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옛 언덕 위의 풀賦得古原草送別


賦得古原草送別옛 언덕 위의 풀/당唐 백거이白居易

離離原上草 우거진 저 언덕 위의 풀 
一歲一枯榮 해마다 자랐다가 시드네 
野火燒不盡 들불도 다 태우지 못해
春風吹又生 봄바람 불면 또 돋아나네
遠芳侵古道 먼 곳의 방초는 옛 길을 침범하고
晴翠接荒城 반짝이는 풀 무너진 성에도 났네
又送王孫去 또 귀한 손님 떠나보내니
萋萋滿別情 이별의 정 풀처럼 가득하네

이 시는 787년 백거이가 16세 때 지은 시이다. 어린 나이에 좋은 글을 쓴 사례는 많다. 율곡(栗谷)은 8세 때 화석정 시를 쓰고 왕발(王勃)은 14세에 <등왕각서>를 쓰고 가의(賈誼)는 20세에 웅장한 상소를 썼다.

이 시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백거이는 당시 장안에서 갓 진사에 합격해서 이름이 없었다. 어느 날 시를 가지고 저작랑(著作郞) 고황(顧況)을 찾아뵈니, “장안에는 물가가 비싸 살기가 아주 쉽지 않다.[長安百物貴, 居大不易.]”라고 농담을 했다. 백거이의 이름을 재치 있게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3, 4구를 읽더니 감탄하면서, “시구가 이러하니 천하에 산다 해도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 내가 아까 한 말은 농담일세. [有句如此, 居天下有甚難? 老夫前言戱之耳!]” 라고 했다. 《당척언(唐摭言) 》 권 7 <지기(知己)>조에 나온다.

이 시의 제목은 「고원초를 지어 송별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예전 사람들은 제목을 서문처럼 쓴 경우가 많다. 오늘날 개념으로 보면 결국 ‘고원초’가 제목에 해당하는 셈이다.

들불이 마른 풀은 태울지 몰라도 뿌리까지 다 태우지를 못해 봄이 되면 풀은 다시 돋아난다. 이 구절은 멀리 가는 친구에게 칠전팔기의 의지를 주문하는 것이자 자신에 대한 격려이기도 한 셈이다.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큰 시인으로 성공하는 백거이의 앞날을 예고하는 주문처럼 들린다.

멀리 보이는 방초는 옛 길을 침범하고 햇빛 속에 싱그럽게 빛나는 풀은 황폐한 성에 접하였다. 여기서 원방(遠芳)이란 저 멀리 보이는 향기로운 풀을 말한다. 또 청취(晴翠)는 맑은 햇빛을 받아 눈부신 초록색으로 빛나는 풀을 말한다. 싱그러운 풀과 햇빛 속에 빛나는 풀이 새로운 생명력이라면 옛 길과 무너진 성은 지나간 유적이다. 이 2구는 봄날의 애상감과 무상감을 극대화한 구절이다. 그냥 밤만 되도 사람은 고독감에 젖는데 황성 옛터에 밤이 되면 어떻겠는가?

예전에 이 시를 볼 때는 이 구절이 제대로 눈에 안 들어왔는데 이제 보니, 이 구절이야말로 소년 백거이의 시에 대한 감수성과 언어에 대한 감각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방과 청취 같은 표현을 16살 소년이 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왕손이나 봄풀이 가지는 은유에 대해서는 이 연재 55회 당언겸(唐彦謙)의 봄풀[春草]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선 생략한다. 즉 귀한 손님을 여기서 떠나보내니 그 슬픔이 저 푸른 봄풀처럼 가슴에 가득하다는 말이다.

‘리리(離離)’와 ‘처처(萋萋)’는 모두 풀이 무성한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한문의 의태어와 의성어는 한글에 비해 훨씬 풍부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분명히 한자로는 다른 표현인데 한글로는 한 두 개 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났기 때문이다. 이 말은 둘 다 《시경》 에 나오는데 ‘리리’는 열매나 풀이 실하여 숙이고 있는 모양을 나타내고 ‘처처’는 풀, 잎, 구름 등이 농도나 밀도가 높은 것을 주로 나타낸다. 그러니 우리말의 ‘무성하다’에 가까운 것은 ‘처처’이고 ‘우거지다’, ‘숙이다’에 가까운 말은 ‘리리’이다. 그리고 그 앞에 ‘침범하다[侵]’, ‘닿았다[接]’는 말은 모두 풀이 그곳에도 났다는 말인데 모두 상황에 잘 맞는다.

이 시도 가만 보면 5, 6구가 매우 묘하기는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인력으로 가능하지만 3,4 구는 역시 귀신이 와서 도운 듯하다. 이 구절 때문에 ‘아무리 간신을 처단해도 또 간신이 생겨난다.’는 비유로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두보(杜甫)가 “만권의 책을 독파하고, 신들린 듯 글을 썼다.[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라고 한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말 역시 두보의 본래 의도는 ‘책도 많이 읽었고 글도 잘 쓴다.’는 의도로 한 말이지만 지금은 ‘책을 많이 읽어 글을 쓰면 귀신이 돕는 것 같다.’는 맥락으로 많이 쓰니, 두보의 이 구절 역시 분명 신이 와서 도운 듯하다. 이 시는 《당시배항방》에 54위에 올라 있다.

明 佚名 <春郊牧羊圖>局部 사진 출처 Bai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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