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두보杜甫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春夜喜雨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春夜喜雨 /두보杜甫

好雨知時節 고마운 비 시절을 아는 듯
當春乃發生 봄이 되자 때 마침 내리네
隨風潛入夜 훈풍을 따라와 가만히 밤을 기다려
潤物細無聲 보슬보슬 촉촉이 초목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들 오솔길은 온통 구름으로 컴컴하고
江船火獨明 강의 배엔 불빛만 저 홀로 반짝이네
曉看紅濕處 비 맞은 꽃을 새벽에 나가 보면
花重錦官城 금관성에 꽃이 활짝 피어 있으리

아침에 출근하는데 폭설이 내린다. 뜻밖의 날씨에 차도 놀라고 내 눈도 놀란다. 이 시에 빗대어 시를 지으면 今看降雪處, 雪重漢都城이라 할까.

이 시는 761년 두보 나이 50세 때 성도 초당에서 지은 시이다. 당시 성도 일대에 1년 전부터 심한 가뭄이 들었는데 이해 2월에 비가 내려 그 기쁨을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시 제목에 희우(喜雨)라고 한 것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이 말은 <<춘추곡량전>>에서 유래한 말로 백성들의 농사를 생각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소동파가 쓴 <희우정기>는 바로 그런 의미를 담아 지은 정자의 기문인데 우리나라 한경변에도 세종이 작명한 희우정이 있었다. 지금의 망원정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수호지>>에 등장하는 양산박 산채의 두령 송강의 호가 급시우(及時雨)인데 남이 곤경에 처했을 적에 때 맞추어 돕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 이 시의 희우(喜雨), 호우(好雨)라는 말과 다 통하는 말이며, 입춘첩에 흔히 쓰는 ‘우순풍조(雨順風調)’의 우순이 바로 이 시의 첫 구 그대로이다. 그러니 희우는 가뭄을 그 전제로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최소 5번 이상은 번역해 보고 아마도 수백 번은 읽었을 것이다. 예전에 주로 논란이 된 곳은 ‘발생(發生)’과 ‘화중(花重)’ 부분이었다. ‘발생’을 초목의 싹이 트는 것으로 보는 설이 있었고 ‘화중’의 ‘중(重)’을 ‘겹겹으로 피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발생’은 앞에 당(當)과 내(乃)가 있어 ‘비가 생겨나다.’ 라는 의미가 맞고, 화중의 ‘중’은 꽃이 활짝 피었다는 의미가 틀림없어 보인다. ‘중’ 자를 쓴 것은 가물어 제대로 피지 못한 꽃송이가 밤새 내린 비를 듬뿍 흡수하여 자기 마음대로 싱그럽게 개화한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 꽃이 나뭇가지에 잔뜩 달려 있으면 가지가 절로 휘어져 있을 것이니 그걸 중(重)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가 그친 다음날 햇빛이 나면 더욱 좋을 이러한 싱그러운 꽃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빗방울을 달고 있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들판의 곡식 싹들과 산의 초목들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결국 ‘화중’의 중(重)은 충분히 비가 올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실린 글자이고 바로 앞 두 구 ‘野徑雲俱黑’과 ‘江船火獨明’에 그런 기대를 하게 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화중’과 조응되는 앞의 ‘홍습처(紅濕處)’는 그 앞에 나온 ‘세무성(細無聲)’과 조응되므로 이 시를 짓는 밤의 상황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시어가 전후로 치밀하게 조응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특징이자 두보시의 특징이다.

여기 나오는 금관성(錦官城)은 오늘날 성도(成都)를 말한다. 성도에는 예로부터 비단이 많이 나 ‘잠총(蠶叢)’으로 불린다고 31번 한시 <송우인입촉(送友人入蜀)>에서 말한 바 있는데 이 지역의 비단을 촉금(蜀錦)이라 한다. 성도에는 옛날에 직금관(織錦官), 즉 비단 제조를 관장하는 관원들이 근무하는 관청인 금관이 있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성도의 별칭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성도는 원래 들이 넓긴 하지만 물이 질척질척 사방으로 흐르고 홍수가 잦아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그런데 진나라 때 이빙(李冰)이라는 사람이 인공 댐을 만들어 홍수를 조절하고 농업용수를 항상 적절히 공급하게 되었는데 그 댐이 지금의 도강언(都江堰)이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량이 늘 성도를 두고 ‘천부지국(天賦之國), 옥야천리(沃野千里)’, 즉 ‘하늘의 창고처럼 산물이 풍부한 지역이고 비옥한 농토가 천리에 걸쳐 있는 땅’이라 한 것은 바로 이빙과 그 아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래서 도강언 사람들은 그 댐에서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물길을 갈라지게 만든 날카로운 제방을 ‘어취(魚嘴)’라 하고 성도평원으로 들어가는 물길을 ‘보병구(寶甁口)’라고 부른다. 내가 예전에 이곳에 가보고 큰 감명을 받아 사진을 확대해서 나의 서재에 걸어두고 있다.

이런 풍부한 물산이 산출되는 큰 분지인 성도 주변에 1년 넘게 가뭄이 들었다가 드디어 만물이 약동하고 봄, 생명이 발아하는 바로 그 적기에 봄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보는 마치 봄비를 사람을 대하듯 공경하는 자세로 시를 적어 나갔고, 마지막엔 ‘화중금관성(花重錦官城)’으로 그 기쁨의 무게와 이웃과 함께 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당시배항방>>에 92위에 올라 있다.

사진 : 이날 마침 눈이 와서 설중한도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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