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더蘇德-반지·자식戒・子 1

쑤더蘇德, 사진 출처 上海圖書館

쑤더蘇德
여성. 1981년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왕이王藝이다. 16세에 제1기 중국작가협회 루쉰문학원 청소년작가반을 수료했다. 2001년 소설 창작을 시작해 2007년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했고 같은 해에 상하이시 작가협회 계약작가가 되었다. 출판된 작품으로 《내 황량한 이마를 따라沿着我荒涼的額 》, 《길에서 나는 이야기를 하련다次馬路上我要說故事》, 《사랑은 잊을 수 없는 것 愛是不能忘記的》(서간집), 《철로 위의 사랑鋼軌上的哀情》 (첫 번째 장편소설), 《속죄贖》, 《이별離》, 《졸업 후, 결혼 전畢業後, 結婚前》, 《만약이라는 일은 없다 沒有如果的事》이 있다.

쑤더, <반지·자식>-1

그것은 올해의 마지막 플라이 백fly back이었다.

공항을 나와 린줘林梲는 쉬우徐吾에게 전화를 걸어 언쩌恩澤읍으로 돌아갈 차표를 벌써 샀다고 말했다. 새해가 가까운 탓에 공항 입구에는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린줘는 어쩔 수 없이 여행 가방을 끌고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그녀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오랫동안 걸었다. 돌아보면 여태껏 한 번도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가려 한 적이 없었다. 천천히, 좀 더 천천히, 천천히 집에 돌아갈수록 좋았다. 가장 좋은 것은 비행기 연착이나 버스 고장이었다.

버스에 앉아 황푸黃浦강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 차츰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농가가 보였고, 가축들이 보였고, 소형 트랙터가 보였다. 그러다가 차츰 대형 쇼핑센터와 인테리어 전시장과 주택 지역이 나타나 황푸대교를 건널 때까지 쭉 이어졌다. 통화를 한 뒤로 그녀는 이미 버릇이 된 듯 쉬우에게 아무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연애할 때나 막 결혼했을 때는 매번 그녀가 돌아올 때마다 어김없이 쉬우가 공항에 마중을 나오곤 했다. 일 때문에 그러지 못할 때는 그녀가 착륙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두 사람은 수도 없이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을 때는 부엌 식탁 위에 쉬우가 전날 저녁 사놓은 백장미 한 다발이 꽂혀 있었다. 그 백장미는 하루가 지났는데도 한껏 활짝 피어 있었다. 린줘는 백장미를 좋아했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의 제목도 󰡔백장미󰡕였고 거기에는 “백장미는 조용하고 독립적이면서도 강인한 사람을 뜻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린줘는 사실 그렇게 강인하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조용한 편이었다. 그래서 7년 동안 계속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자신이 시간과 삶에 의해 한 줄기 백장미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제는 집에 돌아가도 활짝 핀 백장미가 그녀를 맞아주지는 않지만.

린줘가 집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쉬우가 있었다. 게다가 저녁상이 차려져 있고 식탁 가장자리에 백장미 한 다발까지 놓여 있었다.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고 쉬우는 두 팔을 벌려 다가와 안아주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냉전을 벌인 지 반년만의 첫 포옹이었다. 하지만 린줘는 이미 어색해진 듯 허리를 숙여 구두끈을 풀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쉬우는 낭패하여 잠시 현관에 서 있다가 다시 그녀의 짐을 받으며 분위기를 풀려 했다.

“밥을 해놓았어. 우리, 집에서 제대로 식사를 한 지 너무 오래됐잖아.”

쉬우가 말했다.

“응.”

