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안석王安石 書湖陰先生壁 其一호음 선생의 집 벽에 쓰다


書湖陰先生壁 其一호음 선생의 집 벽에 쓰다/송宋 왕안석王安石

茅簷長掃淨無苔 띳집은 매일 쓸어 이끼 없이 정갈하고
花木成畦手自栽 손수 심은 꽃과 나무 밭 모양이 되었네
一水護田將綠遶 한 강물은 초록 밭을 빙 둘러 보호하고
兩山排闥送青來 두 산은 문 밀치고 푸른 기운 보내주네

전 4구가 대구로 되어 있다. 앞 2구는 그런대로 대구가 되지만 뒤의 2구는 극히 정묘하다. 시 전체가 호음선생 집에 가서 보이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모두 뜻이 담겨 있어서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는 말을 이 시에 적용하면 외경내정(外景內情)이라 지적할 만하다.

이 시의 3, 4구는 호음 선생이 살고 있는 거처의 전답과 집이 매우 좋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1, 2구는 호음 선생의 집이 정갈한 것을 통해서 호음선생의 성품을 드러내기도 하고 꽃과 나무를 많이 가꾸는 것을 통해 고상한 취미 생활과 기호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외면적으로는 경관을 묘사하였지만 실질상으로는 호음 선생의 인품을 드러낸 것이다.

명나라 산수화에 보면 산수 속에 나오는 가옥과 전답, 물과 산, 나무와 꽃, 바위와 구름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의 인품을 구현한 것이 많은데 이 시는 선과 색으로 구현한 산수화 대신에 언어로 구현한 호음 선생의 인품이라 할 수 있다.

호음선생은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만년에 금릉 종산(鍾山)에 살 때 이웃에 거주한 사람으로 양덕봉(楊德逢)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행적은 딱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왕안석이 이 사람을 대상으로 쓴 시가 10편 정도 있다. 이 시는 본래 양덕봉의 집 벽에 쓴 2편의 시 중 한 수이다.

3구 장록(將綠)의 ‘록(綠)’은 밭의 초록이지 물의 초록이 아니다. 4구의 청(青)이 산을 가리켜 말한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호전(護田)과 배달(排闥)은 고사가 있다. 둘 다 《한서(漢書)》에 나온다. 한나라 때 서역에 군사를 파견하고 장기적으로 지키면서 둔전(屯田)을 경영하였는데 그 때 군사를 파견하여 그 둔전을 지킨 일이 있다. 지금 물이 마치 병사들처럼 밭을 잘 보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또 유방은 자신이 아플 때 아무도 금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내시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는데 번쾌가 문을 밀치고 들어와 간언을 한 일이 있다. 지금 집 앞에 보이는 산이 상당히 기세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산과 물에 사람의 성정을 담아 거처하는 사람과 교감을 하게 한 점도 뛰어나지만 역사서에서 전고가 있는 어휘를 선택하여 그 물과 산의 성격까지 드러낸 점은 참으로 뛰어나다. 과연 세상에 널리 전송되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송나라 오증(吳曾)의 《능개재시화(能改齋詩話)》와 오병(吳竝)의 《우고당시화(優古堂詩話)》에 보면, 이 마지막 2구는 오대 때 심빈(沈彬)의 시 “땅은 한 물을 외지게 하여 성을 돌아 흐르게 하고, 하늘은 여러 산을 묶어 성곽에 붙여 오게 하네. [地隈一水巡城轉, 天約羣山附郭來.]”라는 구절과, 또 당나라 허혼(許渾)의 “산의 형세는 대궐에 조회를 가는 듯하고, 물의 기세는 관문을 안고 흘러오네.[山形朝闕去, 河勢抱關來.]”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왕안석 시의 기초를 이렇게 알아냈는지 놀랄 따름이다. 내가 볼 때도 확실히 기본 아이디어는 여기서 차용한 것 같다. 산과 물의 성정을 대비적으로 표현한 점이 구체적인 표현은 달라도 기본 구도는 같은 것이다. 그러나 두보도 ‘한 글자도 근원이 없는 곳이 없다[無一字無來處]’고 하였듯이 고인의 시구를 점화(點化)하는 것은 하나의 시 이론이기도 하다. 왕안석은 지방에 묻혀 있는 토속 음식을 국제적인 수준의 음식으로 환골탈태를 한 것이라 평할 수 있다.

董其昌 葑径访古图 이미지 출처 书法屋 So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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