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사마광司馬光 객지에서 초여름에客中初夏

객지에서 초여름에客中初夏/송宋 사마광司馬光

四月清和雨乍晴 화창한 사월 날씨 비가 오다 금방 개니
南山當戶轉分明 문 앞에 보이는 남산 풍경 훨씬 선명하네
更無柳絮因風起 바람에 날리는 버들개지는 더 이상 없고
惟有葵花向日傾 오직 접시꽃만이 해를 향해 기울어 있네

어제 왕안석의 시를 소개하였는데 오늘 그의 정적 사마광의 시를 소개하니 절로 비교가 된다. 왕안석의 시에서는 구수한 보리 내음새에 취하고 녹음과 그윽한 풀이 좋아 절로 4월이 꽃 피는 봄 보다 낫다고 하였는데, 이 시에서는 은근히 임금을 향한 충성을 드러내고 있다. 3, 4구는 계절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표현 자체가 절로 은유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즉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버들개지는 더 이상 내 마음에 없고 오직 임금을 향한 마음뿐이라는 말로 들린다. 이런 식으로 시를 보면 1, 2 구 역시 원래 태평성대인데 잠시 어지러워졌지만 다시 흐린 날씨가 개면 더욱 성대를 누릴 것이라는 말로 읽힌다. 이런 까닭에 이 시를 사마광이 낙양에 있을 때 지은 시라 하는데 타당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시가 읽히는 것은 규화(葵花)라는 식물과 그 식물의 향일(向日)적 성향 때문이다. 예전에 해는 황제나 왕 등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였기에 ‘해를 향한다.’는 말은 ‘충성’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규화(葵花)는 ‘해바라기’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지금의 해바라기는 아니다. 규화는 예전 문헌과 그림을 살펴보면 매우 종류가 다양한데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시꽃이라 불리는 것과 ‘닥풀’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보통 촉규(蜀葵), 규화(葵花)로 나오면 대개 접시꽃이고, 황촉규(黃蜀葵), 추규(秋葵) 등으로 나오면 닥풀을 의미한다. 이들의 별칭이 바로 ‘ᄒᆡ바ᄅᆞ기’, ‘ᄒᆡ바ᄅᆡ기’였는데 개화기 때 서양의 해바라기가 들어와 본래 접시꽃과 닥풀이 가지고 있던 언어의 별장을 차지한 것이다.

자료를 오랫동안 모으고 생각만 해왔을 뿐 정작 써 놓은 글이 없는 상태에서 해당 사항을 목도하면 참으로 난감한데 이 시의 규화(葵花)를 보는 순간 그런 생각에 휩싸인다. 보통 도자기에 시문된 문양이나 시문에 묘사된 규화를 보면, 황촉규, 즉 닥풀이 대부분이다. 닥풀은 지금도 한지를 만드는 주요 점액질 재료로 쓰인다. 그런데 이 황촉규는 가을에 꽃을 피우기에 여기서 말하는 규화는 접시꽃으로 보인다.

《명사대가특별전 : 沈周》(2014) 도록 41번에 실린 <계산초각도(溪山草閣圖)> 그림과 그 그림에 적힌 시를 보면 분명 규화 종류를 말하고 있는데 그림을 보면 접시꽃과 닳아 있다.

정민, <접시꽃과 해바라기의 착종과 오해> (문헌과해석29, 2004)에서는 주로 접시꽃으로 논리를 풀어갔고, 김종덕의 <해바라기(向日葵), 向日花의 어원에 대하여>(한국의사학회지, 2001) 에서는 닥풀을 주로 염두에 두고 글을 썼는데, 앞으로 접시꽃과 닥풀을 아우르면서도 도자기와 많은 시문에 언급된 다양한 종류를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심주沈周, <계산초각도(溪山草閣圖)>

365일 한시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