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화의-저광희儲光羲 왕유와 함께 우연히 짓노라同王十三維偶然作

왕유와 함께 우연히 짓노라同王十三維偶然作/ 저광희儲光羲

野老本貧賤, 시골 늙은이 본디 빈천한데
冒暑鋤瓜田. 더위 무릅쓰고 외밭 호미질 한다.
一畦未及終, 한 뙤기 밭도 미처 끝내지 못하고
樹下高枕眠. 나무 아래서 베개 높이 베고 잠든다.
荷蓧者誰子, 삼태기 멘 사람 누구인가?
皤皤来息肩. 머리 센 늙은이 오더니 어깨 쉼 한다.
不復問鄕墟, 다시 고향 물어보지도 않고
相見但依然. 서로 보면서도 의연하다.
腹中無一物, 뱃속에 아무 것이 없어도
高話羲皇年. 큰 소리로 복희씨 시대 얘기한다.
落日臨層隅,떨어지는 해는 층집 구석에 비치고
逍遥望晴川. 소요하며 맑은 내 바라본다.
使婦提蠶筐, 부인 시켜 누에 광주리를 들게 하고
呼兒榜漁船. 아이 불러 고기잡이배를 젓게 한다.
悠悠泛綠水, 유유히 푸른 물에 떠서
去摘浦中蓮. 물속의 연밥을 딴다.
蓮花艶且美, 연꽃은 요염하고도 아름다워
使我不能還. 날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구려.

[해제]

이 시는 저광희가 왕유와 교류하던 시기에 지은 연작시 10수 가운데 제3수다. 저광희는 종남산에서 두 번이나 은거한 바 있다. 제목에 ‘우연히 짓노라’라고 한 걸로 봐서 이 연작시는 앞뒤 연결성이 부족하여 엄격한 의미의 연작시라고 볼 수는 없다.

시인은 한여름에 뙤약볕을 무릅쓰고 외밭에 나가 김매기를 하다가 지치면 나무그늘 밑에 누워 잠든다. 그러다가 삼태기 멘 노인이 찾아오면 그와 더불어 태평성대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저녁때가 되면 아일 불러 고기잡이배를 띄워 물가에 나가 연밥을 딴다. 황혼에 물속에 핀 연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시인은 집에 돌아갈 줄도 모르고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조자(荷蓧者)’의 고사는 ≪논어(論語)·미자(微子)≫편에 나온다. 자로가 공자를 따라가다 뒤처졌는데 지팡이를 짚고 삼태기를 멘 노인을 만나자 자로가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우리 선생님을 보셨습니까? 그 노인은 “사지를 수고롭게 하지도 않고 오곡도 분간할 줄 모르면서 누구를 선생이라 하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왕유와 마찬가지로 저광희도 산수전원시파의 대표 작가다.

오언고시 상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