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진윤평陳允平 호수 가에서湖上

호수 가에서 湖上/송宋 진윤평陳允平

流水斷橋邊 흐르는 물결 서호의 단교 가
笙歌擁畫船 생황 선율 유람선을 감싸네
日酣花半醉 날마다 취하니 꽃도 취하고
春困柳三眠 졸리는 봄이라 버들도 조네
策杖登雲洞 지팡이 짚고 동천을 올라가고
觀魚上玉泉 물고기 보며 샘물을 찾아가네
鳳城歸去晚 도성에서 늦게 돌아왔다고
山鎖萬重煙 산이 만 겹 운무로 가리웠네

진윤평(陳允平)은 절강성 은현(鄞縣), 즉 지금의 영파(寧波) 사람으로 송말원초 시기를 살다 간 인물이다. 출생 시기를 대략 1215~1220으로 잡고 있다. 그는 송나라 때는 과거에 낙방한 뒤 지금의 상해와 절강성 일대를 떠돌며 살았고 원나라 때는 인재로 천거되어 대도까지 갔으나 사양하고 돌아왔다.

《양송명현소집(兩宋名賢小集)》에 보면 그는 재주가 뛰어나고 박식해서 당시의 이름난 공경들이 다 그에게 경도되었다고 하며 산수를 찾아 마음대로 다니며 시를 지었는데 특히 음률에 맞는 가사를 잘 지었다고 한다. 그가 지은 《석호어창사(石湖漁唱詞)》가 그 흔적이다. 《송백가시존(宋百家詩存)》에 그의 시집《서록시고(西麓詩藁)》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의 소전(小傳)에는 《양송명현소집》 의 내용에 이어 ‘맑은 풍모와 굳센 절조(淸風勁節)를 당시 사람들이 높였다.’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진윤평은 시와 사 둘 다 많은 작품을 썼는데 서호를 무대로 한 한 것이 많다.

이 시 전후의 시를 살펴보면 원나라 때 천거되어 대도로 갔다가 다시 항주 서호로 돌아왔을 때 지은 시로 보인다. 이 시 바로 다음에 기록된 시가 <서호모춘(西湖莫春)>이며 이 시의 첫 구에 나오는 단교(斷橋)는 바로 서호의 백제(白堤)에 있는 단교잔설(斷橋殘雪)로 유명한 바로 그 ‘단교’를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의 끝 2구는 공치규(孔稚珪)의 <북산이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남경 종산(鍾山)에서 은거하던 주옹(周顒)이 출세하여 현령을 하다가 서울로 가는 길에 이 산에 들리려 하니, 같이 은거하던 공치규가 종산의 신령이 공문을 보내 못 오게 가로 막는다는 내용으로 지은 글이다. 그 글에 보면 구름과 안개로 산과 골짜기를 안 보이게 하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주옹의 수레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운동(雲洞)이나 옥천(玉泉)은 모두 미화법으로 구름이 낀 동천(洞天), 즉 아름다운 골짜기나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샘을 말한다. 마침 서호 북고봉(北高峰) 아래 ‘옥천’이 있어 ‘운동’도 지명일 것 같지만 이 사람 시에 <운간동천(雲間洞天)>이란 시가 있어 둘 다 일반 명사로 보인다. 이곳에 다시 가려고 하니 서울에 가서 오래 머물다 왔다고 산이 화를 내며 못 오게 구름과 안개를 만 겹으로 둘러쳐 잠갔다는 것이다.

앞 4구는 당시 서호의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단교 주변에 유람하는 배들이 떠다니고 그 주변에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풍경 속에서 연일 술에 취해 다니니 주변의 꽃들도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겋고 나른한 봄이라 버드나무도 비스듬히 누워 졸고 있다. 한나라 무제의 동산에 있는 어떤 버드나무는 사람과 흡사한데 하루에 3번 일어나고 3번 잠잤다는 고사가 있다. 그래서 삼면류(三眠柳), 성류(聖柳), 인류(人柳)라고 한다. 버드나무가 바람이 불 때 한쪽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듯하다.

항주의 서호 백제에서 단교를 건너 임포(林逋)가 살던 고산(孤山)에서 놀다가 쌍봉삽운(雙峰揷雲) 방향으로 가면 초당4걸의 한 사람인 낙빈왕이 은거한 영은사(靈隱寺)가 나온다. 그 곁에 도광암(韜光庵)도 있고 냉천정(冷泉亭)도 있다. 이쪽에 옥천사(玉泉寺)도 있고 예전 갈홍(葛洪)이 연단을 빚었던 곳도 있다. 아마도 이 시인의 행로는 이 방향이었을 것이다.

斷橋殘雪, 사진 출처 bilibil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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