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蔣興哥重會珍珠衫 1

장흥가가 진주적삼을 다시 찾다 1

벼슬이 올라 정승 판서 된다 한들 무엇 대단하리,
칠십 넘겨 오래 사는 게 외려 더 자랑스러운 일이라네.
벼슬이 올라 정승 판서 된다 한들 무엇 대단하리,
헛된 명예, 나 죽은 뒤에 누가 알아주리오.
모든 게 다 일장춘몽.
젊어서 함부로 몸 놀리지 말 것이며,
주색에 빠져들지 말지니.
온갖 번뇌와 시비에서 벗어나,
제 팔자대로 속 편하게 사는 게 최고라네!

서쪽 강에 비친 달이란 의미의 「서강월西江月」이라는 노래이다. 분수를 지키며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며, 술과 여색과 재물과 노여움 때문에 정신을 허비하고 인생을 낭비하지말 것을 권하고 있다. 너무 쾌락만 추구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고, 너무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면 결국 손해 보기 마련이다. 술, 여색, 재물, 노여움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여색이라.눈은 바로 사랑의 매파, 마음은 애욕의 씨앗. 사랑이 시작될 땐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 사랑의 광풍이 지나고 나면 가슴엔 스산한 가을바람. 길가의 버들가지나 담 아래 핀 한 떨기 꽃처럼 누구나 손을 뻗칠 수 있는 기녀한테 어쩌다 춘흥이 일어난 것이라면 그게 무슨 대수리오만, 여염집 규수가 이리 궁리 저리 궁리 온갖 꾀를 다 짜내어 인륜을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부부의 깊은 정을 걷어차 버린다면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그대의 토끼 같은 마누라를 다른 남자가 꼬드긴다면 그대의 심정은 어떠할까?

사람이야 어쩌다 눈에 뭐가 씌운 듯 어리석은 짓 할지라도,
어디 하늘이 가만있을 것인가.
나, 남의 마누라 희롱하지 않을 것이니,
그대여, 함부로 내 마누라 희롱하지 마오.

독자들은 「진주적삼」이라는 짤막한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될지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죄는 지은 대로 가고 자식은 아비대로 간다는 말이 허랑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장덕蔣德이란 사람으로, 어렸을 적 이름은 흥가興哥요 호광湖廣 양양부襄陽府 조양현棗陽縣 출신이다. 아버지 장세택蔣世澤은 어려서부터 광동을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는데, 그와 아내 나羅씨 사이에 생겨난 아들이 장흥가이다. 그런데 장흥가가 아홉 살 나던 해에 아내 나씨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린 자식만 남겨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사를 그만둘 수도 없어 생각 끝에 장세택은 아들을 데리고 장사를 떠나게 되었다. 그어린 아들의 생김새를 볼작시면,

짙은 눈썹에 수려한 눈,
하얀 치아에 빨간 입술.
단정한 걸음걸이,
똑 떨어지는 언변.
총명하기는 글방도련님보다도 훨씬 낫고,
머리 쓰는 것은 어지간한 어른보다 낫구나.
사람들은 그를 기린아라 부르며,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며 흠모하는구나.

장세택은 사람들의 시기 질투를 염려하여 장흥가를 자신의 친아들이라 밝히지 않고 그저 처조카 나군이라고만 소개하곤 하였다. 장세택의 처가도 본디 삼대에 걸쳐 광동에서 장사를 하던 집안이었는지라 그 동네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거간들은 나군을 마치 자신의 친척인 양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실은 장세택이 장삿길로 들어선 것도 그의 장인이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준덕택이었다. 요즘 들어 장세택의 처가는 억울한 송사에 몇 차례나 휘말려 가세가 기울어 몇 년째 장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객점의 거간들은 장세택을 만나면 처가의 소식을 묻고 또 걱정해 주었다. 그들은 장세택이 데리고 다니는 어린아이가 바로 장세택의 처가 식솔인데다 이목구비도 시원시원하고 말하는 본새가 총명한 것을 보고는 삼대에 걸친 친분이 이제는 사대에까지 연결되는구나 하며 반기고 또 반겼다.

