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축구>: 삶의 희망, 축구를 되찾은 사람들의 경쾌한 드라마

누가 뭐래도 세계 최강대국으로 거듭난 중국. 그런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무얼까? ‘두렵다’는 뜻의 한자 ‘공’(恐)은 종종 다른 글자와 붙어 ‘공포증’을 설명하는 중국어 낱말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고소공포증을 ‘공고증’(恐高症)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 중에 ‘공한증’(恐韓症)이란 단어가 있다. 그러니까 한국공포증이다. 한국이라면 맥을 못추는 중국 축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실제로 중국 축구는 1978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에게 1:0으로 지고 난 뒤, 2010년 도쿄 동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0:3으로 완승을 거둘 때까지 내리 32년 동안 약 30차례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우리를 이겨본 적이 없다. 특히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에서는 초반 9분만에 연속 세 골을 허용하면서 3:1로 완패를 당한 뒤 ‘공한증’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됐다.

중국 축구는 왜 그토록 힘을 못쓰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24년에 창설됐고, 1931년에 일찌감치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했다. 그러나 1958년, 피파가 대만에게 회원 자격을 주자 탈퇴를 선언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9년에야 재가입했다. 그 동안 중국은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첫 본선 진출은 2002년이었다. 게다가 사회주의 중국 이후 문화대혁명 시절에는 피아노가 서양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며 때려부술 정도였으니 축구같은 스포츠는 발붙일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중국 축구는 달라지고 있다. 국가적 지원은 물론 대중적 호응도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1994년 프로축구가 창설된 이래, 현재 15개 구단이 활약 중이고, 투자 규모는 연간 30억 위안(RMB)를 상회하며, 경기당 최고 관객 수가 6만 5천명을 넘어서기도 한다. 이런 열기에 더해 축구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존심도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단적인 예를 보자. 삼국지를 영화화한 <적벽대전>에는 병사들이 오늘날과 흡사한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세상의 모든 기원은 중국”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강한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축구’와 비슷한 오락거리로 ‘축국’(蹴鞠)이 전해오는 게 거짓은 아니다. 역사서 󰡔사기󰡕에 이미 기록이 등장했고, 󰡔한서󰡕에는 공의 모양까지 자세히 묘사돼 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술 더 떠 전설의 황제(黃帝) 시절부터 ‘축국’을 즐겨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에 관한 상상력을 가장 잘 펼친 영화는 역시 주성치의 <소림축구>다.

20년 전, ‘황금의 오른발’이라 불릴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던 선수 명봉(오맹달 분)은 같은 팀 동료의 계략에 속아 중요한 경기에서 자살골을 넣고 만다. 그 덕에 이름이 추락한 것은 물론 오른발마저 잘리고 만다. 실의에 빠진 채 살아가는 명봉 앞에 나타난 싱싱(주성치 분). 싱싱은 소림사에서 무술을 익혔으나 사부가 세상을 떠난 뒤 백수 생활에 푹 빠져 그저 만두가게 아가씨 아매(조미 분)만을 쫓아다닌다. 명봉은 우연히 괴력을 지닌 싱싱의 다리를 보고 축구단을 만들어 전국대회에 나가자고 제안한다. 싱싱은 소림사의 옛 동료들을 찾아 팀을 결성하려고 한다. 하지만 동료들은 이미 무술에 뜻을 접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겨우 목숨을 연명하는 중이다. 상금은 이들에게 훌륭한 회유책이 됐고 마침내 소림축구단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첫 경기에서 너도나도 나가떨어질 즈음 싱싱은 순식간에 축구공 안에 자신의 무공을쏟아부어 위력을 발휘한다. 소림축구단은 승승장구 끝에 결국 결선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결선팀 상대인 ‘마귀팀’은 금지약물마저 복용한 채 이름 그대로 악마와도 같은 경기를 펼친다. 소림팀 선수들은 줄줄이 중상을 입어 실려나가고 결국 선수 미달로 판정패를 당할 처지에 놓인다. 그 때 머리를 삭발한 아매가 등장하고 싱싱과 합세하여 유감없는 발차기로 전세를 역전시킨다. 소림축구단은 결국 우승을 거머쥐고 마귀팀 선수들은 평생 출장 정지 처분과 감옥행을 선고받는다.

영화는 사실 과장된 액션과 생각지도 못할 기발한 상상력의 화면들로 채워진다. 앞뒤를 짜맞출 인과 관계는 포기한지 오래다. 주성치의 상상력은 그래서 아무런 논리가 없는 놀이라는 뜻의 ‘모레이타우’(無厘頭) 현상까지 몰고 왔다. 사실 축구가 그다지 중요한 대중적 오락이라 할 수는 없는 홍콩이라는 작은 도시에, 그것도 자신의 식민 종주국 영국을 상징하는 스포츠와 중국을 상징하는 전통 스포츠라 할 수 있는 소림사의 무공을 결합했다는 것 자체가 기발한 벌써 상상력이다.

중요한 것은 사부가 죽고 나서 의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축구가 다시 삶의 희망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두 세기 전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사부)과 홍콩을 식민지화한 영국(축구)의 역사적 역할을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희망으로서 축구를 되찾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힘차고 경쾌한 드라마는 경기장 안의 공정한 판정으로 빛을 발한다. 지치고 힘든 일이 거듭되는 생활 속에서 축구는 올해도 우리를 달래줄 드라마가 되어 줄수 있을까.

주성치는…

저우싱츠周星驰, 출처 weibo.com

홍콩을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이자 영화감독, 제작자. 18살 때 이미 배우로 데뷔한 뒤 <구품지마관>, <당백호점추향>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TV 예능프로그램 진행과 누아르 영화 등을 오가며 활약했다.

<서유기월광보합>같은 공들인 코미디가 실패하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1996년 중국 요리의 화려함을 유감없이 뽐낸 <식신>이 성공을 거두고 베니스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출품되면서 코미디를 통해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희극지왕>(1999), <소림축구>(2001), <쿵푸허슬>(2004), <장강7호>(2008) 등을 통해 특유의 막무가내식 웃음 코드가 인정받으면서 매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최근 들어 영화 소식이 뜸했으나 올해 여름 <쿵푸허슬> 10주년을 맞이하여 <쿵푸허슬3D> 디렉터스 컷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