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蔣興哥重會珍珠衫 2

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 2

청운은 설 할멈을 삼교아에게 안내하였다. 삼교아를 본 설 할멈은 속으로 혼잣말을 하였다. ‘참으로 하늘이 낸 미인이로다. 진대랑이 반한 것도 무리가 아니군. 내가 남자라도 반하겠는걸.’

“이 할망구가 예전부터 마님 말씀은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만 인연이 없어 이제야 인사를 올립니다.”

“할멈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저는 설가이옵고, 동쪽 거리에 살고 있습지요. 예서 멀지 않은 동네이지요.”

“아까는 왜 물건들을 팔지 않으셨어요?”

“팔지 않을 거면 뭐 하러 가지고 나왔겠어요? 한데 그 남자 손님 물건 볼 줄 모르더라구요.”

설 할멈은 상자를 열고 비녀랑 귀고리를 꺼내어 삼교아에게 보여주었다.

“마님, 이런 패물은 공전만도 수월치 않게 들지요. 그런데도 얼토당토않은 값을 대다니.”

이번에는 진주를 꺼내더니 중얼거린다.

“이런 특등품을 그래 헐값에 사려 들어!”

삼교아는 설 할멈에게 그 남자가 도대체 얼마를 제시했는지 물어 보고는 말하였다.

“정말 할멈 말대로군요.”

“역시 품위 있는 집안 마님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아까 그 남자 손님보다 보는 눈이 열 배 백 배 높으시네요.”

삼교아는 몸종을 불러 차를 내오라 시켰다.

“마님, 번거롭게 차는 무슨. 이 늙은이가 급한 일이 있어 서쪽 거리에 가던 길이었는데 아까 그 손님을 만나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어요. 마님, 이 보석 상자를 좀 맡아 두시면 어떨까요? 제가 가서 일보고 얼른 다시 돌아옵지요.”

삼교아는 청운을 시켜 설 할멈을 배웅하라 하였다. 설 할멈이 떠난 후 삼교아는 찬찬히 비녀와 보석들을 구경하였다. 물건이 맘에 들어 할멈이 오면 몇 점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였으나 닷새가 지나도록 할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엿새째 되는 날 오후, 갑자기 한바탕 큰비가 내렸다. 비가 채 긋기도 전에 땅땅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삼교아가 몸종을 시켜 문을 열어 주니 설 할멈이 반나마 젖은 채 다 해진 우산을 들고 들어오며 중얼댄다.

“날 좋을 때 다 제쳐두고, 하필 비 오는 날 찾아오게 되었군요.”

설 할멈은 우산을 계단 옆에 세워 두고 이층으로 올라와 인사를 올린다.

“마님, 이 할망구가 약속을 못 지켰네요.”

삼교아는 황망히 인사를 받으며 묻는다.

“그래, 요즘 어디 다녀오셨소?”

“딸년이 애를 낳아서 좀 가 보았습지요. 게서 며칠 머물다가 오늘 아침에야 돌아왔답니다. 도중에 비를 만나 아는 집에서 우산을 빌려쓰고 오는 길인데 우산은 좀 해졌지만 그나마 다행이죠.”

“할멈은 슬하에 자식을 몇이나 두시었소?”

“아들 하나 있는 건 이미 장가보냈고, 딸이 넷 있습죠. 일전에 출산한 년은 넷째 년인데 휘주徽州 사는 부잣집 주朱씨네에 소실로 보냈지요. 북문 밖에서 소금 장사하는 집이 바로 그 집이랍니다.”

“할멈에게 딸이 많아 딸 혼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신 모양이구려. 우리 고장에도 좋은 혼처가 많은데 뭐 하러 다른 고장 사람에게 그것도 후처로 보내셨소?”

“그건 마님이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타향 사람이라도 마음만 맞으면 더 나아요. 게다가 우리 딸년이 소실이라곤 해도 본마누라는 그저 집이나 지키고 있고 그 애가 늘 가게에서 하인 부리며 대접받고 살지요. 제가 한번 놀러가기라도 하면 그 주 부자가 나를 깍듯이 장모 대접해 주지요. 이제, 아들까지 낳아 주었으니 더 말할 나위 없지요.”

“할멈에게 복이 있어서 그렇게 시집을 잘 보냈구려.”

이때, 청운이 차를 가져와 두 사람은 같이 차를 마셨다.

