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태감三寶太監 서양기西洋記 통속연의通俗演義 제6회

제6회 벽봉회에서 중생들은 증과(證果)를 이루고
무이산에서 부처님은 마귀를 항복시키다

碧峰會衆生證果 武夷山佛祖降魔

瀼瀼秋露鶴聲長 수북한 가을 이슬에 학 울음 길게 퍼지는데
靈隱仙壇夜久凉 영은산 신선의 거처엔 쌀쌀한 긴 밤 이어지네.
明月照開三島路 밝은 달은 삼신산(三神山)으로 가는 길 비추고
冷風吹落九天香 쌀쌀한 바람에 하늘의 향기 날려 떨어지네.
靑山綠水年年好 청산녹수는 해마다 아름답지만
白髮紅塵日日忙 속세의 늙은이는 날마다 바쁘구나.
休問人間蝸兩角 인간 세상의 하찮은 다툼이야 묻지 마오.
無何認取白雲鄕 오래지 않아 흰 구름 속 낙원을 찾으리니!

그러니까 비환은 그 칠언시를 외우고 나자 얼른 벽봉장로에게 보고하러 돌아왔다.

“운곡이 있더냐?”

“벌써 안탕산을 떠났습니다.”

“어디로 갔다 하더냐?”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동굴 문 위에 알쏭달쏭한 고대 문자 같은 글만 몇 줄 남겨놓았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더냐?”

비환이 그 칠언시를 또박또박 암송하자, 벽봉장로가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시는 걸 보니 알아차리신 모양인데, 저는 아직 무슨 얘기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 시는 무이산(武夷山)을 노래한 것이니, 십중팔구 거기로 갔을 게다.”

“그러면 우리 둘이 무이산에 한 번 다녀올까요?”

“그러면 행각승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옛날 어떤 이는 석장(錫杖)을 타고 날아서 남쪽 나라로 갔고, 술잔을 타고 북쪽 큰 바다를 건넜다고 하던데,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비환의 말이 모두 사실인지라 벽봉장로도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너도 남쪽 나라와 북쪽 큰 바다가 보고 싶은 게냐?”

“남쪽 나라나 북쪽 큰 바다는 물론이고 이 남선부주에 있는 다섯 개 명산인 오악(五嶽)과 네 개의 큰 강물인 사독(四瀆)도 본 적이 없다고요!”

“오악을 구경하고 싶다면야 어려울 것도 없지.”

“사부님께서 안내해주실 건가요?”

“서둘지 마라!”

“왜요?”

“너는 오늘 제자를 찾아다니느라 힘들었을 테고, 나는 너를 기다리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일단 이 보석산 위에 잠시 앉아서 쉬자꾸나.”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벽봉장로는 가부좌를 틀고 합장을 한 채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니 비환도 어쩔 수 없이 따라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말로 덕은 평등해지고 마음은 무생(無生)의 경지에 합쳐지는 격이었다. 비환이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자 벽봉장로는 나직하게 몇 마디 오묘한 법문(法門)을 읊조리더니 가볍게 손을 뻗어 신통력을 펼쳤다. 잠시 후 비환이 재채기를 하며 눈을 뜨더니 다급히 소리쳤다.

“사부님, 사부님! 저한테 훌륭한 경험을 시켜주셨군요!.”

벽봉장로는 모르는 체하며 나직이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저는 벌써 오악을 다 돌아보았습니다.”

“감히 거짓말을 하는 게냐?”

“분명히 보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거짓말이라니요!”

“그렇다면 내가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네.”

“동악(東嶽) 태산(泰山)에 가니 어떤 신이 있더냐?”

“제천인성대제(齊天仁聖大帝) 금홍씨(金虹氏)가 있었습니다.”

“그 신은 무슨 일을 관장하더냐?”

“사람의 일을 관장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는지, 벼슬살이는 어떤지를 관장하는데, 십팔 층 지옥에서 문서를 처리하고, 일흔다섯 개 분사(分司)에서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산의 모양은 어떠하더냐?”

“이 산은 이러했습니다.”

俯首無齊魯 내려다보면 제(齊)ㆍ로(魯) 땅이 보이지 않고
東瞻海似杯 동쪽을 바라보니 바다가 잔에 든 술처럼 찰랑거리네.
斗然一峰上 가파르게 우뚝 솟은 봉우리에 오르면
不信萬山開 믿을 수 없게도 모든 산들이 눈앞에 열린다네.
日抱扶桑躍 태양은 부상(扶桑)을 안고 떠오르고
天橫碣石來 하늘은 갈석(碣石)을 가로지르며 펼쳐졌네.
君看松老後 진시황(秦始皇)이 심은 소나무 시든 뒤에도
仍有漢王臺 한무제(漢武帝)가 다녀간 자리 남아 있다네.

“서악(西嶽) 화산(華山)에서는 어떤 신을 보았느냐?”

“금천순성대제(金天順聖大帝)를 보았는데 성(姓)이 선(善)씨이고 이름은 유( )라고 했습니다.”