쓸데없는 소리는 이제 그만. 장흥가는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장사를 다니면서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아들어 장사라면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 장흥가의 아버지가 이를 보고 흐뭇해하였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렷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 장흥가 나이 열일곱 때에 그 아버지 장세택이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마침 장사를 쉬면서 잠시 집에서 머물 때라 객사를 면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졸지에 아버지마저 여읜 장흥가지만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눈물을 닦고 초상을 치를 준비를 시작한 장흥가는 발인을 하고 재를 올렸다. 49재를 지내기 전에 근동의 친척들이 모두 와서 문상하였다. 이웃에 사는 왕씨 댁은 바로 장흥가와 정혼한 집안이었다. 왕씨도 문상을 왔는지라 장흥가의 집안 어른들이 그를 모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리 이야기해 두자면 장흥가는 나이에 비해 숙성하고 사리에 밝아 초상을 치르는 일 정도는 거의 자기 혼자 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집안의 한 어른이 왕씨에게 은근히 말을 건넸다.

“왕 어르신, 이제 따님도 장성하였으니 기왕에 정혼해 놓은 거 빨리 부부의 연을 맺어 주시는 게 어떠하겠습니까?”

왕씨는 확답을 피한 채 돌아갔다. 초상을 치른 후 집안 어른들은 장흥가에게 결혼을 어서 서두르라고 성화를 대었다. 장흥가는 처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나 어차피 혈혈단신으로 남겨진 몸이라는 생각에 집안 어른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래서 매파를 놓아 왕씨 집에 정식으로 청혼하였으나, 왕씨는 이렇게 말하여 은근히 거절하였다.

“결혼 예물이라도 장만하려면 그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 아니오? 더군다나 아직 일주기도 지나지 않은 처지인데 이리 서두르는 것은 예의에도 어긋나오. 우선 일주기라도 지나고 다시 이야기해 봅시다.”

매파를 통해 왕씨의 말을 전해들은 장흥가는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았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장흥가는 선친 영전에 재를 올리고 상복을 벗고 나서 다시 매파를 놓아 왕씨에게 결혼을 청하여 허락을 얻었다. 서둘러 육례六禮를 마치고 신부를 맞아들였다.

영정을 가리던 하얀 천이 붉은 천으로 바뀌고,
누런 삼베옷을 벗고 화려한 혼례복을 입네.
초례청에 촛불 환하게 밝혀 놓고,
혼례 잔치에는 합환주를 갖추어 놓았구나.
신부 화장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그 아리따운 자태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구나.
오늘밤은 운우지정이 차고 넘칠 것이니,
날 밝아 오면 사람들이 축하 인사 건넬 터이다.

이 신부는 바로 왕씨의 막내딸로 어렸을 적 이름은 삼대아三大兒였다. 칠월 칠석에 태어났다고 해서 삼교아三巧兒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삼교아의 시집간 두 언니도 용모가 빼어났기에 조양현 사람들은 그 세 자매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천하에 신부감은 많지만,
왕씨 집 딸들처럼 예쁜 신부감은 드물다네.
왕씨 집 딸들에게 장가든다면,
부마가 부럽지 않을 것이로다.