“오늘은 비가 와서 볼일도 없는데, 마님 머리장식이나 좀 구경해도 될까요. 예쁜 걸 보면 기분도 좋아지거든요.”

“그냥 대강대강 사는 형편인데 할멈 맘에 들 만한 것이 어디 있을라구요.”

삼교아가 패물함을 열어 비녀, 팔찌, 노리개 등을 보여 주니 설 할멈은 입을 벌리고 다물 줄을 모른다.

“이렇게 좋은 것들을 가지고 계시니 이 할망구가 팔러 다니는 물건들이 눈에 차지 않는 것도 당연하시지.”

“무슨 말씀, 그렇지 않아도 할멈 물건을 좀 사려던 참이었다오.”

“마님이야 물건 볼 줄 아는 분이신데 제가 이러쿵저러쿵 말할 것이나 있나요.”

삼교아는 설 할멈의 물건들을 살펴보더니 대나무 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말하였다.

“할멈이 직접 열고 보여 주시구려. 그것이 좋을 것 같네요.”

“참 세심하기도 하셔라.”

설 할멈은 상자를 열어 물건들을 하나씩 보여 주었다. 삼교아와 설 할멈 사이의 흥정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로 쳐주시면 이 할망구도 장사할 맛나지요. 한두 푼 덜 받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좋아.”

“어떡한다? 지금은 돈이 다 안 될 것 같으니 우선 반만 받아가고 나머지는 우리 바깥양반이 돌아오면 그때 계산해 드리지요. 그렇지 않아도 돌아오실 때가 다되었어요.”

“며칠 늦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싸게 드린 것이니 나중에 은자를 주실 때 상품의 은자로 챙겨 주세요.”

“그야 뭐가 어렵겠어요.”

삼교아는 맘에 드는 보석과 장신구를 챙겨 넣고, 청운을 불러 술상을 준비하라 일렀다.

“요 며칠 제가 생각 없이 마님을 번거롭게 하고 있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어요.”

“늘 할 일없이 심심하였는데 할멈 덕에 오히려 내가 재미있다오. 앞으로도 시간 나면 자주 들르시오.”

“마님이 그렇게 이 할망구를 생각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네요. 실은 저도 집에서 마땅히 하는 일이 없어요.”

“할멈의 아들은 집에서 무슨 일을 하오?”

“그저, 보석 사러 오는 손님들 상대하는 정도가 고작이죠. 날마다 술값 타령에 사람 환장할 지경이랍니다. 그나마 제가 이 집 저 집으로 장사하러 다니는 바람에 그 꼴을 안 보지요. 만약 늘 집 안에 처박혀 지내야한다면 아마 미쳐 버렸을 거예요.”

“할멈 집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으니 자주 놀러 오시구려.”

“어떻게 번번이 폐를 끼칠 수야 있나요.”

“무슨 그런 말씀을!”

두 몸종이 부지런히 술상을 보는데 술잔과 젓가락, 말린 닭고기 두 접시에 육포 두 접시, 생선 두 접시, 과일과 채소까지 두루 차려낸다.

“이런 진수성찬을 다 준비하시다니!”

“있는 대로차렸으니 흉보지나 마시오.”

삼교아가 술을 따라 설 할멈에게 권하면 설 할멈은 다시 삼교아에게 권하며 마주 앉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삼교아의 술 실력이 본디 만만치 않은데다 설 할멈역시 사양하지 않고 대작하니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한다. 술을 마시다 보니 해도 저물고 비도 그쳤다. 설 할멈이 인사하고 돌아가려 하니 삼교아가 다시 술잔에 술을 부어주며 마시고 가라 한다. 술을 마시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삼교아가 설 할멈에게 말한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얼른 돈을 가져오리다.”

“마님, 시간이 많이 늦었네요. 어디 오늘 저녁만 날인가요. 내일 와서 받도록 하지요. 비가 와서 길도 미끄러우니 보석 상자는 예다 두고 가겠습니다.”

“그럼 내일 꼭 오시게.”

설 할멈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우산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세상에 저 요사스런 할멈,
이 사람 저 사람 젊은 처자들 바람 들게 하는구나.

한편, 진대랑은 자기 숙소에서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기다렸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오늘은 마침 비도 내리니 할멈이 장사 나가지 않고 집에 있겠거니 하여 진흙탕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혼자서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한 끼 때우고 다시 설 할멈 집을 찾아갔으나 설 할멈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물녘이 다 되어 돌아가려는데 설 할멈이 얼굴이 불그스레하여 뒤뚱뒤뚱 골목 어귀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진대랑이 물었다.

