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이신李紳 농부의 고생을 생각하며憫農

농부의 고생을 생각하며憫農/당唐 이신李紳

1.
春種一粒粟 봄에 좁쌀 할 알 심어 
秋收萬顆子 가을에 만 알을 거두네
四海無閑田 세상에 노는 땅 없건만
農夫猶餓死 농부가 굻어서 죽다니

2.
鋤禾日當午 한 낱에도 김을 매니
汗滴禾下土 포기마다 땅방울 뚝 뚝 
誰知盤中飱 누가 알리 밥상의 밥이
粒粒皆辛苦 한 톨 한 톨 피땀인 것을

이신(李紳, 772~846)은 당나라 때 재상을 지낸 시인이다. 원진(元鎭), 백거이(白居易)와 교유하였다. 이 시는 이신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시를 사회시나 애민시라고 한다. 민생고라든가, 학정을 주제로 하여 위정자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일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한다. 흔히 한시의 주제로 즐겨 다루어지는 풍류나 사교, 한적 등에 비해 이런 종류의 시는 적은 편이지만 그 전통은 아주 오래되었다. 《시경》과 《초사》 에 벌써 시의 사회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아는 요임금 때의 <격양가>와 수많은 악부시 중에는 사회시가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전통 시대의 사회시들은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당사자들이 쓴 시는 거의 없고 주로 정치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주로 창작하였다.

우리나라에도 김시습이나 정약용 같은 분이 이런 사회시를 많이 썼지만 어디까지만 신분이 달랐으며 어무적 같은 경우는 노비의 신분으로 사회시를 썼으나 엄격히 말하면 어머니만 노비이지 아버지는 양반이었다. 조선시대에 중인이나 노비들이 사회시를 썼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홍세태나 유희경의 시를 보면 주로 자신도 사대부들의 풍류를 이해하고 같은 수준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하였지 다른 중인이나 노비들의 불합리한 대우와 사회적 억압을 시로 다루지는 않았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대한 점은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당사자 본인들이 자신들의 색깔과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자신의 시각에서 직접 주장한다는 점에서 전통 시대의 민본주의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순수하게 민주주의 원리가 지켜지지는 않고 자본과 권력에 의해 굴절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노동자 본인의 시각으로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은 이런 시들은 의미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문학도 회화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적인 면이 있고 또 시를 쓰려면 글을 다루는 능력이 필요하다. 문학과 예술은 주제가 곧 작품이 되지는 않고 형식과 예술성이라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 완성된다. 심지어 다큐멘터리나 뉴스도 엄밀히 말해 그것이 바로 사실 자체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사회시는 문학에 조예가 깊은 시인들이 잘 쓰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시라고 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외에 그 구성이나 의사 전달 방법 등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이다.

첫 시는 세상에 빈 땅이 없이 농부가 경작을 하는데 정작 농부가 굶어 죽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강렬한 문제 제기만으로 사람들은 그 질문에 공감하고 생각을 한다. 한 알을 심어 가장 많은 알을 수확하는 조를 심고 천하에 놀리는 빈 땅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데 농부들이 왜 굻어서 죽어야 하는 것인가? 현재의 질문을 던져 보자. 세상에 아파트가 넘치는데 50이 넘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는데 아직 아파트 한 채도 소유하지 못한 것은 왜 그런가?

두 번째 시는 한 톨의 밥알에 담긴 농민의 고생을 말하고 있다. 내 입에 들어오는 한 숟가락의 밥에는 수많은 밥알이 붙어있다. 첫 시에 쌀을 말하지 않고 조를 말해서 더욱 시에 생기가 돈다. 조밥 한 숟가락을 내 입에 넣자면 온 여름 내내 풀과 전쟁을 치러야 하고 가을에 수확을 해야 하고 조 알갱이를 절구에 넣고 찧어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 밥알 한 톨 한 톨에 농민의 고생이 어려 있다는 말이다.

시는 아주 짧고 간단하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당시에 사람들은 이 시를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교화의 측면에서 이 시를 보면 더욱 의미가 살아난다.

사진 출처 烟花美文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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