린줘는 목도리를 풀고 부엌 쪽으로 갔다. 그리고 손을 씻고서 기분을 풀어볼 생각이었다. 부엌은 신혼 때와 비교해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더러워진 데도 낡은 데도 없었다. 린줘가 요리를 할 줄도 모르고 즐기지도 않아 둘은 툭하면 밖에 나가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둘이 식사를 했고 때로는 각자 친구와 식사를 했으며 가끔은 쉬우가 집에서 요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요리를 하고 나면 꼭 밤에 사랑을 나누기를 바랐다. 쉬우는 그쪽으로 욕망이 왕성했고 린줘도 그랬다. 그래서 결혼한 후 첫 3년 동안 그녀는 두 번 임신을 했지만 두 번 다 두 달도 안 돼 유산이 되었다. 처음에 린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 같은 컨설턴트는 항상 비행기를 타고 힘들게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므로 피로가 쌓여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4번째 해에 3번째 임신을 했을 때는 일부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었는데도 두 번째 달을 며칠 앞두고 또 유산이 되었다. 이번에는 린줘와 쉬우 둘 다 신경이 쓰여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찰을 받았고 그 결과는 공통적으로 습관성 유산이었다. 의사는 린줘가 본래 허약 체질이라면서 앞으로는 임신을 시도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안 그러면 연이은 유산으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병원을 다녀온 날 밤, 린줘와 쉬우는 둘 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이 조금 차가왔지만 린줘는 비누칠을 해 꼼꼼히 손을 닦았다. 그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가는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와 쉬우가 결혼하기 전에 쉬우의 아버지가 준 것이었다. 쉬우의 어머니가 물려준, 매우 오래된 물건이라고 했다. 그래서 상하이로 돌아온 뒤 두 사람은 일부러 금은방에 찾아가 똑같은 모양의 금반지를 하나 더 맞췄고 그것을 쉬우가 끼어 결혼반지로 삼았다. 많은 동료들이 린줘의 반지를 보고 기뻐해주었다. 순금인 그 반지 표면에는 몇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누구는 산스크리트어라고 했고 누구는 고대의 음표라고 했다. 또 누구는 보고서 “이거 감로(甘露. 천하가 태평할 때 하늘에서 좋은 징조로 내린다는 단맛이 나는 이슬) 아닌가요?”라고 했다.

린줘는 5년간 그 반지를 끼고 다녔고 역시 그 부적 같은 글자들이 감로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쉬우가 뒤에서 린줘를 꼭 껴안으며 어깨를 감쌌다.

“어서 밥 먹어.”

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린줘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부림을 치다가 그만 어깨로 그의 턱을 치고 말았다. 그는 눈앞이 아찔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쉬우는 성을 냈다. 린줘도 기분이 안 좋아 두 사람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밤에 쉬우가 또 자기 이불에서 발을 뻗어 린줘를 슬쩍 건드렸다. 그러나 린줘는 자는 척하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쉬우의 무거운 탄식 소리를 들으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반년 전부터 그들은 이불을 따로 쓰기 시작했다. 쉬우가 자기를 건드리는 것을 그녀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임신이 무서웠다. 네 번째 유산을 한 뒤 생리를 할 때는 말할 힘조차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해지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아이를 안 낳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쉬우는 삼대독자였다. 아이를 안 낳는 것은 고사하고 첫째 아이가 여자아이여도 시아버지는 둘째를 가지라고 닦달할 게 뻔했다. 이 일로 린줘는 쉬우와 숱하게 말다툼을 했다. 그가 다시 시도해보자고 할 때마다 린줘는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당신 집은 내가 죽었으면 하는 거야?”

두 사람이 동침할 기회를 줄이려고 올해 린줘는 필사적으로 출장을 신청했다. 컨설턴트의 출장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세 달이었다. 회사에서 매주 집에 다녀오는 항공권을 제공해줘도 가능한 한 쓰지 않았다. 그녀는 집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남 앞에서 쉬우 얘기도 안 하게 되었다. 가끔 동료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마중 나온 남편과 즐겁게 돌아가거나 호텔 방에서 전화로 달콤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면 실의에 빠져 옛날처럼 쉬우와 다정하게 지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화만 하면 말다툼을 했다. 쉬우가 조금만 달콤한 말을 하면 린줘는 알 수 없는 긴장에 휩싸였다. 남편이 자기를 구슬려 집에 돌아가게 하고 또 동침을 해서 임신을 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두려웠다.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분노로 바꿔 모두 밖으로 발산했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자 쉬우는 그녀가 이유 없이 소란을 피운다고 생각해 더는 좋은 말로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려 하지 않았다.

戒・子 1

这是今年的最后一次Fly back。

走出机场,林悦给徐吾打了个电话,他说回恩泽镇的车票已经买了。因为临近新年,机场门口等出租车的队伍排得很长,林悦只有拉看行李去坐机场大巴。她心里沉甸甸的,拖着箱子走了很久。她从没有这么计较过回家的步伐,慢一点,再慢一点,越慢越好,最好飞机误点了,最好大巴抛锚了。

坐在大巴上,看着浦东往浦西的高速路边逐渐冒出人烟来,有房、有水、有牲畜、有小拖拉机,再渐渐地,是大卖场、装修城、住宅区,一直到过了卢浦大桥。除了那通电话以外,她没有再给徐吾发任何短信,仿佛已经成为了习惯,记得谈恋爱和刚结婚那会儿,每次fly back,徐吾必定是要到机场接的,哪怕因为工作忙,走不开,一落地他们也会发很多短信,直到回家。回了家,家里餐厅的桌子上必定有一束徐吾前一晚就买好的白玫瑰,隔了夜,便无所顾忌地盛开。林悦很喜欢白玫瑰,读书时她最喜欢的小说就叫《白玫瑰》,里面写,白玫瑰属于安静、独立又坚强的人。林悦其实不怎么坚强也不太独立,可她还算安静,于是七年工作下来,她觉得自己被时间和生活揉捏成了一枝白玫瑰,哪怕现在回到家已经不会瑞有盛开的玫瑰花等待。