“그래, 일은 어떻게 되고 있소?”

설 할멈은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아직 일러. 이제 겨우 씨를 뿌려서 아직 싹도 나지 않았는걸. 5년이고 6년이고 지나서 꽃피고 열매 맺히면 그때 천천히 따먹는 게지. 괜히 우리 집 근처도 얼쩡거리지 마시우. 난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진대랑이 보니 설 할멈이 술에 만취했는지라 아무 말 하지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날 설 할멈은 싱싱한 과일에다, 닭고기, 생선, 고기까지 사서는 요리사를 불러 음식을만들게 하였다. 준비된 음식을 찬합 둘에다 정성스럽게 담고, 일등주 한 병을 사서는 옆집 사는 소이小二 놈을 불러 짊어지게 하여 삼교아 집을 찾아갔다. 마침 삼교아는 설 할멈이 오지 않기에 청운을 시켜 나가 살펴보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설 할멈은 소이 놈에게 아래층에다 짐을 내려놓고 돌아가라고 일렀다. 청운이 삼교아에게 설 할멈이 왔다고 알리니 삼교아는 설 할멈이 마치 귀빈이라도 되는 양 직접 아래층에까지 내려와 맞이한다. 설 할멈은 설 할멈대로 매우 공손하게 무릎까지 꿇고 인사를 올린다.

“마침 술 한 병이 생겨서 마님께 대접하고 시간이나 보낼까 하여 찾아왔습니다.”

“아이고, 우리 할멈한테 이렇게 돈을 쓰게 하다니.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가 좀 그러네요.”

설 할멈은 삼교아의 두 몸종에게 술상을 봐줄 것을 부탁하였다. 삼교아가 그 차려진 것을 보고 놀라 말하였다.

“아니, 할멈 뭐 하러 이렇게 많이 장만하셨어요.”

“없이 사는 처지에 장만한다고 해봐야 뭘 제대로 장만이나 했겠어요.”

청운은 술잔과 젓가락을 가져온다, 난설은 화로를 가져온다 하며 바삐 움직였다. 화로 위의술이 적당히 데워지자 설 할멈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 할망구가 한턱내는 것이니 마님께서 손님 자리에 앉아 받으시지요.”

“그래도 우리 집인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할 수 있겠어요?”

서로 한참이나 사양하다가 결국 설 할멈이 손님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이번이 벌써 세 번 째 만나는 것인지라 서로 격의가 없었다. 술을 마시다가 설 할멈이 삼교아에게 슬쩍 물어 본다.

“바깥어른께서 장사 떠나신 지가 벌써 오랜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시니, 혹 마님을 잊어버리신 것은…….”

“그러게 말이오. 일 년 지나 바로 돌아오신다더니 무슨 일로 이리 늦어지시는지?”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마님을 혼자 내버려 두고 억만 금을 번들 무슨 소용이람? 장사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란 타향을 고향처럼 고향을 타향처럼 여기며 산다고 합디다. 이 할망구의 넷째 사위 주 서방도 제 딸년을 소실로 맞아들이더니 낮이나 밤이나 서로 붙어 지내느라고 본마누라한테는 눈길도 한 번 안 줘요. 어쩌다 3, 4년에 한 번 본마누라를 찾아가도 한두 달을 못 버티고 바로 제 딸년한테 돌아온다네요. 본마누라는 늘 독수공방 신세인데 남편이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지 알기나 하겠수?”

“우리 서방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오.”

“이 할망구가 그저 심심해서 한마디 한 거지, 어디 주 서방을 나리한테 비기기나 하겠어요.”

이날 두 사람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골패 놀이를 한다 하면서 한참이나 놀다가 헤어졌다. 이틀인가 지나서 설 할멈이 다시 소이 놈을 데리고 그릇을 찾으러 왔기에 삼교아는 저번에 샀던 보석과 장신구 값 반을 주고 설 할멈을 붙잡아 같이 식사하였다.

