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육유陸游 幽居卽事 其九은거해 살면서 9

幽居卽事 其九은거해 살면서 9/송宋 육유陸游

屏居江海涯 강과 바닷가에 은거해 사니
杳杳菰蒲深 아득히 줄과 부들 우거졌네
俯仰夏令中 여기서 여름철 지내다 보니 
澤國正多陰 수향이라 안개가 많이 끼네 
桑椹熟以紫 오디는 새까맣게 잘 익었고
水鳥時遺音 물새는 이따금 울면서 가네
偶得一瓢酒 우연히 술 한 호리병 얻어
鄰里聊相尋 이웃 동네나 찾아 가 보네

이 시의 제목으로 지은 시가 총 9수 있는데 이 시는 그 중 9번째 시이다. 1207년 여름 육유(陸游, 1125~1210)가 83세 때 산음(山陰)에서 지은 시이다.

육유의 만년 시답게 은거해 사는 노인의 한가한 일상이 잘 드러나 있다. 83세나 된 노인의 내면 풍경을 이런 시를 통해 엿본다는 것이 흥미롭다.

부앙(俯仰)은 얼굴을 쳐들었다 숙였다 하는 의미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택국(澤國)은 수택(水澤)의 나라, 즉 강이나 늪이 있는 고장을 말하니 수향이란 말과 같다. 호수와 강이 많은 중국 강남 일대를 흔히 수향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말이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바다와 가까우니 해국(海國)이라 쓰고 개마고원처럼 눈이 많은 오는 곳은 설국(雪國)이라 할 수 있으며, 꽃이 많은 동네는 화시(花市), 잠의 세계는 수향(睡鄕)으로 부르는 것이 다 이런 것이다.

육유가 쓴 나머지 8편의 시 내용을 살펴보면, 육유는 당시 새벽에 일어나 밥 한 그릇을 먹고는 하루 종일 차나 약을 먹을 뿐 불을 때서 밥을 짓지는 않았다. 또 이 당시 술을 끊어 도연명이 지은 <술을 끊고서[止酒]>라는 시를 때때로 외웠다. <술을 끊고서>는 술을 마실 때는 술이 정말 좋은 줄 알았는데 끊고 나니 더 좋다는 내용이다. 너럭바위 위에 누워 솔바람 소리를 듣기도 하고 뽕나무와 토란대 근처에서 시를 읊기도 하였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볼 때 마지막 구절은 우연히 생긴 한 병 술을 자신은 안 먹고 이웃 동네에 가지고 가서 아는 사람에게 주려고 가는 것으로 보인다. ‘료(聊)’자를 쓴 것은 바로 자신은 못 먹지만 아쉬운 대로 이웃 마을에 사는 지인을 주면 된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시골에서 지체는 있는데 몸이 아프거나 나이 많은 노인네 집에 인사하러 가면 좋은 술이 나오는 것이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인 모양이다.

육유가 은거해 살던 곳에 여름철 줄과 부들이 강과 바닷가에 아득히 퍼져 자랐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여름철을 지내다 보니 안개가 자주 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누에가 다 자라 고치를 짓도록 섶에 올릴 때가 되어 오디가 까맣게 익었다.

강과 호수 그곳에 자라는 풀들, 그리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수묵화 속에 붉고 검은 빛이 선명한 오디는 시에 일순간 생동감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연히 생긴 술 한 병을 들고 이웃마을 사람에게 주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은 앞에서 말한 안개처럼 시에 서정의 꽃을 피우고 있다. 80대 노 시인의 풍도가 긴 여운을 남긴다.

黃君璧, <蒼崖飛瀑>, 출처 故宮博物院, 台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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