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령王令 봄을 보내며送春

봄을 보내며 送春/송宋 왕령王令

三月殘花落更開 삼월의 남은 꽃 지더니 다시 피고 
小簷日日燕飛來 낮은 처마엔 매일 제비 날아오네
子規夜半猶啼血 소쩍새 한밤에 아직도 피를 토하니
不信東風喚不回 봄바람 잡을 수 없음을 못 믿는 듯

시인이 과학자와 다른 점은 실제의 사실이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진실과 인생의 이치를 표현하고 통찰하는 점일 것이다. 이 시는 가는 봄을 못내 아쉬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 경치를 보는 눈이나 일으키는 생각이 매우 애상적이다.

봄바람은 때가 되면 지나간다. 사람이나 동식물이 만류한다고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피어날 꽃들은 대개 피었다 졌고 마지막 봄을 장식하는 꽃들이 피고 있다. 제비도 온 지 한 참 지나 둥지를 매일 같이 오고 간다. 그런데 한 밤중 저리도 애절하게 우는 소쩍새 소리를 듣노라면 봄이 가는 걸 전혀 믿고 있지 않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시인도 알고 있다. 소쩍새가 아무리 울어도 봄이 간다는 것을. 소쩍새, 접동새, 자규, 귀촉조 등으로 불리는 이 새는 그 이름에 해당하는 저마다의 전설과 문학 작품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마도 한 밤에 구성지게 우는 소쩍새 울음 특유의 애잔함 때문일 것이다. 이 시인이 자규를 등장 시킨 것도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님의 침묵>에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뒤에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 시인은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지만 마음이 돌아선 애인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제목이 <님의 침묵>일 것이다.

이 시인 역시 봄바람이 한 번 가면 아무리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소쩍새가 못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뒤집으면 소쩍새가 아무리 애절하게 울면서 봄을 만류해도 봄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목이 송춘(送春)이다. 이 시인의 시집 《광릉집(廣陵集)》에 <춘원(春怨)>, 즉 ‘가는 봄에 대한 원망’으로 제목이 된 것은 바로 그런 생각의 반영일 것이다.

‘3, 4구는 도치구로 불신(不信)의 주체는 앞에 나온 자규(子規)이다. 아니, 자규가 봄바람을 잡을 수 없음을 믿지 않는다고 시인이 생각하는 것이다. 4구와 같은 굴곡진 감정의 표현에서 이 시인의 역량을 느끼게 한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여운(餘韻)을 남긴다. 여향(餘香), 여미(餘味) 등도 그러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아름다웠던 봄이 지는데 여운이 없을 리가 없다. 이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마도 봄이 남긴 여운의 깊이가 아닐까.

왕령(王令, 1032~1059)은 자가 봉원(逢原)인데 천가시에는 자를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 왕령은 하북성 대명현(大名縣)이 고향이지만 나중에 광릉, 즉 남경에 와서 살았다. 이 사람은 기개도 있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는데 불행히 28세로 요절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문집 《광릉집(廣陵集)》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상당한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宋 馬遠 《山徑春行圖》 사진출처 名师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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