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유王維 산새 우는 골짜기鳥鳴澗

산새 우는 골짜기鳥鳴澗/당唐 왕유王維

人閑桂花落 한가한 마음 계화는 떨어지고
夜靜春山空 고요한 밤 봄 산은 적막하네
月出驚山鳥 달이 뜨자 산새들 깜짝 놀라
時鳴春澗中 봄 계곡에서 이따금 울어대네

고즈넉한 산골의 봄날 밤에 느끼는 적막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시이다. 한가한 마음으로 거니니 토독 톡, 계화가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들리고 밤이 되어 사위가 더 고요해지자 봄 산은 그야말로 공허한 적막 속에 잠겨든다. 흐르는 물소리 졸졸거리고 계화의 향기만이 은은할 뿐. 교교하게 달이 떠오르자 달빛에 놀란 새들이 빈 골짜기 어디선가 이따금 울어댄다. 적막감을 더한다.

어제 소개한 시가 낭만적이고 화사한 봄밤에 달구경을 하는 여인의 자태와 향기에 관한 시라면 이 시는 고독과 적막 속에서 느끼는 봄밤의 아름다움이다. 앞의 시가 속세의 멋이라면 이 시는 선가의 맛이라고나 할까.

이 시는《당인절구 (唐人絶句選) 》 같은 책에는 별도의 시로 편집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황보악(皇甫岳)이란 사람이 사는 운계(雲溪)에 대해 왕유가 지은 5편의 시 중 하나이다. 그 5편은 각각 연화오(蓮花塢), 노자언(鸕鶿堰), 상평전(上平田), 평지(萍地)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 모두 지명인 것을 알 수 있다. ‘조명간(鳥鳴澗)’을 ‘새가 골짜기에서 운다.’라고 하지 않고 ‘새 우는 골짜기’로 번역한 이유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계화(桂花)는 오늘날 흔히 관상용으로 심고 계피의 재료가 되기도 하는 계수나무가 아니다. 목서(木犀)라고 하는 나무인데 그 종류가 매우 많다. 금목서, 은목서, 박달목서, 구골나무 같은 것들이다. 가을에 꽃이 피는 것이 많지만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봄에 꽃이 피는 것도 있다. 이수광(李睟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봄과 가을에 각각 꽃을 피우는 계화를 고증하기도 하였다. 직접 나무 주변에서 향기를 맡으면 아주 향기가 그윽하고 꽃도 매우 기품이 있다. 고전 시문에 나오는 계(桂)는 대개 목서 종류를 가리킨다.

이 계(桂)라는 글자는 ‘절계(折桂)’라 하여 과거급제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진(晉)나라 때 극선(郤詵)이라는 사람이 장원급제 소감을 진무제(晉武帝)의 질문에 “계림의 가지 하나요, 곤륜산의 옥 한 덩이[桂林之一枝, 崑山之片玉.]”라고 한 말이 고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우리나라에 이 계(桂)를 실제로 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나무를 온실에 키우기도 하고 이 꽃을 따서 술을 담가 먹거나 김치에 넣은 사례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운계’를 종래 장안 근처로 추정하였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종 개원 연간에 왕유가 강남으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 이 때 소흥에 있는 황보악의 별서가 있는 오운계(五雲溪), 즉 약야계(若耶溪)를 가보고 지은 시라 한다. 목서는 주로 남방 지역에 자라니 그런 면에서는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예전의 신대철 시인의 시 「나무위의 동네」에 “멀리서 스윽스윽 톱질하는 소리 들린다.” 라는 시구가 있었는데 시골에서 자란 나는 그런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시에 보면 앞 2구에서 한정(閒靜)을 설정해 놓고 마지막에 새 소리로 그런 적막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동적인 것을 가미하여 그 적막감을 실감나게 한 것이 이 시의 묘미이기도 하다. 
예전에 큰집에 제사지내러 가면 병풍에 이 시가 적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제사용 병풍에 묘하게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을 한다.

계화의 향기 은은히 퍼지는 산골은 잘 몰라도 나름대로 남모르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골은 도처에 있다. 나도 봄날 산의 고즈넉함을 느껴본 것은 같은데, 달이 떠오르면 새가 과연 놀라는지 봄 산의 적막감은 다른 계절과 어떻게 다른지 잘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틀림없이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목서화木犀花 사진 출처 http://k.sina.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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