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明] 장헌익張獻翼 진달래에 흥이 겨워杜鵑花漫興

진달래에 흥이 겨워杜鵑花漫興/ 장헌익張獻翼

꽃잎마다 잎새마다
향기를 머금은 채

아침마다 저녁마다
고운 경치 길게 잇네

무슨 일로 강남 땅에
봄이 다 가려는데

두견새 울음 속에
봄빛을 잡아두나
花花葉葉正含芳, 麗景朝朝夜夜長. 何事江南春去盡, 子規聲裏駐年光.

전설에 의하면 진달래는 두견새의 피울음이 맺힌 꽃이다. 중국 상고시대 촉(蜀)나라 왕 두우(杜宇)가 원통한 한을 품고 죽어 두견새로 변했고 두견새의 피울음이 진달래꽃에 배어 봄산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인다는 것이다. 역대로 두견새나 진달래를 읊은 시는 거의 대부분 두우의 전설에 기대고 있다.

“두견새 울음 속에 봄빛을 잡아둔다”는 이 시의 모티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시는 두견새의 원한보다는 고운 진달래꽃 묘사에 초점을 맞췄다. 같은 글자를 겹쳐 쓴 첫째 구의 “화화엽엽(花花葉葉)”과 둘째 구의 “조조야야(朝朝夜夜)” 구절은 고립어로서의 한자 묘미를 한껏 발휘했다. 봄날은 유한하지만 그 유한함 속에 천고의 아름다움이 깃든다. 반복된 글자의 낭랑한 음율이 유한한 봄날의 꿈을 영원히 이어주는 듯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도 두견새의 피울음이란 의미가 은근히 깔려 있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여기에서 두견새의 피울음은 바로 나의 피울음이다. 나의 피울음이 맺힌 진달래꽃을 떠나는 임에게 뿌림으로써 이 시는 진달래꽃의 새로운 풍경을 획득한다. 그 풍경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대학 다닐 때 4월이면 불렀던 노래 「진달래」도 마찬가지다. 이 노래는 본래 이영도의 시조 「진달래-다시 4.19날에」에 곡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젊은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4.19 영령들의 젊은 피가 봄날 멧등의 꽃사태로 쏟아진다는 묘사는 김소월의 「진달래꽃」보다 더욱 전통적인 의미에 가깝다. 하지만 두우의 사적 원한이 젊은 투사들의 공적 희생으로 변용되어 훨씬 가슴 아프면서도 숭고한 느낌이 든다. 같은 시조 다음 구절에 그런 의미가 더 강화되어 있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에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4월의 산하가 여울여울 붉다. 저기 멧등마다 다시 꽃사태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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