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왕유王維 사냥 구경觀獵

사냥 구경觀獵/왕유王維

風勁角弓鳴 거센 바람에 활시위는 우는데
將軍獵渭城 장군은 위성에서 사냥을 하네
草枯鷹眼疾 풀은 말라 매의 눈초리 매섭고
雪盡馬蹄輕 눈이 다 녹아 말발굽도 가볍네
忽過新豐市 신풍의 저자를 신속히 지나
還歸細柳營 다시 세류영으로 돌아오네
回看射雕處 독수리 쏘아 맞힌 곳 돌아보니 
千里暮雲平 천리의 저녁 구름 평화롭구나

한시에는 늘 많은 고사가 즐겨 쓰인다. 요즘 현대인들이 주로 접하는 시에는 고사가 복잡한 시를 가급적 빼기 때문에 우리말 표현이 한시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지만 사실은 고사의 의미를 얼마나 정확하고 깊이 있게 아는가 하는 것이 한시 이해의 관건일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시에 쓰인 고사를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의미를 모를 때가 많다. 시인이 그 고사를 어떤 의미로 썼는가 하는 문맥적 의미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그 사람의 평소 공부와 직결된다.

이 시에도 당장 눈에 띄는 고사가 2개 있다. 세류영(細柳營)과 석조(射雕)가 그것이다. 세류영은 한 문제(漢文帝) 때 유명한 장군 주발(周勃)의 병영을 말한다. 이름이 세류영이 된 것은 주발이 가는 버드나무가 많은 곳에 군대를 주둔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문제가 이 병영에 왔는데 군사들이 못 들어가게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나중에 군영에 들어가 보니 군기가 너무도 엄정해 문제가 그 전에 자신이 본 군대는 어린아이 장난 같았다고 한 말이 있다. 여기서는 사냥 나갔다가 온 장군의 군영이 아주 군기가 들어 있는 것을 말한다. 신풍은 좋은 술이 나는 곳인데 그 곳에 들러 막걸리 한 잔 안 하고 바로 지나왔다는 것은 바로 그 삼엄한 군기를 드러낸 표현이다.

석조(射雕)라는 말은 독수리를 쏘아 맞힌다는 뜻이다. 북제(北齊) 때 곡률광(斛律光)이라는 장군이 까마득히 높이 나는 독수리의 목을 정확히 쏘아 맞추어 독수리를 쏘아 잡는 명사수라는 별명이 생겼기 때문에 이 말을 쓴 것이다. 즉 장군이 낮에 무공을 떨치며 사냥을 한 곳을 그렇게 말한 것이다.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의 사조(射雕)가 여기서 나온 말인 듯한데 그렇다면 제 발음대로 하면 ‘석조영웅전’이 되어야 한다. 새를 쏘아 맞추는 것은 발음이 ‘석’이기 때문이다.

옛날의 사냥은 오늘날로 보면 오락이라는 측면과 전쟁 연습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아마도 사냥이 사람의 피를 끓게 하고 중독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경서에서는 사냥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글들이 많다. 그런데 실제 전쟁 연습은 또 사냥만큼 좋은 것이 없기에 옛날 장군들은 사냥을 많이 했다. 옛날 중국 천자들이 정기적으로 사냥을 하고 고구려가 매년 봄에 낙랑 들판에서 사냥을 해서 장수를 선발한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다.

이 장군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위성(渭城)으로 나간 것을 보면 장안 외곽에 있는 이곳이 사냥터 였던 모양이다. 왕유의 다른 시에 보면 이 위성이 서역으로 가는 이별 장소로 나온다. 머지않아 소개될 것이므로 미리 설명하지 않는다.

이 시에서 유념해 볼 것은 마지막 평(平)이라는 글자가 아닌가 한다. ‘저녁 구름이 평안하다’는 말에서 자신이 좀 전에 사냥한 곳을 돌아보며 평화로움이나 안녕 이런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다.

낮의 사냥에서 다치거나 아니면 너무 흥분해 감정이 거칠어진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다는 것인데 예전 장수들의 넉넉한 도략이나 담대함을 형용할 때 항용 ‘담소하듯이 적을 쓸어버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첫 두 구를 도치하여 활시위에서 윙윙 바람이 우는 한 겨울을 묘사한 것과 신속하게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평안한 여유를 지니는 장군의 모습이 잘 조응되어 있다. 疾은 ‘빠르다’의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매의 눈초리가 먹이감을 재빨리 포착할 정도로 매서운 것을 묘사한 말이고 다섯 째 구의 過는 통상 어디 ‘들르다’의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앞의 忽과 함께 쓰여 곁눈질하지 않고 빨리 지나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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