그 후로 남은 절반의 외상값도 받고 장흥가 소식도 물어 본다는 핑계로 설 할멈은 삼교아 집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설 할멈은 말이 청산유수인 데다 아랫것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농담도잘 건네 위아래로 설 할멈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삼교아도 설 할멈이 오지 않으면 적막하였으므로 일부러 사람을 시켜 불러오게 하여 같이 밥을 먹거나 하며 설 할멈과 잠시도 떨어져 지내려 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상종해서는 안 되는 네 부류의 인간이 있으니, 한 번 그들과 상종하게 되면 평생 관계를 끊을 수가 없게 된다. 그 상종 못할 인간이 누군가 하면 바로 떠돌이 중, 거지, 건달 그리고 중매쟁이라. 앞의 세 부류의 인간은 그래도 낫지 중매쟁이 할멈은 약도 없는지라. 한 번 규중에 발을 들여놓게 하면 나중에는 중매쟁이 할멈 없이는 도저히 심심해서 견디지 못한다. 설 할멈은 본바탕이 썩 좋지 못한 데다 온갖 감언이설로 삼교아를 꾀어 삼교아는 이제 설 할멈 없이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호랑이 무늬 그리기는 쉬워도 호랑이 뼈 그리기는 어렵고,
사람 생김새는 보기 쉬워도 사람 마음 보기는 어렵도다.

진대랑이 몇 번이나 보챘지만 설 할멈은 그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오월하고도 중순, 날씨는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였다. 설 할멈은 삼교아와 만난 자리에서 자기 집은 좁고 게다가 서향이라 여름만 되면 더워 미칠 지경이라며 푸념하더니 마님 집은 넓고 커서 정말 좋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말을 들은 삼교아가 설 할멈에게 말하였다.

“그럼 밤엔 아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주무시구려.”

“그러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나리께서 곧 돌아오실 텐데요.”

“서방님이 돌아오신다고 설마 야밤중에 들이닥치시기야 하겠어요.”

“마님께서 괜찮으시다면 말 나온 김에 오늘밤에 집에 가서 이부자리랑 가지고 와서 마님과 같이 잘까요?”

“이불은 우리 집에도 많은데 뭐 하러 가져와요. 그저 며느리한테 우리 집에서 자기로 했다고 얘기나 하고 오면 그만이지. 참, 아예 올 여름 내내 우리 집에서 지내시구려.”

설 할멈은 집에 돌아가 며느리한테 이야기하고 화장품 그릇 하나만 달랑 들고 왔다.

“할멈, 참 딱도 하시오. 그래, 우리 집에 머리빗 하나 없을까봐 그걸 다 가져오우?”

“전, 머리빗 하나는 다른 사람하고 같이 못 쓰겠더군요. 더군다나 마님의 머리빗을 제가 감히 쓸 수 있나요. 또 아랫것들 쓰는 머리빗을 쓰기는 어쩐지 좀 찜찜하고 해서 가져왔지요. 마님, 이 늙은이는 어떤 방을 쓸까요?”

삼교아는 자기 침대 옆에 있는 작은 등나무 침대를 가리켰다.

“그렇지 않아도 할멈 잠자리를 좀 봐두었다오. 내 옆에서 주무시구려. 잠이 오지 않는 날은 서로 이야기도하고 좀 좋아.”

삼교아는 파란색 휘장을 가져오게 하더니 설 할멈에게 직접 치게 한다. 삼교아와 설 할멈은술 한 잔을 들고 나서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원래 삼교아의 두 몸종이 삼교아와 같은 방에서 자곤 하였으나 오늘은 설 할멈이 왔는지라 두 몸종은 옆방으로 자러갔다.

이날 이후로 설 할멈은 낮이면 장사를 나갔다가 밤에는 삼교아 집으로 돌아왔다. 설 할멈은 돌아올 때면 늘 술을 준비해 와 삼교아와 한참이나 놀다가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삼교아와 설할멈의 침대는 나란히 붙어 있어서 가운데에 휘장을 쳐놓았다고는 하지만 마치 한 자리에서 자는 것과 진배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한 농담에 웃기도 하고 이웃의 추잡한 소문에 이르기까지 서로 하지 못하는 얘기가 없었다. 특히 설 할멈은 일부러 술에 취한척하며 자기 어렸을 적 남자 꼬시던 이야기를 해대며 삼교아의 욕정을 은근히 자극하였다. 이야기를 듣던 삼교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하얘졌다 하였다. 설 할멈은 삼교아의 심중을 이미 꿰뚫어 보고서도 계속해서 기회만 보았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칠월 칠석, 바로 삼교아의 생일이다. 설 할멈은 아침부터 삼교아의 생일상을 차린다고 법석을 떨었다. 삼교아가 설 할멈에게 오늘은 천천히 아침 식사나 함께하자고 청하니 설 할멈은 “지금은 너무 바쁩니다요. 저녁에 마님을 모시지요, 오늘이 바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 아닙니까?”라며 사양하였다.

