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얼시劉二囍-서점의 온도書店的溫度 9

9 서점에서 일 년 간 밤을 샌 부부一对在书店通宵看书一年的夫妇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때, 나는 매일 무료 독서코너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테이블 위에 밀크티 한 잔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아주머니는 최근 일 년 간 매일 밤마다 서점에 나타났는데 뭔가를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점원에게 물어보니, 그날 그녀가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주워 서점 카운터에 가져다주었는데 휴대폰 주인이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음료수를 사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휴대폰 주인에게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휴대폰을 잃어버린 기분이 어떤지 저도 잘 아는데 당연히 찾아드려야죠.”

그렇다. 반년 전 그녀도 서점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흥분해서 자기 옆의 남자가 휴대폰을 훔쳤다고 계속 주장했으며 두 사람의 말다툼 때문에 잠깐 서점이 발칵 뒤집혔다. 나중에 감시카메라 영상을 통해 그 남자가 결백하다는 것이 증명되는 바람에 그 일은 바로 흐지부지되었다.

사실 서점에서 일 년 내내 밤을 새는 사람은 아주머니 혼자만이 아니었다. 문가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오십대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었는데 매일 그녀를 데리고 서점에 나타났다.

그 전까지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는 즉시 읽고 있던 《자치통감》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답례를 했다. 이어서 우리는 서점 문 앞에 나가 새벽 두 시의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가 먼저 중난하이(中南海)를 한 개비 꺼냈고 우리는 각자 담배를 피워 물었다. 보통 중난하이를 피우는 사람은 북방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넌지시 물었을 때 그가 꺼내 보인 신분증을 보니 1962년생이었고 호적은 광저우 싼위안리(三元里)였다. 뜻밖에도 그는 진짜배기 광저우 토박이였다.

“제가 젊었을 때는 개혁개방의 기세가 한창 뜨겁고 브레이크댄스와 나팔바지가 유행하던 시대였죠. 그때 저는 싼위안리에서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나이가 스물 남짓이었는데 유행에 아주 밝았었죠. 제 아내는 활달한 열일곱 살 아가씨였고요. 집은 웨슈(越秀)였지만 싼위안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죠. 마침 제 가게가 그 학교 옆에 있어서 아내는 늘 제 가게로 머리를 자르러 왔었어요. 그렇게 둘이 서로 잘 알게 되었는데 얼마 안 돼서 아내는 제 구애에 두 손을 들었고 졸업 후 자연스럽게 제 미용실의 여주인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걸음을 멈춘 적이 없었고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싼위안리는 이미 도시 속 빈민촌이 돼버렸지만 그곳의 집 몇 채를 세준 덕분에 그의 가족은 줄곧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아내한테 이상한 증상이 생겼어요. 밤만 되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사방으로 의사를 찾아다니고 적잖이 약값을 날렸지만 끝내 방법을 못 찾았죠. 그리고 아내가 밤에 집에 있으면 너무 초조해해서 늘 데리고 바깥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신문 보도를 보고 1200북숍에 온 겁니다. 사실 몇 년 동안 여기가 유일하게 제 아내가 밤에 마음의 안정을 찾은 곳이었어요. 그 후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오게 되었죠.”

그들은 보통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서점에 와서 밤을 새고 이튿날 9시에서 10시에 귀가해 정오까지 차를 마신 다음, 오후에는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 또 귀가해서 집안 정리를 하고 다시 서점으로 돌아왔다. 서점은 아주머니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기는 했지만 독서로 기나긴 밤을 보내지는 못했다. 그녀는 늘 신문 한 부를 갖고 왔고 신문을 다 본 뒤에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깔고 손톱이나 손가락의 피부를 다듬었다.

“그건 다 상식에 안 맞는 무의미한 행동이에요. 마음의 병과 싸우고 있는 거죠.”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서점에서 두 분은 늘 떨어져 앉으시던데요.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고. 왜 그러시는 거죠?”
“우리는 거의 24시간 붙어 있거든요. 할 말은 서점에 오기 전에 다 마친 상태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가 제게 말을 하고 싶어 할 때 바로 상대해주는 거죠. 그래서 늘 아내 근처에 있으려고 해요. 아내가 화장실에 갈 때도 데려다주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죠.”

여기까지 말했을 때 우리는 벌써 담배를 다섯 개비나 피운 뒤였다. 나는, 병의 고통에 사로잡힌 아내를 위해 장사도 자유도 포기하고 철저히 자기 삶의 리듬을 바꾼 그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핏발 선 두 눈 속에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선생님은 꼭 매일 그렇게 부인 곁을 지키며 밤을 새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방식은 없는 건가요?”
“그 사람은 제 아내니까요. 저는 제가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지만 그의 말을 다 듣고 나니 아예 위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그는 거꾸로 스스로를 위로하듯 말했다.

“우리 부부는 같이 살며 그리 큰 고생은 하지 않았어요. 아내가 병이 난 뒤에도 치료비를 날리고 미용실 문을 닫기는 했지만 월세 수입이 있어서 아주 궁색한 정도는 아니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마도 이게 운명이겠죠. 하늘은 시련을 내려 인생이 좀 더 공평해지게 하니까요.”

밤은 낮의 소음과 번잡함을 걸러내므로 잠 못 이루는 사람과 잘 곳 없는 사람의 세계는 때로 거짓처럼 느껴질 만큼 더 진실하다. 사실 병자가 어디 그 아주머니 한 사람뿐이겠는가. 낮의 우리는 다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이들이며 밤에도 수많은 이들이 궁지에 몰린 외로운 짐승이 된다.

너무 많은 아내들이 쉽게 전처가 되고 마는 오늘날, 나는 ‘아내’라는 단어가 그토록 의미심장한 말인지 너무 오래 느껴보지 못했다. 자리를 뜨기 전, 나는 벽 너머 소파에서 잠이 든 아가씨를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저 아가씨는 전에 창업한 회사가 파산한 뒤,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어요. 지금은 머물 데도 없어서 매일 우리 서점에서 자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