속담에 장사를 망치면 잠시 고생하지만, 마누라를 잘못 얻으면 평생 고생한다고 하지 않던가. 벼슬깨나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가문을 따져 혼사를 치르고, 어떤 이들은 신부의 결혼 예물에눈이 멀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혼사를 치르기도 한다. 막상 결혼 당일에 신부가 천하의 박색이라 시어머니 시아버지 되는 자들 체면이 말이 아니고, 신랑 또한 신부에게 실망하여 결국 바람을 피우게 된다. 얼굴이 못났다고 해도 남편 다루기라도 잘하면 그럭저럭 지나가련만 식견 짧은 신부라면 결국 남편과 반목하게 된다. 신부가 체면 때문에 남편 바람피우는 걸 한두 번 눈감아 주면 남편은 금세 뻔뻔해져서 마음 놓고 바람을 피워댄다. 이 얼마나 볼썽사나운 일인가. 이런 이치를 모를 바 없는 장세택이 왕씨 여식의 미모가 출중하다는 말을 듣고 진작부터 예물도보내고 말을 넣어 장흥가와 정혼시켜 둔 것이다. 오늘 왕삼교아를 맞아 들여오니 과연 천하일색이라, 그 언니 둘은 저리 가라였다.

오나라 서시보다 빼어나고,
초나라 남위보다 더 예쁘구나.1
마치 수월관음과도 같은 그녀,
향 사르고 절을 올려야겠네.

본디 단정하고 야무진 장흥가가 예쁜 신부까지 맞아들였으니, 이들 부부는 한 쌍의 원앙 같았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보통 부부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혼례를 치르고 삼일이 지나자 예법에 따라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장흥가 부부는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였다는 핑계를 대고 바깥일은 제쳐두고 그저 위층에서 밤이나 낮이나 서로 사랑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날 장흥가는 아버님이 생전에 해오시던 장사를 3년이나 제쳐두어 광동 지방에 뿌려둔 외상을 아직도 거두어들이지 못 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밤이 되자 장흥가는 아내에게 장사를 떠나야겠다는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아내도 어서 다녀오라며 찬성하였지만 한번 장사 나서면 하루 이틀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사랑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낼 일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아내는 눈물만 지을 뿐이요, 장흥가도 차마 아내를 두고 길을 떠나지 못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은 슬픔에 잠긴 채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다시 2년이 지나가 버렸다. 장흥가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내에겐 아무 말 않고 밖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챙기며 떠날 준비를 하였다. 길일을 잡고는 출발하기 닷새 전에야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여보, 하는 일 없이 까먹기만 하면 태산 같은 재산도 남아나지 못한다고 하지 않소. 우리 두 사람이 먹고살려면 이 가업을 팽개칠 수야 없지 않겠소? 지금은 2월이라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 장사 떠나기에 딱 좋은 날씨요. 지금 떠나지 않으면 또 언제 떠나겠소?”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붙잡을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떠나시면 언제 돌아오시나요?”

“내 어찌 떠나고 싶어 떠나는 것이겠소. 일 년만에 꼭 돌아올 것이오.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더라도 꼭 돌아오리다.”

아내는 뜰 앞의 나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듬해, 저 나뭇가지에 싹이 움틀 때 서방님이 돌아오실 줄 알고 손꼽아 기다리겠어요.”

말을 마친 삼교아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장흥가는 옷소매로 삼교아의 눈물을 닦아 주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의 서러운 이별의 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닷새째 되는 날, 장흥가가 장사를 떠나기로 한 날이다. 장흥가와 삼교아는 밤새 울며 이야기하며 뜬눈으로 긴 밤을 하얗게 밝혔다. 오경이 되자 장흥가는 짐을 꾸리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패물을 삼교아에게 건네주고는 자신은 장사 밑천과 장부, 옷가지, 이불 등을 챙기고 더불어 사람들에게 인사치레 할 선물들을 차근차근 챙겨 넣었다. 하인 가운데 젊은 녀석은 장흥가가 직접 데리고 장사를 떠나고 나이 들어 경험 많은 하인은 집에 남겨두어 삼교아의 시중을 들고 일용품을 사들이도록 하였다. 여종 둘에게는 부엌일을 맡아 보도록 하였다. 또 청운晴雲과 난설暖雪, 두 몸종에게는 어디 멀리 돌아다니는 일없이 집 안에서 삼교아 시중만 들도록 하였다. 아랫것들에게 분부를 다 마치고 장흥가는 아내 삼교아에게 말하였다.