설 할멈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길을 나서니 진대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의 이목이 있는지라 후미진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대랑이 미간을 찡그리며 설 할멈을 원망하였다.

“할멈, 참 태평하기도 하오. 봄도 가고 여름도 가고 벌써 입추가 되었소. 그런데도 할멈은 오늘도 이르다 내일도 이르다, 이르다는 말만 되풀이하니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마치 일 년이라도 되는 것 같소. 그래 계속 이렇게 시간만 끌다가 그녀 남편이라도 돌아오면 결국 일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텐데, 그럼 난 닭 좇던개 신세 아뇨? 그랬다간 내 할멈을 가만두지 않을 거요.”

“뭘 그렇게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나리를 찾으려던 참이오.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오늘밤에 달렸으니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설 할멈은 진대랑의 귀에 대고 이러쿵저러쿵 일러준다.

“절대 내 말대로 실수 없이 하여야 하오.”

진대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 할멈에게 말한다.

“그래, 그래. 내 이 일만 잘되면 할멈한테 섭섭지 않게 할 거야.”

진대랑은 기뻐하며 돌아갔다.

남의 아내 빼앗으려고 이리 궁리 저리 궁리,
남의 여자하고 한 번 자려고 이런 수작 저런 수작.

설 할멈과 진대랑이 서로 수작하여 일을 벌이기로 한 그날, 오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밤은 깊었건만 달도 별도 없다. 설 할멈은 몰래 진대랑을 데리고 와서 삼교아 집 문을 두드렸다. 청운이 등불을 들고 문을 열어 주었다. 설 할멈은 일부러 소매를 매만지며 말한다.

“어, 내 손수건이 어디에 떨어졌지? 한번 찾아봐 주시구려.”

청운이 등불을 들어 거리를 비추니 설 할멈은 이 틈을 타서 진대랑을 집 안으로 밀어 넣고는 계단 뒤쪽에 몸을 숨기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설 할멈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였다.

“아! 여기 있네, 있어. 됐수. 그만 찾으시우. 손수건이 여기 있었구먼.”

“정말 다행이네요, 마침 초도 다 타서 불이 꺼지려고 하던 참인데. 어서 가서 다시 촛불을 들고 오지요.”

“늘 다니던 길인데 무에 그럴 필요 있수?”

두 사람은 어둠 속을 더듬어 대문을 닫아걸고 계단을 올라갔다. 설 할멈을 보고 삼교아가 묻는다.

“할멈, 뭘 잃어버리셨소?”

설 할멈이 옷소매에서 수건을 꺼내면서 대답한다.

“이 망할 놈의 물건이 몇 푼 되지는 않지만 북경 사는 손님이 보내온 것이라우. 예물로 치자면야 변변치 않겠지만 그 성의만은 도탑다 하지 않습디까.”

“할멈 애인이 정표로 준 게로군.”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날 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설 할멈이 말했다.

“술도 남고 안주도 많은데 아랫것들한테도 인심 좀 쓸까요? 오늘이 그래도 명절 아닙니까.”

삼교아는 몸종을 시켜 안주 몇 접시와 술 두 병을 챙겨 아래층에 내려 보냈다. 하녀 둘과 하인 녀석 하나가 음식과 술을 받아먹고 나더니 각자 자러 가버렸다. 설 할멈이 술을 마시다가 은근 슬쩍 묻는다.

“나리께서는 어인 일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을까요?”

“그러게 말이오. 벌써 일 년하고도 반이나 지났는데.”

“견우 직녀도 일 년에 한 번은 만난다는데, 나리가 떠나신 지 일 년하고도 반이나 지났군요. 옛말에 벼슬아치가 으뜸이요 그 다음은 나그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는 가는 곳마다 염문을 뿌리고 결국 집에 있는 아낙만 고생하는 거지.”

삼교아는 그저 한숨만 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구, 이 할망구가 주책없이 말도 많지. 오늘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 어서 술이나 한잔드시지요. 이런 방정맞은 말은 못 들은 걸로 하세요.”

설 할멈은 술을 따라 삼교아에게 연신 권한다. 한참 술기운이 오르자 설 할멈은 청운과 난설에게도 술을 권한다.

