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소식蘇軾 감자목란화减字木蘭花(입춘立春)

입춘 (사보詞譜) : 감자목란화减字木蘭花/송宋 소식蘇軾

春牛春杖 입춘에 흙으로 만든 소와 쟁기 든 농부
無限春風來海上 무한한 봄바람이 바닷가에서 불어와
便與春工 봄 신의 공력과 함께
染得桃紅似肉紅 살결처럼 복숭아꽃을 붉게 물들이네
春幡春勝 입춘에 만든 깃발과 마름모 노리개
一陣春風吹酒醒 한 바탕 봄바람이 불어와 술이 깨니
不似天涯 이곳이 천애의 먼 곳이 아닌 듯
卷起楊花似雪花 버들개지를 눈처럼 하늘 높이 날리네

시를 그동안 소개하였는데 오늘은 송사(宋詞) 작품이 하나 나온다. 보다시피 시의 형식이 아니다. 4자 7자를 2번 반복하여 하나의 단을 이루고 이러한 단이 2개로 되어 있는 사(詞)이다. 앞에서 소개한 <양주사(涼州詞)>와 <변사(邊詞)>에 쓰인 사(詞)는 시의 제목으로 ‘~노래’라는 의미이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감자목란화(减字木蘭花)>는 문학 양식의 하나인 사(詞)이다. 사는 고대의 악곡에 붙이는 노랫말을 의미하므로 본래 작곡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가사이지만 송나라 시대에 오면 차츰 노래로 부르지는 않고 음악성과 통속성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문학 양식으로 정착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사에 취약하다. 한문을 배울 때 자연스럽게 시는 배우지만 사를 배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삼국지를 좋아하여 번역본은 대략 5번 정도 읽고 삼민서국 모종강 본으로도 2번을 읽었는데 그 서문에 있는 시가 좋아 수백 번 읽었지만 무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3번째 구절이 위로 붙어야 하나 아래로 붙어야 하나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니 이게 임강선(臨江仙)이라는 사패(賜牌)에 붙인 하나의 사인 것을 알았고 3번째 구에도 별도의 운자가 붙은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 몇 년 전에는 심주(沈周)의 그림이 좋아 그 그림에 쓴 시를 몇 백편 번역해 보았는데 어떤 작품이 이상해서 나중에 보니 역시 사였다. 시의 장단귀는 불규칙적이고 일회적이라면 사는 악곡에 사용된 것이라 보니 노래에 1절, 2절이 있듯이 같은 형식이 반복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전에 서호(西湖)를 주제로 한 문학 작품을 살피느라 《서호지》 등 관련 문헌을 보니 의외로 시 보다 사 작품을 많이 수록해 놓아 사가 명청시대에도 여전히 사랑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소식이 사용한 <감자목란화(减字木蘭花)>는 이 사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실제 의미는 곡조, 즉 사보(詞譜)의 이름이다. 사보를 사패(賜牌)나 사조(詞調)라고도 하는데 다 같은 말이다. 고려시대에 경기체가라는 것이 있는데 이 사와 아주 흡사하다. 글자의 수와 구절의 형태를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말을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또 근대기에 뽕짝이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기본 박자를 여러 가지로 변주하고 거기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면에서는 사와 유사한 면이 있다.

<감자목란화>는 <목란화>란 사패에서 글자 수를 조금 줄인 사패라는 의미이다. 마침 두어 달 전에 같은 직장의 어떤 동료 선생이 나에게 자신이 번역한 사보 관련 책을 한 권 주어 오늘 찾아보니 <목란화>란 사패가 안 보이기에 왜 그걸 <감자목란화> 사패 부분에 주석을 달지 않았느냐고 한 마디 했다.

어떻듯 사를 잘 모른다 하더라도 사보(詞譜)라는 게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늘 만만한 시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길이나 물이 굽이치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고 인생에 우여곡절이 있는 것은 숙명이다. 생선에도 가시가 있어야 발라 먹는 재미가 있고 살코기에도 비계가 붙어 있어야 씹는 맛이 있지 않겠는가.

이 사는 소식이 해남도에 유배되어 온 시기에 지어진 작품이다. 어떤 판본에는 <기묘년 담이춘사(儋耳春詞)>로 제목이 되어 있는데, 기묘년이 소동파(蘇東坡)의 나이 63세가 되는 1099년이며. 담이가 당시 해남도의 한 고을 이름이기 때문이다. 소동파의 별호 담이옹(儋耳翁)은 여기서 유래한다. 동파는 여기서 3년 뒤 유배가 풀려 상경하다가 66세로 작고하였다.

달력이 홍콩에서 출간된 것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이 사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에는 입춘일의 북송 당시의 풍속이 해남도에서도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 구의 버들개지가 눈처럼 날리는 장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春牛와 春杖은 입춘 날 흙으로 빚어 만든 소와 쟁기를 잡고 있는 사람 모형이며 春幡과 春勝은 종이나 비단으로 만든 깃발과 장식으로 만든 소품이다. 杖은 犁杖이라 하여 쟁기라는 뜻이 있고 勝은 여인의 머리 장식이라는 뜻이 있다. 즉 문간에 흙으로 빚은 소와 쟁기, 농부 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 옆에 좋은 글귀를 적은 깃발을 세우고 또 머리 장식도 만들고 한 것이다. 이는 농사를 권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풍속으로 그 기원은 <<한서>>에 관련 언급들이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3구의 便與를 便丐라고 쓴 판본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봄 신의 공력을 빌려’의 의미가 된다.

不似天涯, ‘천애와 같지 않다’는 말은 소식이 해남도에 있는 것을 반영한 말이다. 해남도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남방 지역이라 과연 천애(天涯)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입춘 풍속도 같고 버들 솜 날리는 것도 북송 개봉과 같기에 ‘내가 지금 천애 고도에 와 있는 것 맞아!’ 이런 심정으로 한 말이다. 남해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훈훈하고 개봉의 낯익은 풍속도 보면서 하늘엔 또 낭만적으로 버들개지가 날린다. 마음의 질곡이 나도 모르게 봄바람처럼 녹아내린다.

‘버드나무 꽃이 눈처럼 날린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평소 실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버드나무가 많은 곳에는 봄에 벚꽃이 눈처럼 내리듯이 버들개지가 하늘에서 정말 눈처럼 날린다. 나중에 중국에서 그런 장면을 만나면 이 시를 한 번 떠올려 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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