“여보, 조금만 참고 지내시구려. 동네에 불량한 애들이 많다고 하더군. 더군다나 당신 미모가 출중하니 괜히 바깥출입하여 분란을 일으키지 마시오.”

“서방님 그런 걱정일랑은 하지 마시고 어서 돌아오셔요.”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하였다.
세상에 괴로운 일 많다 하지만,
헤어지는 일만한 것이 있으랴.

장흥가는 길을 떠났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내 생각뿐, 다른 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윽고 광동에 도착하여 객점을 정하고 짐을 풀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장흥가를 만나러 찾아오니 장흥가는 그들 모두에게 선물을 돌렸다. 그들은 또 답례로 장흥가를 자신들의 집으로 불러 술대접을 하니, 이십여 일이 쉴 새 없이 지나버렸다. 장흥가가 본디 허약한 체질이었던 데다 오랜만에 장사에 나서 몸이 피곤하고, 광동에 도착해서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여 결국 학질에 걸리고 말았다. 여름 내내 학질로 고생하다가 가을에는 마침내 이질로까지 번져 버렸다. 매일 의원을 불러 맥을 짚고 탕약을 달여 먹고 하여 가을이 다 갈 무렵에야 겨우 몸을 추슬렀다. 몸이 아파서 장사를 못 하였던지라 일 년 안에 고향으로 돌아가기는 이제 틀린 일이었다.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원앙 이불 같이 덮던 부부의 연을 포기하는가.

장흥가는 집 생각에 마음 졸이면서도 이왕 이렇게 늦어진 것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다잡아먹었다. 장사 떠난 장흥가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장흥가의 아내 왕삼교아의 이야기나 해 볼까나. 장흥가가 장사를 떠난 이후 아내 삼교아는 남편의 말대로 몇 달 동안 집 안에만 있으면서 바깥 세상일에는 관심일랑 끊어버리고 위층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집집마다 떠들썩하니 솔가지를 향로 삼아 태우고 폭죽을 터뜨리며 즐겼다. 이런 떠들썩함이 삼교아에게는 오히려 상심이라. 남편 생각에 섣달 그믐날 밤이 더욱 서러웠다.

한 해가 다 가는데도 내 서러운 마음은 다 할 길이 없구나.
봄은 다시 돌아왔건만 내 님은 돌아오실 줄 몰라.
아침 되니 더욱 적막하고 쓸쓸하여,
나, 옷 갈아입기조차 싫구나.

출처 7788收藏

이제 날은 밝아 정월 초하루. 청운과 난설 두 몸종이 삼교아에게 거리 구경나가자고 부추긴다. 장흥가의 집은 앞채와 뒤채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앞채는 거리 쪽에 면해 있고, 뒤채는 침실로 쓰면서 삼교아가 기거하고 있었다. 이 날 삼교아는 두 몸종의 부추김에 못 이겨 복도를 따라 앞채에 나왔다. 몸종을 시켜 창문을 열고 발을 치게 한 뒤 발 너머로 거리를 구경하였다. 정월 초하루의 거리는 무척이나 떠들썩하였다.

“거리에 사람들이 저리 많던가. 그런데 왜 점쟁이는 보이지 않을까? 점쟁이에게 우리 서방님이 언제 돌아오실지 물어나 보고 싶은데.”

청운이 잽싸게 말을 받는다.

“오늘이 마침 정월 초하루인지라 사람들이 노느라고 정신이 없을 터인데 어느 점쟁이가 나와서 돌아다니겠어요?”

난설이 옆에 있다 한마디 거든다.

“마님, 쇤네가 닷새 내로 꼭 점쟁이를 대령하옵지요.”

