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明] 고린顧璘 감흥 절구遣懷絶句 넷째 수其四

감흥 절구遣懷絶句 넷째 수其四/ [明] 고린顧璘

계곡물 차가운데
창포 푸르고

산속에 봄이 와서
철쭉 붉었네

봄풀은 가을끝 산불인가
깜짝 놀라고

나무들도 한밤 바람
싫어한다네
澗冷菖蒲翠, 山春躑躅紅. 草驚秋盡火, 樹厭夜深風.

나 어릴 때는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참꽃이라 불렀다. 제일 중요한 차이는 참꽃은 먹을 수 있고, 개참꽃은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사실이기에 호기심 많은 어린 시절에도 감히 개참꽃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꼴을 하러 다니며 소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구별하면서 자랐으므로 개참꽃을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개참꽃을 왜 먹어서는 안 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제 참꽃이 지고 개참꽃이 필 때다.

개참꽃은 이 시의 묘사처럼 가을 산불처럼 붉지 않다. 참꽃보다 색깔이 연해서 묽은 분홍색에 가깝다. 하지만 신록이 짙어가는 봄 산에 핀 철쭉은 초록색 초목을 배경으로 피므로 분홍색이 매우 돋보인다. 이 때문에 봄산에 만발한 분홍색 철쭉을 보고 이제 겨우 묵은 풀더미에서 싹을 내민 야초(野草)가 지난 늦가을 온 산천의 초목을 태운 산불이 아닌가 깜짝 놀란다고 표현한 것이다. 야초 주위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밤이 깊어 바람이 세차게 불면 개참꽃의 불똥이 나무에 옮겨 붙을까 염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쩌면 신록을 배경으로 분홍색 꽃불을 뽐내는 철쭉을 풀과 나무가 시샘하는 듯도 하다.

5월 중순 이후에는 우리 명산 곳곳에 철쭉이 만발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지리산 세석평전 철쭉을 최고로 친다. 대체로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까지 이어진다. 세석평전은 영신봉과 촛대봉 사이에 펼쳐진 완만한 고원 평전이다. 높이는 거의 해발 1700미터 가깝다. 고원지대 운무 속에 핀 철쭉은 정말 신선세계를 방불케 한다. 거의 20년 가까이 가보지 못했다. 세석평전 철쭉이란 단어를 언급만 하고 있어도 젊은 시절 역마살이 되살아난다. 그립다.(2018.04.20)

한시, 계절의 노래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