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묘지”와 “보물이 가득한 땅”


우리나라 위례신도시 주민들은 어감이 안 좋다는 이유로 서울 지하철 8호선 ‘장지역’ 이름을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말에서 ‘장지’라고 하면 일단 묫자리부터 연상된다는 이유에서이다. (각주1) 물론 한자는 ‘長旨’와 ‘葬地’로 서로 다르다. 하지만 같은 발음으로 인해 생기는 부정연상 때문에 주민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도 특히 지명에 민감하다. 기왕이면 좋은 의미를 가진 동네에 살기를 원하고, 부정연상이 있는 지명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캐나다 밴쿠버(Vancouver)에는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밴쿠버는 19세기 골드러시 때 미국으로 온 중국인 노동자(苦力) 가운데 금을 찾아 캐나다까지 이주하고 정착하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1997년 홍콩 반환 등을 계기로 중국 이민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지금은 밴쿠버 인구 250만명 가운데 중국인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하는 캐나다의 밴쿠버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좁은 의미로 밴쿠버는 작은 도시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의 밴쿠버와 그 주변의 ‘리치몬드’(Richmond:列治文), ‘버나비’(Burnaby:本那比), ‘써리’(Surrey:素里), ‘코퀴틀람’(Coquitlam:高贵林) 등 인근의 10여개 작은 도시를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다. 주변 도시를 포함한 넓은 밴쿠버를 ‘메트로 밴쿠버’(The Metro Vancouver)라고 하며 중국어에서는 ‘大温哥华地区’, 줄여서 ‘大温地区’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모두 大温地区을 그냥 ‘밴쿠버’(温哥华)라고 한다.

밴쿠버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는 중국인들은 ‘大温地区’에 골고루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밴쿠버시의 동쪽에 있는 포트 무디(Port Moody)라는 지역에는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지 않다. 그 이유가 뭘까?

‘Port Moody’의 영어 발음은 중국어의 ‘破-墓地’(pò-mùdì)와 발음이 유사하다. 영어 발음에서 자연스럽게 묘지(墓地)가 연상된다. 묘지(墓地)라는 이름도 기분 나쁜데 게다가 ‘破’자가 앞에 붙어서 ‘부서진 묘지’가 된다.

실제로 ‘Port Moody’의 중국어 이름은 따로 있다. 항구라는 뜻의 ‘Port’는 의미 그대로 ‘港’으로 번역되어 穆迪港(Mùdí gǎng)이라고 쓴다. 하지만 여전히 穆迪(Mùdí)라는 발음에서 묘지가 연상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부정연상 때문에 중국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기를 꺼려한다.

‘Port Moody’시(市)에서도 이러한 도시 브랜드의 부정연상을 해결하고자 1998년 ‘Port Moody’의 중국어 이름을 ‘滿地寶’(Mǎndìbǎo)라고 바꾸었다. (각주2)‘滿地寶’는 ‘온 땅에 보물이 가득하다’라는 뜻으로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이름이다. 언뜻 보기에 ‘Port Moody’라는 영문 이름과 ‘滿地寶’(Mandibao)라는 중문 이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滿地寶’를 광동어로 발음하게 되면 满(mun5) 地(dei6) 宝(bou2)로 ‘Moody Port’와 비슷하게 들린다. 표준 중국어로 발음할 때 생기는 부정연상을 피하기 위해 광동어를 사용하였고,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들 가운데 광동 출신이 많다는 점도 이러한 개명 작업에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이렇게 중국어로 개명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 원음에서 연상되는 묘지의 느낌은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현재도 ‘Port Moody’에는 중국인이 많이 살고 있지 않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 비해서 집 값이 저렴하다고 한다. ^^ 밴쿠버 지역에서 중국인이 주로 선호하는 곳은 ‘코퀴틀람’(Coquitlam:高贵林)과 ‘리치몬드’(Richmond:列治文) 지역이다. 이 두 지역이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코퀴틀람’은 ‘高贵林’이라는 중국어 이름에서 나타나는 고귀함 때문이고, ‘리치몬드’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적인 이유는 단순히 교통이 편리하고 자연환경이 좋아서가 아니고, 이 지역의 모양이 상서롭다 하여 선호하는 것이다. 밴쿠버 지역의 지도를 살펴보면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한 모양을 찾을 수 있는데, 밴쿠버가 커다란 용머리에 해당하고 리치몬드가 바로 여의주에 해당하는 위치다. 용을 상서롭게 생각하는 중국인, 그리고 여의주(龍珠)가 가지고 있는 신비한 힘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각주 (1)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70818851


각주 (2) https://zh.wikipedia.org/wiki/%E6%BB%BF%E5%9C%B0%E5%AF%B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