回支家,徐吾已经在了。他出人意外地准备了一桌菜,餐桌边竟然还有一束白玫瑰,见到林悦回来,徐吾张开怀抱去迎他,这是他们冷战大半年来的第一次拥抱,可林悦已经显得有些不习惯了,她顺势弯腰去解鞋带,躲开了。 徐吾自讨没趣地站在玄关,停顿了一下,又试图缓和气氛,伸手去拉他的箱子。

“我烧了菜,我们很久没好好在家里一起吃饭了。”徐吾说。

“哦”。林悦解下围巾,朝厨房走去。她要洗手,也要缓解一下情绪。厨房还是新婚那年的模样,没有脏也没有旧。因为林悦不会烧菜,也不爱烧菜。他们常是有一顿没一顿地在外面解决,有时两个人一起,有时各自和朋友,也有时徐吾会在家下厨。但每次他下厨,夜里必定是深深恩爱的一晚。徐吾在那方面很要,林悦也是,所以结婚头三年,她怀过两次孕,却在头两个月就掉了。刚开始,林悦没在意,因为做咨询师一行的人每年都要在各地飞来飞去很辛苦,她觉得是劳累所致。可在第四年,她第三次怀孕,并且辞去了工作安心在家里养胎后,第二个月还差几天的时候,又一次流产了。这一回,林悦和徐吾都在意了,他们去过很多医院看病,结论都是:习惯性流产。医生建议鉴于林悦本来就虚弱的体质,最好还是不要尝试妊娠,不然很可能因为再次流产而危及生命。从医院回来那一晚,林悦和徐吾都失眠了。

水有些冰冷刺骨,林悦打了肥皂一遍一遍地搓手,左手无名指上有一格纤细的金戒指,是她和徐吾结婚前,徐吾父亲给的,据说这金戒指还是徐吾母亲传下来的宝贝,很有年份。于是,回到上海后,他们专门去金店里按照戒指的模样另外打了一枚。徐吾戴着,算作婚戒。很多同事看见林悦的戒指都很喜欢,纯金戒面上细刻着一些文字,有人猜是梵文,有人说是古音标,也有人看了看,这不是一串甘露吗?

林悦对着这戒指看了五年,她也觉得像一串符咒般的文字像甘露。

突然,徐吾从背后抱住林悦,胳膊拦着了腰。“快吃饭吧”他俯下脑袋,说。林悦吓了一大跳,耸艳情肩膀来想挣脱,却没想到撞着了徐吾的下巴,他顿时眼冒金星。“你这是干什么!”徐吾生气了。林悦也不高兴,两人又不说话了。

夜里,徐吾还尝试着从自己被子里伸出腿来挠林悦,但林悦装睡,显得很僵硬。她在徐吾的一声重重的叹气里看着窗外,大半年前,他们就开始分被子睡,因为她不想徐吾碰自己,怕怀孕,第四次流产后,坐小月子时,她已经虚弱得连说话的力气都没有了。那以后她便打定主意,孩子不生了。可徐吾在家是三代单传,别说不要孩子,就连第一胎是个女孩,公公也一定会要儿媳生第二胎的。为了这事,林悦和徐吾没少吵架。他说再试一试吧。林悦就狠狠瞪了他一眼,你们家想要我的命吗?

为了减少两人同房的机会,这一年林悦拼了命地申请去外地出差,咨询师的出差少则一个星期,多则两三个月,虽然每周公司有fly back的体恤福利,但她能不用就不用。她变得不爱回家了。也很少在别人面前提起徐吾。有时,看着同事们高高兴兴地下飞机被老公接走,或者在酒店房间里甜蜜地煲电话粥,她就很失落,她也想像过去那样和徐吾恩恩爱爱的,但他们一打电话就开始吵架。徐吾说再多甜蜜的话,林悦心里都莫名地紧张,她觉得老公是要哄自己回家了,要哄她上床,哄她怀孕。她怕,很怕,于是就把这种恐惧化作了愤怒的情绪,全部宣泄出去。时间一久,徐吾觉得她无理取闹,也懒得再低声下气地讨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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