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당唐 두목杜牧 청명淸明

청명淸明/두목杜牧

清明時節雨紛紛 청명 시절 부슬부슬 비가 내리니
路上行人欲斷魂 길 가는 나그네 마음 무너지는 듯
借問酒家何處有 근처에 주막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牧童遙指杏花村 목동이 멀리 살구꽃 마을 가리키네

오늘 4월 5일은 청명이자 식목일이다. 지금은 청명 한식이 이름만 남아 있지만 대략 20년 전만 해도 이 무렵엔 산소를 돌보는 행사를 많이 했다. 지금도 산소에 가토(加土)를 하거나 떼를 입히는 경우는 보통 이날 한다.

세시 풍속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매우 이치에 닿는다. 청명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봄이 와 풀을 밟으며 산책하기에 좋고 또 날도 완전히 풀렸기에 무덤을 돌보기에도 좋다. 당송 이래로 청명에 일가가 모여 답청(踏靑), 소묘(掃墓)를 한 것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봄나들이를 가는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효와 예로 나라를 다스렸기에 무덤을 돌보는 일에 비교적 넉넉한 휴가를 주었다. 휴가나 사직을 청하는 것을 정사(呈辭)라고 하는데 《전율통보》나 《대전회통》 등의 법전에는 이런 조항이 잘 갖추어져 있다. 조선 후기의 경우를 보면 관원들은 2년에 한 번 무덤을 돌보는 소분(掃墳) 휴가를 갈 수 있었다. 중국에서 흔히 쓰이는 소묘는 결국 성묘라는 의미인데 조선 시대에는 소분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 이 때 왕복 기간은 하루 80리를 가는 것으로 계산하여 별도로 제해 주고 체류하는 날만 알짜로 7일을 주었다. 무덤에 흙을 보강하는 가토(加土), 자신이 임명장을 받아 무덤에 풍악을 울리고 고하는 영분(榮墳), 조상의 벼슬을 증직할 때 임명장을 누런 종이에 그대로 베껴 태우는 분황(焚黃) 때도 똑 같았다. 멀리 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고향으로 모시는 귀장(歸葬)은 15일로 자신의 혼인이나 부모를 뵈러 가는 근친(勤親)과 같았다.

두목이 조선시대의 이런 풍속을 보았으면 다소 머쓱해하지 않을까? 비에 옷과 신발이 젖은 것을 감안해도 ‘욕단혼(欲斷魂)’이라는 말은 실제의 감정보다 다소 과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정겹게 일가들과 회포를 푸는 고향에 못 가는 아쉬운 심정만큼은 십분 전달된다.

이 시에서 행인은 그냥 길 가는 사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행인이 두목 자신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그런데 시상의 전개상 그 행인이 술집을 찾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면 두목 자신이거나 최소한 그런 상태에 있는 화자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846년 두목(杜牧, 803~852)이 지주(池州, 지금의 안휘성 귀지(貴池)) 자사를 할 때인 44 때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송 시대에 이미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청명 무렵 유학을 하거나 벼슬을 구하기 위해 객지에 가 있는 사람의 가슴에 이 시가 큰 공명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상당히 재미있고 낭만적이며 정취가 있어 고금에 회자되고 화의(畵意)가 충만하여 시의도(詩意圖)의 글귀로도 많이 애용된다. 비가 부슬부슬 온다는 분위기에서 애상적인 마음으로 연결되고, 다시 주막으로 시상이 연결되어, 이 마지막 구절에 시의가 무르익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시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어떤 호사가는 이 시의 의미와 글자는 하나도 손상하지 않고 이 시를 다음과 같은 장단귀, 즉 사(詞)로 만들었다. (호사가의 시 출처 : 臺灣 三民書局 《新譯 千家詩》)

清明時節雨 청명 시절 내리는 비
紛紛路上行人 길 가는 행인에게 부슬부슬 내리네
欲斷魂 마음이 무너지는 듯
借問酒家何處 근처에 주막은 어디에 있는가
有牧童遙指杏花村 어떤 목동 멀리 살구꽃 마을 가리키네

장단귀로 만들어 시가 더욱 굴곡이 있다. 운자도 살렸을 뿐 아니라 중간에 ‘욕단혼’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 한 편의 시에서 이런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도 흔치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Zol论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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