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보쥔沈伯俊 선생과의 대담


조관희(趙寬熙 상명대 중문과 교수) 진행
송지현(宋之賢 北京大 東方學部 博士生: 현재 안양대 교수) 진행
김효민(金曉民 北京大 中文系 博士生: 현재 고려대 교수) 정리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선보쥔 선생과 송지현 교수(왼쪽), 사진 ⓒ 조관희, 2001

송지현 : 첫 번째로 최근 중국의 『삼국지연의』 연구 경향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한국의 『삼국지연의』 연구에 대한 선생님의 인상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국지연의』 연구에 있어서 한중 양국이 어떻게 교류, 협력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보쥔 : 중국은 신시기에 들어선 이후 『삼국지연의』 연구는 문화대혁명 이전에 비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연구 활동 방면에 있어서도 작년까지 이미 13차례의 국내 학술대회, 두 차례의 국제학술대회, 두 번의 특별 주제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평균 거의 매년 1차례의 학술회의를 열어오고 있습니다. 삼국연의 학회는 지금껏 비교적 좋은 학풍과 회풍(會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국지연의』 연구는 전체 중국고대소설 연구 영역 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성과도 두드러진 한 분야가 되었습니다.

선보쥔 선생, 사진 ⓒ 조관희, 2001

1990년이래 『삼국지연의』 연구는 이전의 기초적인 연구의 바탕 위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발전의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새로운 연구 자료와 정보에 대한 장악을 전제로 『삼국지연의』의 기본적인 문제들, 예를 들어 뤄관중의 관적, 판본, 성서(成書) 연대 등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새로이 접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현상은 『삼국지연의』의 판본 정리에 있어서 큰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1992년부터 6종의 판본을 정리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심도 있는 전문 연구의 기초 위에서 대문화(大文化)의 시각으로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저희는 문화연구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포괄됩니다. 하나는 중화문화라는 큰 배경 하에서 『삼국지연의』의 사상적 의미와 예술적 특성을 더욱 넓은 시각에서 접근해 들어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삼국지연의』를 중화민족 고대 지혜의 결정이자 인생의 계시록이라고 보아 그것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귀감과 계발을 줄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연구 수준을 보다 높여 21세기의 『삼국지연의』 연구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세기의 삼국지연의 연구(面向新世紀的三國志演義硏究)」라는 글을 써서 다음과 같은 5가지 과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즉 연구의 심화는 반드시 판본 연구를 기초로 삼아야 한다. 연구의 사고와 방법에 있어서 창신성이 있어야 한다. 대문화의 거시적 시각으로 『삼국지연의』를 연구해야 한다. 『삼국지연의』에 대한 디지탈화와 판본의 데이타베이스화를 추진해야 한다. 『삼국지연의』의 해외 학술교류를 강화해야 한다 등이 그것입니다. 이상이 첫 번째 문제에 대한 저의 기본적인 견해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말하자면, 저는 『삼국지연의』가 한국에서 가장 독자가 많고 영향이 큰 중국고전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삼국지연의』 연구자와는 아직 접촉이 많지는 못했습니다. 1996년 이후에야 한국의 몇몇 교수와 학생들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 학생은 제가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매우 열심이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정원기 선생은 특히 열심히 하는 분인데 그분은 불원천리하고 사천에까지 와서 아주 열심히 연구하여 『삼국지연의』에 관한 우수한 석사학위논문을 써서 한국에서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김민호, 김효민, 박계화 등을 알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매우 열심히 노력하며 중국문화와 중국인에 대해 아주 깊은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저 본인뿐만 아니라 중국학자들이 기본적으로 한국 학생들에 대해 비교적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제가 매우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제가 21세기의 『삼국지연의』는 대외 학술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었는데, 『삼국지연의』 연구의 해외 교류에 있어서의 중점은 당연히 한국과 일본입니다. 최근 저는 한국 학자들 중 조관희, 최환, 최용철, 박재연, 이등연 교수 등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교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보쥔 선생, 사진 ⓒ 조관희, 2001

우선 가장 용이한 것은 상호간에 학술 정보와 성과를 교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에 있어 이 문제는 비교적 쉽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조관희 교수, 정원기 선생 등과 서로 책을 보내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고, 『중국소설연구회보』에 이메일을 통해 몇 차례 글을 보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교류는 매우 편리합니다.