“그 신은 무슨 일을 관장하더냐?”

“인간 세상의 다섯 가지 귀중한 금속인 금과 은, 구리, 철, 주석을 관장했습니다. 이것을 캐서 주조하고 진흙을 개서 틀을 만드는 일과 더불어 깃털 달린 난새와 봉황을 비롯한 날짐승들을 관장했습니다.”

“산의 모양은 어떠하더냐?”

“이 산은 이러했습니다.”

西入秦關口 서쪽으로는 진(秦)나라 때의 관문으로 들어가고
南瞻驛路連 남쪽을 바라보니 큰길이 이어져 있네.
彩雲生闕下 궁궐 아래 오색구름 피어나고
松樹到祠邊 소나무 숲은 사당 옆까지 이르렀네.
作鎭當官道 진영을 세워 큰길을 맡게 하니
雄都俯大川 웅장한 성에서 큰 강을 내려다보네.
蓮峰徑上處 연화봉(蓮花峰) 오르는 길 끝에는
彷佛有神仙 신선이라도 살 고 있는 듯하네.

“남악(南嶽) 형산(衡山)에서는 어떤 신을 보았느냐?”

“사천소성대제(司天昭聖大帝)를 보았는데, 성은 숭(崇)씨이고 이름은 이(里)라고 했습니다.”

“그 신은 무슨 일을 관장하더냐?”

“인간 세상의 성신(星辰)의 분야(分野)에 해당하는 구주(九州)와 섬, 사방을 관장하면서 아울러 세우와 자라, 용을 비롯해서 비늘과 껍질이 달린 물고기들을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산의 모양은 어떠하더냐?”

“이 산은 이러했습니다.”

曲磴行來盡 구불구불 돌 비탈 다 오르니
松明轉寂寥 환한 소나무 숲 점점 적막해지네.
不知茅屋近 근처에 초가집 있는지는 모르지만
却望石梁遙 멀리 돌다리가 보이네.
葉喞疑聞雨 나뭇잎 사각거리니 빗소리 들리는 듯하고
渠寒未上潮 차가운 도랑엔 아직 물이 차지 않았네.
何如廻雁嶺 기러기 돌아가는 고개에서
誰個共相招 누구라도 초대하면 어떨까?

“북악(北嶽) 항산(恒山)에서는 어떤 신을 보았느냐?”

“안천현성대제(安天玄聖大帝)를 보았사온데, 성은 신(晨)씨이고 이름은 악(鰐)이었습니다.”

“그 신은 무슨 일을 관장하더냐?”

“인간 세계의 강과 바다, 호수, 계곡, 도랑들을 관장하면서 아울러 호랑이나 표범, 물소, 코끼리, 뱀, 곤충 등을 관장했습니다.”

“산의 모양은 어떠하더냐?”

“이 산은 이러했습니다.”

元氣流行鎭朔方 원기(元氣)가 흘러 북방을 진압하니
金枝玉樹爛祥光 아름다운 나무에 상서로운 빛 찬란하네.
包燕控趙奇形狀 연(燕) 땅을 감싸고 조(趙) 땅을 통제하니 형상도 기이하고
壓地擎天秀色蒼 땅을 누르고 하늘을 드니 빼어난 모습 창연하구나.
張果巖前仙迹著 장과암(張果巖) 앞에는 신선의 흔적 드러나 있고
長桑洞裏帝符藏 장상동(長桑洞) 안에는 신의 부적이 숨겨져 있지.
夜深幾度神仙至 깊은 밤 신선들이 몇 차례나 다녀갔을까
月下珊珊響佩搪 달빛 아래 사락사락 패옥(佩玉) 부딪치는 소리 들리네.

“중악(中嶽) 숭산(嵩山)에서는 어떤 신을 보았느냐?”

“중천숭성대제(中天崇聖大帝)를 보았사온데, 성은 운(惲)씨이고 이름은 선(善)이었습니다.”

“그 신은 무슨 일을 관장하더냐?”

“인간세계의 땅과 물, 불, 연못과 구릉, 계곡을 관장하면서 아울러 산림과 수목, 기화이초들을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산의 모양은 어떠하더냐?”

“이 산은 이러했습니다.”

峻極於天一柱靑 하늘에 닿을 듯 치솟은 푸른 기둥
誕生申甫秀鐘英 신보(申甫)를 태어나게 한 아름다운 곳.
石存搗臼今無杵 돌절구는 남아 있지만 이제 공이는 없는데
地鑿中天舊有名 땅을 뚫고 하늘에 솟아 예로부터 유명했지.
萬壑風生聞虎嘯 온 골짝에 바람 일어 호랑이 포효 들리고
五更日出聽鷄鳴 이른 새벽 해가 뜨면 닭 울음소리 들리지.
當年武帝登臨處 지난날 한 무제가 올랐던 곳
贏得三呼萬歲聲 만세삼창의 소리 아직도 남아 있네.

벽봉장로가 말했다.

