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국 잃어버릴 청춘에게>: 개혁개방이 길러낸 신세대, ‘바링허우80後’의 낭만과 현실

<황제의 딸>(還珠格格)을 기억하시는가? 아마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중국 드라마 중에 이만한 인기를 끌었던 경우도 찾기 힘들 것이다. 청나라 건륭(乾隆) 황제 시절을 배경으로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왁자지껄 왕자와 공주들의 소동극은 한국 시청자에게 이국적인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는 유쾌 발랄한 공주 ‘제비’(小燕子)로 열연했던 자오웨이(趙薇)가 톡톡한 역할을 했다.

<황제의 딸> 이후 중국 최초의 아이돌 배우로 유명세를 탔던 배우 자오웨이가 최근 일을 냈다. 중국 영화 교육의 산실인 베이징영화대학(北京電影學院) 연기과를 졸업했던 자오웨이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같은 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감독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작년 한 해 동안 열심히 졸업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초 <우리가 결국 잃어버릴 청춘에게>(致我們終將失去的靑春)라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영화는 중국의 청춘문학을 선도해 온 젊은 여성 작가 신이우(辛夷塢)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다. 영화의 시간 배경이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국 대학 캠퍼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 젊음을 바쳐 사랑을 갈구했던 이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회고담과 후일담으로 펼쳐진다.

대학 신입생 정웨이(鄭微)는 어렸을 적 이웃집 오빠였던 린징(林靜)을 캠퍼스에서 만난다.(남자주인공 린징은 슈퍼주니어의 멤버였던 한경 韓庚이 맡았다.) 이들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만남은 우여곡절의 오해와 해프닝 속에서 쫓고 쫓기는 낭만을 만들어간다. 그 사이 화면에선 1990년대 발매된 가수 리커친(李克勤)의 노래 ‘붉은 해’(紅日)가 불리고, 역시 그 당시 중국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영국 록 그룹 스웨이드(Suede)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1990년대 대학 캠퍼스를 불러내고 대중가요를 비롯한 문화코드로 그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버무리는 솜씨만 보면 중국판 <건축학개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약 7억 2천만 위안(한화 약 140억 원)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하면서 상반기 중국 영화시장에서 국산영화로는 2위, 수입영화 포함 3위라는 성적을 달성했다.

영화를 ‘열렬히’ 보아준 관객들은 물론 지금은 청년과 중년의 경계에 선 이들이다. 영화는 십몇 년쯤 전 대학 캠퍼스를 누렸을 이들을 강한 ‘향수’의 자극으로 스크린 앞에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때문에 영화가 단지 자오웨이라는 배우의 감독 전향에 따른 ‘이벤트’ 바람을 탔다고만 할 수는 없다.

1990년대 중국 대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1989년 ‘천안문사건’이 일어나고 중국 사회는 침체일로를 걷고 있었다. 개혁개방마저도 나아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길 2년 여, 1992년 초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다시 승부를 걸었다. 개혁개방의 최대 성과였던 경제특구 선전(深圳)을 중심으로 우창(武昌), 주하이(珠海), 상하이 등 동남부지방을 시찰하며 ‘연설’을 쏟아냈다.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였다. “발전은 굳건한 이치다”라고 했다. “사회주의를 지키지 않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죽음의 길 뿐”이라고도 했다.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의 대학은 학생을 뽑지 못한 채 ‘폐교’되다시피 했다.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1978년 다시 문을 연 대학이 정상 궤도에 오르려던 무렵 터진 베이징 ‘천안문사건’으로 캠퍼스엔 얼음장 같은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남순강화’가 아니었다면 캠퍼스도 활로를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중국의 캠퍼스는 다시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우리 못지않은 높은 교육열로 고질적 사회 문제로 자리 잡은 중국식 대학입시 ‘가오카오’(高考)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특유의 중국식 기숙사 생활은 대학생들에게 더 없는 낭만이자 현실이었다. 한편엔 사회주의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면서 집단 체조와 군사훈련 같은 ‘집체 활동’이 남아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엔 기숙사에서의 무도회와 마작 놀이, 서양식 케이크와 함께 하는 생일 파티와 젊은 사랑의 불행한 끝, 낙태의 현장도 적잖이 포착됐다.

그 시절 사회주의와 포스트 사회주의의 경계에 선 캠퍼스의 주인공들이 바로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을 가진 세대, ‘바링허우’(八零後)였다. 유독 ‘세대’를 가지고 사회를 구분하려는 관습이 자리 잡은 중국에서(예를 들면 정치 지도자들을 말할 때 4세대니 5세대니 한다거나, 영화감독들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5세대니 6세대니 하는 명명을 동원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은 곧 새로운 변화를 의미했다.

‘바링허우’는 어릴 적부터 ‘샤오황디’(小皇帝)라는 별명을 갖고 자라난 세대다. 이들은 맥도날드와 김용의 무협소설, 록큰롤, 인터넷, 해리포터와 함께 성장했다. 중국 현대사의 아픔을 직접 체험한 바 없는 이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유분방한 연애, 학력 중시에 대한 반감, 기존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기성 권위를 대표한다. 강의실 교단에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선포하는 대학교수나, 도둑으로 몰린 여학생의 사정은 아랑곳 않고 몰아붙이는 ‘보안’, 아이들 부끄럽지도 않게 불륜에 빠진 정웨이의 어머니와 린징의 아버지. 그들은 모두 ‘바링허우’가 치받고 살아가야만 했던 기성 권위들이다.

그렇게 ‘바링허우’는 새로운 활력으로 중국 사회의 ‘신세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 사회 속에 내동댕이쳐져서 불안한 정체성과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면서 세대로 평가되기도 한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이들을 능가하는 새로운 세대 ‘지우링허우’(九零後)가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시대를 선도했던 ‘바링허우’는 ‘치링허우’(七零後)와 ‘지우링허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만 것일까.

자오웨이는…

자오웨이赵薇, 출처 Baidu

문화대혁명이 끝나던 해인 1976년에 태어난 자오웨이는 이른바 ‘범(凡) 바링허우’에 속하는 세대다. 건축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소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 이미 <화혼>(畵魂)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여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배우로 훈련된 뒤 <황제의 딸>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 뒤에도 <적벽>, <화피>, <화목란> 등 여러 화제의 영화에 출연했다. 감독 데뷔작인 <우리가 결국 잃어버릴 청춘에게>는 이렇게 활동하면서 구축한 연예계의 ‘관시’(關係)를 십분 활용하여 연출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