다음으로 각종 학술회의를 개최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매번 학술대회를 개최할 때마다 많은 한국 학자들에게 통지를 해 왔는데, 이런 식으로 쌍방간의 교류 통로를 개척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직접 만나 교류하는 것은 수십 번의 서신 왕래보다 훨씬 더 소득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국의 학술회의에 한국 학자들이 참여하여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런 학술회의를 열어 중국학자들이 한국에 가서 직접 교류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상대방 나라에 가서 학술토론을 하거나 강연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한국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한국에 가지만 대부분 대학에서의 교학 방면의 교류 위주이지 전문적인 학술 교류 위주는 아닙니다. 따라서 만약 연구를 심화시키려면 이러한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각종 형식의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 간에 공동작업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저의 저서 두 권―『삼국지 대사전(三國志大事典)』(범우사), 『삼국 만담(三國漫談)』(책마을)―이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연구 저작이 있으니 우리 쪽에서 그것을 번역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또 개인과 개인, 혹은 단체간의 공동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최근 『삼국연의 연구논저 색인』을 편찬 중인데, 나가카와 유(中川諭) 선생과 우에다 노조무(上田望) 선생 역시 『색인』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중국 고대소설 연구논저의 총 색인을 만들었다고 조관희 교수에게 들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이 세 가지를 통합하여 한중일 3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더욱 큰 규모의 색인을 만들어 정식으로 출판하고 인터넷에 올릴 수가 있습니다. 이런 색인 형식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쉬운 편에 속합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공동 작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고대소설 전체를 데이타베이스화 한다든가 판본을 정리한다든가, 또 공동 저술 등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선례가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삼국지연의 연구사』를 쓰려고 하고 있는데, 한국에 있어서의 연구사는 한국 학자가 직접 쓰는 것이 제가 쓰는 것 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중 양국은 고래로 밀접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고 또 모두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경험도 있으며, 최근 수교 이후에도 여전히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화적 심리적인 공통적 기초가 있기 때문에 정보화 시대에 들어선 오늘날 제가 보기에는 『삼국지연의』 연구뿐만 아니라 전체 중국 고대소설 연구, 나아가 더 큰 범위의 연구 속에서 양국이 매우 좋은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엮은이 주: 이 글은 원래 『중국소설연구회보』 제36집(1998년 11월)에 실린 것을 엮은이가 수정 보완했다.]

[참고] 선보쥔(沈伯俊, 1946~2018 ) 교수 소전(小傳)

삼국연의(三國演義)연구가. 필명으로는 멍옌(孟彦)이 있고 원적은 안후이(安徽) 루장(盧江)이고 중칭(重慶)에서 태어났다. 1970년에 쓰촨대학(四川大學) 외국어문학부(外文系)를 졸업하였고 쓰촨성사회과학원(四川省社會科學院) 철학과 문화연구소(哲學與文化硏究所) 소장 · 연구원, 중국『삼국연의』학회 비서장, 중국속문학학회(中國俗文學學會) 이사, 『중화문화논단(中華文化論壇)』 부주편, 쓰촨(四川)삼국문화연구소 소장 등직을 역임하였다. 그는 일찍이 선진양한문학(先秦兩漢文學)을 연구하였으나 1982년부터는 고대소설을 연구하였다. 2018년 심혈관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하였다.

주요 저작으로는 『西游記』(縮寫本, 四川少年兒童出版社, 1986), 『中國古典小說新論集』(段啓明·陳周昌과 공저, 西南師範大學出版社, 1987), 『三國演義辭典』(譚良嘯와 공편, 巴蜀書社, 1989; 日本潮出版社, 1996년 일본어판), 『校理本三國演義』(江蘇古籍出版社, 1992), 『三國演義』(毛本 정리, 中州古籍出版社, 1992), 『三國志通俗演義』(嘉靖本 정리, 花山文藝出版社, 1993), 『李卓吾先生批評三國志』(정리, 巴蜀書社, 1993), 『水滸硏究論文集』(주편, 中華書局, 1994), 『三國漫談』(巴蜀書社, 1995), 『三國演義』(評點本, 山西古籍出版社, 1995), 『水滸傳辭典』(주편, 巴蜀書社, 근간), 『「三國演義」通論』(근간)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從屈原到司馬相如」(『南充師範學院學報』 1981년 제4기), 「司馬相如簡論」(『西南師院學報』 1982년 제2기), 「司馬相如的代表作是『天子游獵賦』」(『四川師院學報』 1982년 제2기), 「宮怨體的濫觴: 『長門賦』」(『成都大學學報』 1982년 제1기), 「略論“爲曹操翻案”」(『社會科學硏究』 1982년 제5기), 「司馬遷爲何被刑?-與來新夏同志商榷」(『陝西師大學報』 1982년 제4기), 「『離騷』當作於楚懷王中期」(『貴州社會科學』 1983년 제2기), 「論『鏡花緣』對科擧制度的批判」(『西南師院學報』 1985년 제1기), 「司馬相如與司馬遷」(『天府新論』 1985년 제4기), 「論魏延」(『靑海社會科學』 1985년 제5기), 「向往國家統一, 歌頌“忠義”英雄-論『三國演義』的主題」(『寧夏社會科學』 1986년 제1기), 「論趙雲」(『三國演義學刊』 제2집), 「『儒林外史』與『鏡花緣』」(『社會科學硏究』 1987년 제1기), 「關於羅貫中的籍貫問題」(『海南大學學報』 1987년 제2기), 「近十年古代小說硏究的回顧與展望」(『社會科學硏究』 1988년 제6기), 「再談『三國演義』的地理錯誤」(『海南大學學報』 1990년 제4기), 「重新校理『三國演義』的幾個問題」(『社會科學硏究』 1990년 제6기), 「論毛本『三國演義』」(『海南大學學報』 1991년 제3기), 「『李卓吾先生批評三國志』整理本前言」(『明淸小說硏究』 1993년 증간), 「『三國』電視劇面對的五大矛盾」(『電視硏究』 1995년 제4기), 「再談重新校理『三國演義』的幾個問題」(日本 『中國古典小說硏究·제2호』 1996년 7월), 「八十年代以來『三國』硏究的回顧與展望」(『稗海新航-第三屆大連明淸小說國際會議論文集』 春風文藝出版社, 1996), 「明淸歷史演義小說比較硏究」(『明淸小說比較硏究』 四川大學出版社, 1996) 등이 있다

