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오회지[宋] 吳晦之 눈 온 후 매화를 찾다雪後尋梅

눈 온 후 매화를 찾다雪後尋梅/ [宋] 오회지吳晦之

개울 위 외나무다리
오솔길 비탈

대나무 바자울 친
초가 두세 집

홍매는 시인과
약속한 듯이

섣달 눈 처음 녹자
꽃 보여주네
略彴溪橋小徑斜, 竹籬茅舍兩三家. 紅梅似與詩人約, 臘雪初消始看花.

입춘도 지나고 설날도 지나자 부쩍 꽃소식이 잦아진다. 오늘은 꽃샘추위가 제법 매서운 기세를 뽐내지만 부풀어 오르는 매화 봉오리를 막을 수 없다. 하얀 매화가 백설처럼 깨끗한 지조를 나타낸다면 붉은 매화는 겨우내 억눌렸던 춘심(春心)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춘심은 무절제한 본능의 발산이 아니다. 은은한 향기와 우아한 자태가 어울린 품격 높은 꽃마음(花心)이다. 이해인 수녀의 꽃마음은 이렇다.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매화 앞에서」) 심지어 복효근은 “내가 추위 탓하며 이불 속에서 불알이나 주무르고 있을 적에/ 이것은 시린 별빛과 눈맞춤하며/ 어떤 빛깔로 피어나야 하는지와/ 어떤 향기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연습했을진대/ 어머, 별 한 송이가 피었네! 놀랄 일이다”(「매화 讚」)라고 읊었다. 진정 놀랍다. 별 한 송이가 피었다니… 남녘에서부터 바야흐로 별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오는 시절이다.

별꽃은 어떤 풍경에서 피는가? 오솔길이 지나는 개울 위로 대나무다리가 비스듬히 걸려 있다. 그 주위엔 대나무로 바자울을 막은 띠집이 두세 채 자리 잡았다. 섣달에 내린 백설은 아직 곳곳에 쌓여 있지만 이제 바야흐로 따스해지기 시작하는 햇살에 적설이 녹기 시작한다. 눈 덮인 매화가지 사이에서 어여쁜 홍매가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은빛 은하수 위에 피어난 빨간 별꽃이다.

이 시의 풍경에는 전형적인 동양 수묵화의 구도가 잘 담겨있다. 이런 풍경 속 매화의 아름다움은 지금 섬진강변 매화 밭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꽃 떼거리와 완전히 다르다. 전통 속 매화는 많아야 두 세 그루, 보통 한 두 그루가 궁벽한 시냇가나 한적한 고가 모퉁이에서 꽃을 피운다. 심지어 매화가 흐드러진 풍경보다는 눈 속에서 처음 필 때의 일지매(一枝梅)를 매화의 최고 품격으로 친다.

이런 미적 이미지는 마치 우리의 심층의식 속에 자리 잡은 아름다움의 원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이런 심미 의식은 대체로 당대(唐代)를 거쳐 송대(宋代)에 이르러 널리 확산·정착했다. 도교와 불교의 심미관과 이 두 종교의 세계관을 내면화한 성리학적 심미관이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사군자(四君子) 및 소상팔경(瀟湘八景) 등의 예술 아이템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오늘 이곳 첫 매화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가 충격에 빠졌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매화 향을 맡았던 그 집 앞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내 정신을 향기롭게 했던 그 매화나무가 보이지 않았다. 밑둥에서부터 베어지고 없었다. 이른 봄부터 사람들이 매화 향기를 맡고 기웃대는 꼴이 보기 싫었던 탓일까? 매화나무 때문에 마당에 응달이 지는 것을 못 견뎌했을까? 내 입장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나는 매화 꽃송이와 매화 향기가 그런 여러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품격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기에… 슬픔을 삭이며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에는 통도사 자장매를 만나러 가야겠다. 그 다음에는 남명매, 화엄매, 고불매를…(사진출처: 19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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