“이게 바로 견우와 직녀가 다시 만나는 것을 기념하는 기념주라네, 한 잔씩 쭉 들이켜 보게나들. 자네들은 결혼하걸랑 절대 남편하고 떨어져 지내지 말게.”

두 몸종은 차마 거절하지 못 하고 설 할멈이 권하는 술잔을 받아 마셨다. 그러더니 결국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삼교아는 두 몸종에게 얼른 문단속을 하고 잠자리에 들라 일렀다. 삼교아와 설 할멈은 계속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설 할멈은 술을 마시면서도 쉬지 않고 얘기한다.

출처 7788收藏

“마님은 몇 살 때 결혼하셨어요?”

“열일곱.”

“결혼이 늦은 편이었네요, 그래도 그렇게 늦은 편은 아니지만. 난 말이우, 열세 살 때 이미 처녀를 떼버렸지.”

“그렇게 시집을 일찍 갔어요?”

“에이, 시집이야 열여덟에 갔지요. 마님한테만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어렸을 때 이웃집에서 바느질을 배웠는데, 그 이웃집 도련님이 나를 꼬시데요. 근데 그 도련님이 생기기는 또 왜 그렇게 잘생겼어. 그래서 홀까닥 넘어가고 말았지요. 처음 관계를 가질 때는 아프기만 했는데, 두 번 세 번 하고 나니 그 맛이 또 죽이더라구요. 마님도 그 맛을 잘 아시잖수?”

삼교아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 맛이라는 게 모를 때는 그저 그냥 모르고 넘어가지만 한 번 맛들이고 나면 근질근질 그냥 못 넘어가지요. 그래도 낮에는 그럭저럭 참을 만하지만 밤에는 도저히 못 견딘다구요.”

“할멈, 결혼하기 전에 이미 여러 남자를 경험했다면서 어떻게 처녀인 척하고 시집을 갔소?”

“친정 엄마가 내 행실을 진즉에 알아차렸지요. 친정 엄마가 딸내미 시집가서 소박맞을까봐 처녀 행세하는 비법을 알려 주데요. 그 덕에 대충 넘어갔죠, 뭐.”

“남자를 알고 나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럼 어떻게 견뎠소?”

“친정 오빠가 나가고 나면 나하고 올케하고 둘이서 재미 좀 봤지요.”

“여자끼리 어떻게? 그런 방법도 다 있어요?”

설 할멈은 일어나 삼교아 옆으로 가서 어깨를 끌어안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거야 마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여자들끼리도 다 방법이 있지요.”

삼교아가 설 할멈 어깨를 손으로 탁 치면서 한마디 한다.

“에이, 무슨 그런 황당한 소리를.”

설 할멈은 삼교아가 이미 욕정으로 들끓고 있음을 알아채고는 더욱 자극하는 말을 던진다.

“올해 벌써 쉰둘이나 된 이 할망구도 밤마다 잠을 못 이루는데, 한창나이인 마님은 참 대단도 하시네요.”

“그래, 할멈은 밤마다 어떻게 지내시나. 서방질이라도 하시는가?”

“뱃가죽에 주름만 남은 이 할망구를 어떤 놈이 좋아하겠어요? 혼자서 해결하는 비법이 있지요.”

“무슨 그런 황당한 소리를. 혼자서 어떻게?”

“마님, 그럼 침대로 가서 누우시죠. 이 할망구가 자세히 가르쳐 드리리다.”

이때 갑자기 모기 한 마리가 촛불 위를 날아다닌다. 설 할멈이 부채를 펴더니 모기를 잡는척하며 촛불을 꺼버린다.

“아이구, 이거 촛불이 꺼져버렸네. 제가 가서 불을 붙여오지요.”

설 할멈은 문을 열고 나와 이미 문 옆에 엎드려 숨어 있던 진대랑에게 뭐라 일러준다. 그런 다음 들리게 큰 소리로 말한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불씨를 가져온다는 것을 깜빡했네.”

설 할멈은 아래층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밤도 깊었는데, 주방에 불씨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네요. 어떡하죠?”

“어, 나는 불 끄고는 잠을 못 자오. 어두운 건 너무 무서워.”

“마님, 제가 옆에서 모시고 자면 어떨까요?”

삼교아는 그렇지 않아도 설 할멈에게 부탁할 참이었는지라 당장 응낙하였다.

“그게 좋겠네요.”

“마님 먼저 누워 계시죠. 문 좀 잠그고 올게요.”

삼교아가 옷을 벗더니 침상 위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