沈伯俊 선생을 추도하며 한 후학이 본 沈伯俊 선생의 三國志演義 저작과 학문적 삶

민경욱 (경기대 중어중문학과)

1.

필자는 학회 및 강연회에서 沈伯俊 선생을 두서너 번 뵌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원고 투고 관련해 선생께 전화 드린 적이 있었는데, 갑작스런 문의에도 마다치 않고 진지하게 해결 방안을 말씀해주시던 선생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중국에서 직접 배웠던 은사님들도 이제 많은 분들이 타계하셨다. 四川省社會科學院에 계시던 선생께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유학을 시작한 이래로 필자는 줄곧 선생의 저작을 연구와 교육에서의 첫 번째 참고서로 삼아왔기 때문에 선생이 필자에게 미친 영향력은 復旦에서의 은사님들 못지않다. 늘 잔잔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선생의 육성이 여전히 생생한데, 이제 다시는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한다. 선생의 학식과 인품을 논하기에는 필자의 학문적 역량 및 선생과의 개인적 인연 모두 많이 부족하나, 그래도 국내에 많지 않은 삼국지연의 분야의 후학 가운데 하나인 만큼 선생의 저작이 지니는 가치와 학문적 삶에 대한 부족한 글로나마 선생의 學德을 기리고자 한다.

2.

필자의 주 연구 분야인 삼국지연의 초기 텍스트 교감에서 필자가 원문 텍스트와 늘 함께 책상에 놓고 참고하는 책은 선생의 校注本《三國志通俗演義》(嘉靖本; 石家莊: 華山文藝出版社, 1993)(이 저작의 개정판 서지사항은 《중국소설연구회보》 제99호 82쪽을 참조.)이다. 이 책은 선생의 4종 삼국지연의 판본 校理本(校勘整理本) 가운데 필자가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저작으로, 삼국지연의 원문 교감을 하는 연구자에게는 실로 필수불가결한 저작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강조하는 校理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삼국지연의 실제 원문에 무수히 많이 포함된, 작가와 필사자에 의한 ‘기술적 착오(技術性錯誤)’를 관련 역사서 기록 및 한문 문장 규범에 의거해 일일이 그 오류를 바로잡은 판본이다. 즉, 보통의 校注本이 원문의 標點 작업 및 각 판본간의 異文을 각주로 표시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선생의 校理本은 삼국지연의 작가와 필사자가 내용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조금의 실수도 전혀 범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만한 완벽한 원문을 재구성해낸다. 따라서 이 校理本의 원문은 원작자 羅貫中이 완벽하게 작성했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사라진 원본일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 삼국지연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속의’ 무오류 원문을 선생이 재구성한 것일 수도 있다.

필자는 그간 선생의 이 嘉靖本 校理本을 어떻게 활용해왔는가? 羅貫中의 원본이 ‘기술적 착오’와 같은 단순 오류가 거의 없는 가장 최초이자 동시에 가장 완벽한 원문을 담고 있었다는 관점에 필자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삼국지연의 초기 판본은 모두 수많은 원문 오류를 담고 있으므로, 초기 판본의 각 텍스트와 선생의 校理本를 비교해 보기만하면 해당 판본 텍스트의 수준과 특징을 매우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선생의 이 嘉靖本 校理本은 해당 연구자가 삼국지연의 초기 텍스트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삼국지연의 초기 텍스트 연구의 시작이자 (많은 경우)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삼국지연의 연구 분야에서의 선생의 학문적 권위는 우선 선생이 主編한 《三國演義大辭典》(北京: 中華書局, 2007)에서 잘 드러난다.