정월 초나흘, 아침을 먹고 나서 난설이 아래층에 소변을 보러갔다가 거리에서 땅땅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바로 소경 점쟁이가 구리판을 두드리는 소리렷다. 난설은 소변도 보는 둥 마는둥 하고는 얼른 허리춤을 치켜 올리고 문밖으로 뛰어나가 점쟁이를 불러 세웠다. 난설은 또 즉각 위층으로 올라가 삼교아에게 알렸다. 삼교아는 난설에게 점쟁이를 아래층 응접실로 안내하라 이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점쟁이가 무슨 점을 볼 것인지 물었다. 부엌일을 보는 두 여종이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나왔다가 대신 대답한다.

“길 떠난 사람에 대해 여쭤 보는 거예요.”“

아내가 길 떠난 남편이 궁금해 물어 보는 게로군.”

“맞아요.”

“그래, 청룡이 다스리는 때라 재물 운이 틔었구먼. 나그네가 한참 길을 가고 있느니, 보물이 천 상자나 넘치고 힘든 일은 이제 다 지나갔구나. 청룡은 나무(木)에 속하고, 나무는 봄 되면 무성해지는 법. 입춘 전후에 출발하겠구먼. 몇 달 안에 돌아올 것이야. 어이구, 게다가 재물까지 가득 가지고 오겠구먼.”

삼교아는 집안 살림을 맡아 하는 하인을 시켜 점쟁이에게 은자 세 푼을 주라 하고는 흐뭇해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는 진정 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풀고, 그림 속의 떡을 보고 허기를 달래는 격이라네.

대저 이제나저제나 하며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하면 더욱 조급증이 나는 법. 삼교아는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늘 앞채로 가서 창밖을 두리번두리번하며 남편의 모습이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이월 초순이 되어 나무에는 새순이 움트건만 남편은 감감무소식이라. 남편이 떠나면서 한 약속을 떠올리니 마음은 더욱 처량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일이 되었다. 아, 일이 생기려니 젊고 준수한 남정네를 만나게 되는가.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스쳐 지나가도 못 알아보는구나.

이 젊고 준수한 남정네는 누구인가? 그 사람은 이 고장 사람이 아니라 휘주徽州 신안현新安縣 사람으로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상商이라. 어려서는 대희가大喜哥라고 불렸으며, 커서는 대랑大郞이라고 불렸다. 나이는 바야흐로 스물 넷, 생김도 수려하여 송옥宋玉이나 반안潘安2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그들보다 못할 것도 없었다. 진대랑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본전 이삼천 냥을가지고 미곡과 콩을 거래하였는데, 이곳 양양부에도 1년에 한 차례씩 다녀가곤 하였다. 그는 성바깥에 숙소를 정하고 지내다가 오늘 우연히 왕씨 전당포에 들러 혹시 집에서 편지 보내온 것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성 안에 들어온 참이었다. 그런데 왕씨 전당포가 바로 삼교아네 집을 마주 보고 있는지라 진대랑이 삼교아네 집 앞을 지나게 된 것이다.

진대랑의 차림새가 어떠하였던고? 머리에는 야자나무 껍질로 엮어 만든 소주풍蘇州風의 모자를 눌러쓰고, 새하얀 호남 비단으로 만든 도포를 입고 있는 것이 평소 장흥가의 차림새와 매우 흡사하였다. 삼교아가 멀리서 바라보니 바로 자신의 남편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발을걷어 젖히고는 자세히 바라보았다. 진대랑 역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위층에서 젊은 아낙 하나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진대랑은 그 아낙이 자신을 좋아하여 그러는 줄만 알고 그 아낙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잘못 알아본 것이렷다. 삼교아는 그가 남편이 아님을 알아차리고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지며 황급히 창문을 닫고 뒤채로 달려가, 침상에 걸터앉았으나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하나 누가 알았으리? 진대랑의 마음은 그 아낙의 눈매에 온통 빼앗겨 버렸음을. 숙소로 돌아온 진대랑 역시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하였다.

