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두보杜甫 春望봄날 풍경 바라보며

春望봄날 풍경 바라보며/당唐 두보杜甫

國破山河在 국도가 함락되니 산하만 남아 있고 
城春草木深 장안성 봄이 와서 초목만 무성하네
感時花濺淚 시국 슬퍼 꽃을 보아도 눈물 나고
恨別鳥驚心 이별 아파 새 소리에도 맘 놀라네 
烽火連三月 봉화가 세 달이나 계속 이어졌으니
家書抵萬金 집에서 오는 편지 만금에 상당하네
白頭搔更短 흰 머리 긁적여 더욱 짧아지니
渾欲不勝簪 정말 비녀 하나 꽂기도 어렵네

757년 두보가 46세 때 안록산이 함락한 장안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안록산은 755년 11월에 범양(范陽), 지금의 북경에서 기병하였는데 이듬해 6월 장안으로 들어오는 전략적 요충지인 동관(潼關)을 격파하였다. 동관은 진한 시기 함곡관(函谷關) 같은 곳으로 나팔관처럼 되어 있어 방어에 아주 유리한 곳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란을 갔는데 두보도 가족들을 데리고 부주(鄜州), 즉 지금의 연안으로 피난하였다.

8월에 현종의 아들 숙종이 영무(靈武)에서 분조를 세워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달려갔다가 도중에서 안록산군의 포로가 되어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이 때 지은 시가 바로 <달밤[月夜]>인데 이 시에 보면 처자식이 부주에서 지금 이 달을 볼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두보는 그 이듬해, 즉 757년 억류된 지 8개월 정도 되는 4월에 장안을 탈출하여 봉상(鳳翔)에 있는 숙종을 알현한다. 이 시는 억류된 지 6개월 정도 지나고 탈출하기 2달 정도 전에 지은 시이다.

사마광이 이 시를 두고 “산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이 것 말고는 남은 게 없다는 뜻이고, 초목이 깊다는 것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는데 옳은 지적으로 보인다. 국(國)을 나라와 도성으로 의견이 분분한데 당시 당이 망한 것도 아니고 장안이 함락된 것이므로 국도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꽃이 눈물을 흘리고 새가 놀라지는 않을 것이니, ‘화(花)’는 ‘꽃을 보다’로 ‘조(鳥)’는 ‘새 소리를 듣다’는 동사로 이해된다.

혼(渾)은 ‘정말로’란 의미이다. 봉화가 3개월간 이어졌다는 것은 전황이 매우 다급한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가운데 멀리 떨어진 가족 걱정과 자신이 달려갔던 분조를 비롯하여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니 절로 신경이 쓰여 머리가 빠진다. 여기에 머리를 정돈하는 비녀를 꽂으려 하니 남은 머리가 없어 비녀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가서(家書)를 ‘집에서 온 편지’로 번역한 책들이 보인다. 이는 매우 잘못이다. 이렇게 번역하면 마치 두보가 집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너무 기뻐 ‘이 편지가 만금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겠는가? 이는 적중에 억류된 상태라 집안 소식을 전혀 몰라 너무 애가 타는 나머지 ‘만금을 주고라도 편지 한 장 받아 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뜻으로 한 말로 보인다.

이 시는 유명하여 여러 번 깊이 따져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보니 1, 2구도 언외지의(言外之意)가 깊지만 3, 4구가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당해보지 않고 진실된 걱정이 없는 사람이면 쓸 수 없는 표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풍부한 경험은 시의 좋은 소재가 되지만 시인의 마음이 없이는 좋은 시를 쓸 수 없고, 시인의 마음이 있어도 적절한 소재를 만나지 못하면 역시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얼마 전 강원도 고성, 속초, 강릉 일대에 산불이 났는데 그 당사자들이 자신들이 살던 곳에 돌아가 보면 이런 심정이지 않을까 한다. 
이 시는 《당시배항방》 56위에 올라 있다.

사진 출처 智谷趋势 sina.com.cn

365일 한시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