필자의 경우, 이 저작을 주로 교학 방면의 참고서로 많이 활용하고, 연구 방면에서는 좀 더 사용하기 편리한 《三國演義三國志對照本》(許盤清 周文業 整理, 南京: 江蘇古籍出版社, 2002)과 《三國演義補證本》(盛巽昌 補證, 上海: 上海人民出版社, 2007)을 더 먼저 참고하는 편이다. 하지만 결국은 서술 내용의 깊이와 너비에서 원숙함이 돋보이는 선생의 저작을 최종적으로 다시 참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원서 730-884쪽의 研究情況은 중국 대륙에서의 삼국지연의 관련 주요 연구 주제 및 관련 저작과 논문의 제요, 관련 학술대회 및 학회와 학술지 소개를 제공하고 있고, 원서 898-996쪽의 三國演義研究論著索引은 관련 논고를 주제별로 정리한 것이어서, 이 자료만으로도 중국 대륙의 삼국지연의 연구사와 중요 논고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저작은 국내에 이미 번역본이 있기 때문에 교학 방면의 활용법에 대해서는 번역본을 참고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4.

필자는 그간 선생의 저작을 연구 작업의 필수 참고서로 활용해왔지만, 선생의 연구사 및 연구과제 제시 관련 저작은 실은 제대로 研讀한 바가 없었다. 이번에 느낀 바가 있어, 유학 시절에 일독 했던 <中国和日本:《三国演义》研究的回顾与展望>(金文京 선생과의 대담; 2006년)을 다시 정독하면서, 아울러 《중국소설연구회보》 제98호와 제99호에 실린 선생의 최근 글과 (조관희 선생께서 보내주신) <悼念沈伯俊先生资料汇编>도 일별하였다.

《중국소설연구회보》에 수록된 두 편 이외의 다른 두 편의 글은 웹 검색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이들 자료를 읽어 본 후 느꼈던 것은 지난 삼십 여 년 간 중국 대륙에서의 삼국지연의 연구를 선생이 이끌어 왔다는 학계의 평가가 허언이 아니었음을 실감한 것이다. 그간 중국 대륙의 삼국지연의 학회 및 관련 학술 행사에서 선생이 기조 강연자와 총평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다수였고, 선생의 이러한 ‘지도적 역할’에 대한 본인의 기록과 학계의 증언이 위 자료 및 선생의 《三國演義新探》에 무수히 많이 나와 있다.

이러한 선생의 삼국지연의 연구사 및 연구과제 제시 논고 《중국소설연구회보》 제99호 수록 글 제3절에 그 목록이 나와 있다. 가운데 필자가 가장 중요하면서 의미 있다고 본 것은 바로 위 2006년 金文京 선생과의 대담이다. 중국 내 삼국지연의 관련 학계와 연구를 ‘홀로 이끌어 왔다’는 인상이 강한 다른 논고에 비해, 역시 ‘일본에서의 삼국지연의 연구를 이끌어 왔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金文京 선생과의 2006년 대담은 양국의 삼국지연의 연구 현황과 향후 과제에 대해 십여 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그 혜안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논의로 가득하다.

이 대담에서 선생이 제시한 바의 문자적 내용은 이듬해에 출간된 《三國演義大辭典》에도 거의 다 반영되어 있지만, 최근 십여 년 간의 삼국지연의 연구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흐름(周文業 선생에 의해 주도된 삼국지연의 초기 텍스트의 전산화 작업, 일본 三國志學會 학회 홈페이지: http://sangokushi.gakkaisv.org 의 성립과 발전)을 미리 진단한 두 석학의 육체적·학문적 전성기의 육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정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어쩌면 선생의 노고와 헌신, 그리고 학문적 수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국외 知音과의 대화였기에 이렇게 독창적이고도 훌륭한 대담이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5.

《중국소설연구회보》 제98호 수록 글 후반부와 <悼念沈伯俊先生资料汇编>를 읽고는 선생의 학문적 삶의 자세와 인간적 면모를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전후한 선생의 청소년기에 대한 기록에서는 역경 속에서 선생이 학문에 뜻을 세우고 몰두하게 된 계기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 개혁개방 시기 이후 선생의 실제 삶에 대한 증언에서는 선생의 화려한 학문적 업적과 활동 뒤의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노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역시 비슷한 시기를 비슷한 방식으로 헤쳐 나가셨던 필자의 復旦에서의 은사님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하였다.

이제 필자도 이후 학문적·인간적 삶을 마감했을 때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시기가 되었다. 당신의 실제 삶의 고뇌를 학문으로 승화시킨 하나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신 선생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면서, 후학들이 짊어질 학문적 짐을 크게 덜어주면서 그 방향과 자세에 대해서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신 선생의 學德을 앞으로도 길이 기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