“내 마누라가 비록 박색은 아니나 어디 아까 본 그 여자에 비할 수나 있으랴? 아, 그 아낙과 사랑을 나누고 싶으나 방법이 마땅치 않구나. 그 아낙과 하룻밤을 지낼 수만 있다면 내 전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텐데.”

후유하고 한숨을 쉬는데 이때 불현듯 진대랑의 머릿속에 시장통 동편 거리에서 진주 파는 설할멈이 떠올랐다. 진대랑은 전에 설 할멈과 거래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설 할멈은 말이 청산유수에다 온 거리를 다 휘젓고 다녀서 모르는 집이 없을 지경이었다. 설 할멈과 상의하면 필시 무슨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진대랑은 밤새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일어나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맑은 물을 달라 하여 머리 감고 치장한 다음 은자 백 냥과 금 두 덩이를 갖고서는 황급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즐거운 일 기쁜 일이 어디 그냥 오던가.
죽어라 노력하고 공들여야지.

진대랑은 성 안으로 들어가 시장통 동편 거리에 있는 설 할멈 집의 문을 두드렸다. 설 할멈은 머리도 빗지 않은 채로 뜰에서 진주를 고르다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는 진주 주머니를 정리하면서 물었다.

“뉘시오?”

“휘주 사는 진…….”

예까지만 듣고서는 설 할멈은 황급히 문을 열어 주었다.

“이 할망구가 아직 세수도 않고 머리도 못 빗었는데 이거 쑥스럽구먼. 나리께서 무슨 일로 새벽같이 달려오셨소?”

“늦게 오면 할멈을 만나지 못할까 봐 특별히 서둘러 왔지.”

“그래, 이 할망구 진주라도 몽땅 팔아 주려고 그러시나?”

“진주야 물론 팔아 주지. 근데 실은 더 큰 거래가 있어 왔지.”

“나야 진주 파는 거 말고는 다른 일은 젬병인데.”

“여기서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네.”

설 할멈은 얼른 대문을 닫아걸고는 진대랑을 안으로 안내하였다.

“나리, 무슨 일이요?”

진대랑은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얼른 옷소매에서 은자를 꺼내어 탁자 위에다 올려놓았다.

“은자 백 냥이오. 어서 넣어 두구려. 할멈이 은자를 받으면 내 이야기하리다.”

설함멈은 어안이 벙벙하여 선뜻 은자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적어서 그러오?”

진대랑은 황급히 번쩍번쩍 빛나는 금 두 덩이를 꺼내어 탁자 위에다 올려놓았다.

“자, 이 금까지 같이 넣어 두구려. 만약 할멈이 받지 않는다면 나를 도와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으로 알겠소. 오늘은 내가 할멈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온 것이지 할멈이 나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잖소. 이 일은 할멈이 아니면 안 되겠기에 이렇게 특별히 부탁하는 것이오. 또 설사 일을 성사시키지 못 하더라도 이 은자와 금은 그냥 갖고 계시면 되오. 언제고 짬나는 대로 찾으러 올 것인즉. 우리가 어디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오? 이 진상 그렇게 쩨쩨한 놈이 아니오.”

돈 싫어하는 장사꾼이 어디 있겠는가? 눈앞에 번쩍거리는 황금을 보고서 어찌 마음이 동하지않으리. 설 할멈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리, 오해는 마시라구요. 이 할망구가 본디 구린 돈이라곤 한 푼이라도 받아본 적이 없어놔서. 그럼 나리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이 돈은 제가 잠시 보관하기로 하지요. 만약 일을 성사시키지 못 하면 즉시 되돌려 드리리다.”

말을 끝낸 설 할멈은 금덩이와 은자를 함께 보자기에 싸며 중얼거렸다. “이 할망구가 덜컥일을 저지르고 말았네.” 설 할멈은 그 보자기를 침실에다 감추고 얼른 나왔다.

