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산 샘물로 차를 달이다가山泉煎茶有懷

산 샘물로 차를 달이다가山泉煎茶有懷/당唐 백거이白居易

坐酌泠泠水 앉아서 시원한 물 떠 담아 
看煎瑟瑟塵 파란 가루 달이는 것 보네
無由持一碗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寄與愛茶人 한 사발 부칠 방법이 없네

이 시는 주금성(朱金城)의《백거이집전교(白居易集箋校)》(상해고적출판사)에 의하면, 822년 백거이가 51세 때 장안에서 항주자사로 부임하는 과정에 쓴 시로 보고 있다. 그리고 섬서사범대학(陝西師範大學)에서 2016년 석사 논문 《白居易茶時硏究》을 제출한 원경(袁慶)의 논문 부록에 붙인 <白居易 茶時輯錄>을 살펴보면 모두 64편에 달한다. 다시(茶時)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이 시는 우리나라 인터넷에도 떠도는데, 대체로 3구의 ‘무유(無有)’를 3구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는 바이두에 올라 있는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의 원의가 아니다. 한문에 종사하는 사람은 어떤 글자가 어디에서 떨어지나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이 시에서 무유(無由)는 ‘~할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이 시의 마지막 구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 시의 1, 2구는 대구와 호문(互文)을 동시에 쓰고 있다. 호문이란 앞뒤의 구에 쓴 글자가 서로 연관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첫 구의 좌(坐)와 둘 째 구의 간(看)은 대구이면서 호문이기도 하다. 즉 다정(茶鼎)에 물을 담고 차 분말을 넣어 다리는 행위를 앉아서 하고 또 보고 있는 것을 말한다. 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차를 달이고 있노라니’의 의미이다.

‘냉냉(冷冷)’이 찬물의 찬 상태를 말한 것이라면 슬슬(瑟瑟)은 벽색(碧色)의 차 가루를 말한다. 백거이가 시 <모강음(暮江吟)>에서 강물의 파란 색을 ‘슬슬’로 묘사한 바가 있고, 임포(林逋)도 시 <다(茶)>에서 맷돌에서 파란 분말이 폴폴 난다.[石輾輕飛瑟瑟塵]라고 하였다. 슬슬진(瑟瑟塵)은 하나의 차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 시에서의 ‘슬슬’은 파란 색을 묘사한 말이다.

이 시는 남조 때의 은자인 도홍경(陶弘景, 456~536)의 시와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과 이전에 교유가 있던 양나라 무제(武帝)가 초청하기 위해 보낸 조서에 대해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고개 위에는 흰 구름이 많네. 다만 나 혼자 즐길 뿐, 그대에게 가져다 줄 수가 없네.[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라고 하는 시를 지어 보내며 벼슬을 사양한 적이 있다.

백거이가 도홍경의 고사를 원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홍경이 담은 의미와 거의 유사한 맥락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차 한잔을 정말로 차를 애호하는 분에게 드리고 싶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가만히 음미하면 여러 뒷맛이 우러나는 것을 절로 느낄 것이다.

백거이는 7월에 항주 자사로 임명되었지만 당시 난리로 운하가 막혀 강주(江洲)를 거쳐 여산초당(廬山草堂)에 들렀다가 10월에서야 항주 자사로 부임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아마도 가을 무렵 여산에서 쓴 시가 아닐까.

아름다운 풍경이나 희귀한 물건, 맛있는 음식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나는 경우가 있다.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아름다운 고통이다. 백거이는 그 아름다운 고통을 통하여 산 샘물을 길어 우연히 달인 차가 너무도 황홀하였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풍류가 아니라 남에게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이렇게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풍류가 아닐까.

宋 劉松年 《攆茶圖》 사진출처 怀恩书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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