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화의-맹호연孟浩然 질병이 나아 용천정사를 지나며 역, 업 두 스님에게 드리노라疾愈過龍泉寺精舍呈易業二公

질병이 나아 용천정사를 지나며 역, 업 두 스님에게 드리노라疾愈過龍泉寺精舍呈易業二公/맹호연孟浩然

停午聞山鍾, 정오에 산사 종소리 들리고
起行散愁疾. 일어나 산보하니 수심 사라진다.
尋林采芝去,숲속 찾아 지초 캐러 가고
轉谷松翠密. 골을 도니 빽빽한 소나무 숲이로다.
傍見精舍開, 옆으로 보니 절집 열려 있고
長廊飯僧畢. 긴 복도에서 스님은 공양 마쳤다.
石渠流雪水, 돌 사이로 눈 녹은 눈 흘러내리고
金子耀霜橘. 서리 맞은 황금빛 과일[귤] 빛난다.
竹房思舊游, 대나무 선방에서 옛날 놀던 곳 생각하며
過憩終永日. 지나다 쉬면서 하루를 보내리라.
入洞窺石髓, 동굴에 들어가 종유석 살펴보고
傍崖采蜂蜜. 벼랑에 기대 달콤한 꿀을 따노라.
日暮辭遠公, 해 저물어 원공과 헤어지며
虎溪相送出. 호계에서 서로 전송하노라.

[해제]

이 시는 맹호연이 앓던 질병이 완쾌되어 용천사를 지나며 두 스님을 뵙고 함께 노닐다가 집에 돌아와 이 시를 써서 두 스님에게 준 것이다. 당대의 용천사는 맹호연의 집이 있던 현산(峴山) 백마천(白馬泉) 남쪽(澗南園, 지금의 觀音閣 부근)에서 멀지 않아 자주 찾았던 절집으로 판단된다.

이 시를 통해 현산에서 국화담(菊花潭)까지의 거리와 풍경을 그려볼 수 있다. 현산에는 모두 13개의 동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만왕동(蠻王洞) 밖에 없다. 이 동굴은 크지 않지만 안에는 종유석(鐘乳石), 폭포, 석순(石筍)과 불상이 있다. 예전에는 종유석을 ‘석수(石髓)’라고 불렀다.

마지막 구에서 맹호연은 동진(東晋) 동림사(東林寺) 주지 혜원(慧遠)이 호계까지 손님을 전송하는 고사를 빌어 역, 업 스님과의 헤어지기 아쉬움을 묘사했다.

양양의 현산에는 과거에 “1리마다 절이 세 개씩이나 있어 절에 가도 절을 보지 않는다.(一里有三寺, 走寺不見寺)”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불교유적이 많았다. 따라서 맹호연의 시에는 불교나 도교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오언고시 상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