“나리, 아직 감사드리기에는 그렇군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유?”

“내 생명을 구해 줄 보배를 찾고 있소. 그 보배는 다른 곳에는 없고 큰길가 집에 있다오. 부탁컨대 할멈이가서 좀 구해 오구려.”

설 할멈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무슨 해괴한 말씀을? 이 할망구가 이곳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지만 이 동네에 생명을 구하는 보배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네요. 그래, 그 보배가 있다는 집이 대체 누구네 집이란 말이오?”

“왕씨 전당포 맞은편 집이 누구네 집이오?”

설 할멈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거긴 장흥가네 집이지요. 장흥가는 장사 떠난 지 일 년쯤 되었고 지금은 그 아내 삼교아만 살고 있다우.”

“내가 말하는 보배란 게 바로 그 삼교아라오.”

진대랑은 설 할멈 가까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더니 자신의 이러저러한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설 할멈은 진대랑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팔을 휘휘 내저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뎁쇼. 장흥가와 왕삼교아는 결혼한 지 아직 사 년도 채 안 되는 데다 원앙처럼 금슬이좋아 서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오. 지금이야 장흥가가 장사를 떠나 있어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지만 삼교아는 집에서 한 발도 나오지 않고 오직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오. 더군다나 장흥가의 성격이 여간 괴팍한 게 아니라서 이 할망구는 아직껏 그 집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삼교아의 얼굴이 동그란지 모난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수? 방금 받은 돈은 돌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 이 할망구가 재물 운이 없나보네요.”

이 말을 들은 진대랑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할멈이 진대랑을 말리려다 외려 진대랑에게 양소매를 꼭 붙잡혀 의자에 앉은 채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진대랑의 목숨은 모두 할멈에게 달려 있소이다. 할멈이 어떻게든 꾀를 내어 삼교아랑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오. 일이 잘 되면 금 백 냥을 더 드리리다. 일이 잘못되면 나는 죽는 거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소.”

당황한 설 할멈은 어쩔 수 없이 대답하였다.

“예, 예, 알겠으니, 제발 이 할망구 난처하게 하지 좀 마시고 어서 일어나서 제 말부터 들으시오.”

진대랑은 그제야 일어나 두 손을 맞잡아 가슴까지 올려 절하고는 말하였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으시오? 어서 말해 보구려.”

“이 일은 은근히 주도면밀하게 처리하여야지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되오. 만일 기한을 정해 놓고 하라면 감히 거절하려우.”

“일만 성사된다면야 며칠 늦어진다고 뭐 문제겠소. 근데 무슨 그럴듯한 계책이라도 있으시오?”

“내일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조반을 드신 후 왕씨 전당포에서 만납시다. 나리께서는 돈냥이나 두둑이 챙겨 오셔서 이 늙은이의 물건이나 팔아 주시우. 내게 다 꿍꿍이가 있으니. 내가 삼교아 집에 발을 들여놓게만 되면 나리에게 필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오. 나리께서는 숙소로 돌아가 삼교아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우. 만약 다른 사람 눈에 띄게 된다면 일을 그르칠 게요. 기회가 나는 대로 즉시 알려 드리리다.”

“꼭 할멈 말대로 하리다.”

진대랑은 정중하게 읍을 하고서는 문을 열고 나갔다.

아직 적을 물리치지도 못 하였으면서,
벌써 제단을 쌓고 공 세운 장수들에게 절을 올리나.

그날은 별다른 일없이 지나갔다. 다음 날 진대랑은 한껏 옷을 차려입고 은자 삼사백 냥을 가죽 상자에 넣어 종놈에게 지우고 시장통의 왕씨 전당포를 찾아갔다. 맞은편 삼교아 집을 바라보니 창문이 굳게 닫혀 있고 삼교아는 보이지 않는다. 전당포의 점원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 문 앞의 걸상에 앉아 맞은편 삼교아 집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설 할멈이 대나무 상자하나를 들고 왔다. 진대랑이 설 할멈을 불러 세우더니 물었다.

