열혈 독자들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생활용품 샵, 패션잡화점, 테마 식당을 겸하여 서점의 다원화 경영 모델이라는 아이디어를 그에게 선사했다. “비즈니스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지만, 문화 없이 살아남고 싶지 않다.”라는 청핀서점 CEO의 한 마디도 그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24시간 서점은 어둠이 깔린 뒤, 그 도시에 등불과 머물 곳을 제공하죠. 일종의 위로이자 보호이기도 하고요. 타이베이에 그런 정신적인 등대가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광저우에도 그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 생각은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마음속에서 익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4년 초, 중국에 돌아온 그는 위챗의 SNS에서 광저우에 24시간 서점을 열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개시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광저우와 서점을 사랑하는 30명의 친구들이 무려 120만 위안(한화 약 2억 원)을 모아준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마침내 2014년 7월 8일 0시에 광저우 최초의 24시간 서점, 1200북숍을 출범시켰다. ‘1200’은 그가 1200킬로미터의 타이완 도보 일주여행을 해낸 것을 기념해 지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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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류얼시는 어느 인터넷 매체의 인터뷰에 응했다. 1200북숍을 개업한 지 4년이 지난 이때, 그는 전직 건축디자이너이자 성공한 프랜차이즈 서점의 CEO로 제법 유명해져 있었다. 처음에 티위동로점 한 곳으로 시작한 1200북숍은 이미 광저우 내에서 7개의 분점을 갖고 있었으며 독특한 분위기와 경영 방식으로 난징의 셴펑(先鋒)서점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서점으로 미국 CNN에 의해 선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빵모자와 수염을 포기하지 않고 후줄근한 캐주얼복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앉은 류얼시는 성공한 CEO의 자신만만만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성 인터뷰어가 질문을 할 때마다 다소 시니컬한 태도로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듯이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지금 서점은 생존해나가기가 어려운가요?”
“아주 어렵죠. 저는 운이 좋은 것이고요.”
“만약 손해가 나는 상황이 되면……”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손해가 나면 문을 닫아야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다행히 현재 1200북숍은 적자는 아닌 듯했다. 사실 1200북숍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원화 경영을 택했다. 기본적으로 서점의 절반은 식음료를 파는 카페 공간이며 분점이 위치한 장소의 특수성에 따라 심야식당이나 화훼 판매점을 겸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분점은 기본적으로 인구 유동량이 많은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런 경영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면 출혈이 큰 24시간 영업 방식과 배낭족에게 제공되는 소파방의 운영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류얼시의 시니컬한 대답은 계속되었다.

“서점의 미래, 그리고 1200북숍의 미래는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그런 문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어쨌든 서점은 미래가 있다고 믿으니까요. 하지만 그 미래가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대표님의 미래는 어떨 것 같나요?”

이런 질문을 이미 많이 받아봤기 때문일까. 대답하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도 그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이 서점을 경영하고 이 서점과 함께 있는 것이죠. 이게 저의 책임감이며 나아가 사명감 그리고 영광이기도 하지요. 저는 계속 이 일을 할 겁니다. 만약 서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그때가 바로 제 사명이 끝나고 정체성이 바뀌는 때가 되겠죠.”

그리고 그는 드물게 약 1초 정도 말을 끊고 딴 데를 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1200북숍은 문을 닫게 될 겁니다.”

놀란 인터뷰어가 물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사람이 언젠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러면 대표님은 지금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시죠?”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 서점이 저의 생각과 함께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겁니다.”

류얼시는 끝까지 담담했고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는 자기가 말한 대로 1200북숍과 혼연일체가 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1200북숍이 그의 집이고 그의 모든 것이 속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광저우에 집도 차도 가족도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7곳의 1200북숍뿐이다. 1200북숍의 모토는 처음부터 “광저우의 밤을 위해 한 개의 등불을 켜는” 것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등불은 7개가 되었고 그 등불 아래 그의 서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며 책을 읽고, 잠을 자고, 심야 좌담회를 하고, 이제는 독서 토론회까지 한다고 한다.

인터뷰 중간에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저는 우리 서점이 광저우의 자랑거리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 서점 때문에 광저우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것이 우리 서점과 우리 서점의 책이 맡은 역할입니다.”
“혹시 광저우 외에 다른 지역에도 서점을 내실 계획이 있나요?”

인터뷰어의 질문에 그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1200북숍은 광저우의 것입니다. 심지어 저도 광저우에 속한 사람이지요.”

필자는 이 책을 번역한 인연으로 올해 10월 광저우와, 광저우의 것이자 광저우의 자랑임이 분명한 그 1200북숍을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 또 인연이 된다면 1200북숍의 무료 독서코너에서 밤을 새며 책을 읽다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 그곳을 어슬렁거리는 류얼시에게 조심스레 악수를 청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