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문징명文徵明 계곡 정자에서 손님과 나누는 대화 溪亭客話

계곡 정자에서 손님과 나누는 대화 溪亭客話/명明 문징명文徵明

綠樹陰陰翠盖長 녹음은 그늘 좋고 비취 일산 높은데
雨餘新水漲廻塘 비온 뒤 불어난 물 연못을 돌아드네
何人得似山中叟 어느 누가 산속의 이 노인과 같으리
對語溪亭五月涼 계정에서 대화하니 오월이 시원하네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의 그림과 제화시(題畵詩)가 좋아 조그만 글이라도 한 편 써 볼까 해서 여러 해 전에 번역해 두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 달력에 해당 시가 없어 한 편 꺼내어 본다.

제화시는 그림을 전제로 하고 있고 산수화는 이런 제화시를 함께 읽을 때 기본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이런 바탕 위에서 후인의 감상 시와 비평, 인장, 그리고 그림을 그린 당시의 구체적인 배경을 연구하면 어느 정도 이해에 도달한다. 이런 이해 속에서 다른 화가와의 비교, 통시적인 고찰 이런 것이 더해지면 정말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 그림과 시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계곡 정자에서 찾아온 손님과 대화하며 오월의 시원함을 느낀다는 문인의 정서이다. 바로 3구의 내용이다.

정자 앞의 바위산과 주변의 수목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옆에 선 키 큰 나무는 마치 비취빛 일산과 같다. 문징명의 그림엔 고송이 많은데 여기엔 활엽수를 그렸다. 비가 갠 뒤라 산에서 불어난 물로 폭포에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진다. 그 물은 큰 너럭바위를 돌아 연못으로 흘러든다. 이것만 해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선경이건만 화가이자 시인은 그 바위위에 모옥 정자를 하나 배치하였다. 작은 인공이 자연의 향유를 더 풍요롭게 한다. 이러한 것은 모두 문징명 자신의 취향이자 인품이다. 붉은 옷차림은 문징명이고 대화를 나누다 폭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이는 방금 찾아온 손님이다.
세속의 시비총중과 명리의 오니(汚泥) 속에서 사는 사람이 이런 낙을 어찌 알겠는가. 이런 계곡의 정자에서 보내는 오월의 시원함은 일사(逸士)의 여름 별미라고나 할까.

대만 고궁박물원 연구원이 쓴 해설에 의하면 서체, 필법 등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을 조년기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도록의 연대순 배치를 참조할 때 48세 이전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그림 상단 우측에 있는 시가 지금 소개한 문징명의 시이고, 좌측의 꼬불꼬불해 보이는 필적의 시는 건륭제가 문징명의 운자를 그대로 사용해 쓴 시이다. 태곳적 사람처럼 즐겁게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세간의 염량세태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해 놓았다. 그 주변의 어지러운 인장은 건륭의 뒤를 이어 가경, 동치 황제가 감상한 감장인(鑑藏印)과 황실 서화 창고인 서거보급(石渠寶笈) 등의 장서인(藏書印)이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과 DMZ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고 하는데 꼭 이루어질 바란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과 시에서 구현한 대로 정말 대화의 즐거움과 여름의 시원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시원한 산수화 한 폭을 올려 기원하는 마음을 보탠다.

문징명, <溪亭客話>, 종이에 옅은 채색, 64.5 × 33.1cm, 고궁박물원. 우측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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