“그 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 있소?”

“진주나 보석 노리개 같은 거지요. 나리께서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시우?”

“마침 그것들을 사려던 참이었소.”

설 할멈은 전당포 안으로 들어와 전당포 점원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고 나서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구슬 주머니 십여 개와 작은 상자 몇 개가 있었고 작은 상자 안에는 꽃과 비취를 아로새긴 새로운 모양의 머리장식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모양이 특이할 뿐 아니라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게 눈이 부실 정도였다. 진대랑은 그 가운데서도 제일 크고 제일 밝은 진주와 비녀, 귀고리 등을 골라 한쪽에 모아 놓고는 말하였다.

“이걸 다 사겠소이다.”

설 할멈이 진대랑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나리께서 필요하시다면 모두 가져가시구려. 근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으실 텐데.”

진대랑은 설 할멈이 이야기하는 속내를 다 안다는 듯이 지갑을 열더니 보기에도 새하얗게 빛나는 은자를 탁자 위에다 턱 올려놓고는 큰소리를 쳤다.

“이 정도면 설마 못 사겠는가?”

이때 동네의 할 일 없는 자들 예닐곱 명이 전당포로 몰려와 진대랑과 설 할멈의 수작을 구경하고 있었다.

“에구, 이 할망구가 농담 좀 했지. 설마 나리를 무시해서 그런 말 했겠수. 우선 이 은자는 다시 넣어 두시구랴. 먼저 흥정부터 해야겠네.”

양쪽이 제시하는 값이 서로 천양지차라. 설 할멈은 자신이 부른 값에서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진대랑은 물건을 들고서 일부러 밖으로 나가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양 일일이 밝은 빛에 비추어 보았다. 시장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그러자 설 할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지. 왜 이리 귀찮게 시간만 끌어.”

“누가 안 산다고 그래?”

두 사람은 다시 흥정하기 시작하였다.

시끌벅적하게 흥정하는 소리가
꽃처럼 옥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구나.

왕삼교아는 맞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자기도 모르게 앞채로 건너가 창문을 열고 바라보았다. 진주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데 그 빛깔이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운지. 삼교아가 보니 보석 장수로 뵈는 할멈과 한 남자 손님이 서로 한참이나 흥정하면서도 값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삼교아는 청운을 시켜 보석 장수 할멈에게 그 진주를 한번 보여 달라고 부탁하도록 하였다. 청운은 쏜살같이 길을 건너가 설 할멈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말을 걸었다.

“우리 마님이 할멈 좀 보자세요.”

설 할멈은 일부러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래, 뉘 댁이시우?”

“맞은편 장씨 나리 댁이에요.”

설 할멈은 진대랑의 손에서 진주를 낚아채어 잽싸게 싸더니 진대랑에게 쏘아 붙였다.

“이 몸은 당신 같은 사람하고 실랑이 할 시간이 없다고.”

“좀 더 쳐줄 테니 파시지.”

“안 팔아요, 안 팔아.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팔 거라면 진즉에 팔았지.”

설 할멈은 중얼거리면서 보석 상자를 챙겨 총총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청운이 껴들어 한마디 거든다.

“제가 대신 들고 갈까요?”

“됐소. 그럴 필요 없우.”

이 광경을 보면서 진대랑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꺼냈던 은자를 다시 집어넣고 전당포를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눈앞에 승리의 깃발이 보이는 듯,
귀에는 희소식이 들리는 듯.

1 西施와 南威는 모두 중국 춘추시대의 빼어난 미인이다. 이후 미인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2 송옥은 중국 초나라의 대문장가이자 풍류 가객으로 인물이 출중하였다고 한다. 반안은 진晋나라의 시인이며 준수한 외모로 일세를 풍미한 반악潘岳을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풍류와 뛰어난 인물의 대명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