“이게 바로 남선부주의 대표적인 다섯 개의 산으로서 ‘오악’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그리고 네 개의 큰 강물이 있는데 ‘사독’이라고 하지. 아예 그것까지 구경하고 오는 게 어떠냐?”

“지금은 됐습니다.”

“그럼 나하고 함께 법회에 다녀오자꾸나.”

“사부님, 무이산으로 가시지요.”

“법회는 끝내고 가야 할 게 아니냐?”

“그럼, 거기로 가시지요.”

벽봉장로는 이 제자와 구환석장을 얻어서 무척 기쁜 마음으로 법회 자리로 돌아갔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앉아 강론하고 귀를 기울이니 바람에 실려 온 기이한 향기가 맺혀서 보개(寶蓋)가 되었고, 맑은 물에 비친 달은 금빛으로 흔들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한밤중이 되었다. 비환이 슬쩍 졸자 벽봉장로가 살그머니 손가락 하나를 펴서 땅바닥에 조그마한 원을 그렸다. 그 원은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오묘한 점이 많았다. 잠시 후 벽봉장로가 “어험!” 기침을 하자 비환이 깜짝 놀라며 깨어났다.

“이런, 이런! 위험해! 위험해!”

“왜 또 헛소리를 하는 게냐?”

“호수가 아니라 장강과 황하, 회수, 제수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사부님께서 또 좋은 경험을 시켜주신 게로군요.”

벽봉장로는 또 모르는 체하며 물었다.

“무슨 좋은 경험을 시켜주었다는 게냐?”

“제게 ‘사독’을 구경시켜주셨잖아요!”

“그럼 거기서 무슨 신들을 만났느냐?”

“장강에서는 광원순제왕(廣源順濟王)을 만났는데, 전국시대 초(楚)나라에서 대부(大夫)를 지낸 굴원(屈原)이었습니다. 황하에서는 영원홍제왕(靈源弘濟王)을 만났는데 한나라 때의 진평(陳平)이었고, 회수에서는 장원영제왕(長源永濟王)을 만났는데 당나라 때의 배열(裴說)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수에서는 청원박제왕(淸源博濟王)을 만났는데 그 역시 초나라에서 대부를 지낸 분이었습니다.”

“강물을 보니 어떠하더냐?”

“그 강들은 이러했습니다.”

運行不息妙流通 쉽 없이 흘러 오묘한 흐름 통하나니
逝者如斯本化工 흘러 가 버림이 이와 같은 것은 조물주의 뜻이라.
動樂有機春潑潑 즐김에는 때가 있어 봄기운 무르익었으니
虛明無物劍空空 텅 비어 아무 것도 없으니 칼질도 부질없네.
深源自出先天後 깊은 원류는 세상이 만들어진 뒤부터 절로 나왔고
妙用原生太極中 오묘한 쓰임은 원래 태극 속에서 생겨났다네.
尼聖惜形川上歎 공자도 죽음을 슬퍼하여 냇가에서 탄식했나니
續觀瀾者越何窮 훗날에 그 물결 보는 이가 어찌 없어지랴?

“그래, ‘오악’과 ‘사독’을 보고 나니 어떤 생각이 드느냐?”

“아직도 마음에서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누가 너를 속박했느냐?”

“속박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오악’은 왜 그리 높은지 모르겠습니다.”

“교만의 산보다 높이 솟아 법계(法界)를 가리려는 게지.”

“그럼 ‘사독’은 왜 그리 깊은지요?”

“탐욕의 바다보다 세찬 파도로 욕망의 물길을 삼키려는 게지.”

“높은 산의 우거진 숲과 대밭, 땅에 가득 피어난 꽃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자, 들어봐라.”

靑靑翠竹 푸르디푸른 대나무는
總是法身 모두 법신(法身)이요
鬱鬱黃花 울창한 국화도
無非般若 반야(般若)의 진리가 아닌 것이 없느니라.

“그 자체로 법신이고 반야의 지혜라면 왜 산은 무너지기도 하고 꽃은 지는 것입니까?”

“욕념(俗念)이 그치면 덧없는 환상의 세계(속세)도 저절로 편안해지고, 속세의 때가 사라지면 덧없는 꽃도 저절로 지기 마련이니라.”

“그러면 저 네 강의 물들이 쉼 없이 흐르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강에 새로운 물이 어디 있으며, 물이 어찌 옛 강에 있을 수 있겠느냐?”

“물이 넘치지만 흐르지 않는 때도 있으니, 이건 또 어찌 된 일입니까?”

“이런 말도 못 들어보았느냐?”

禪河隨浪靜 선의 강물은 물결을 따라 고요해지고
定水逐波淸 고인 물은 파도를 좇아 맑아지는 법이라.

“이렇게 오묘한 점이 들어 있다면, 왜 저로 하여금 꿈속에서 다녀오게 하셨습니까?”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

一夕之夢翱翔百年 하룻밤의 꿈에 백년의 평생을 날고
一尺之鏡洞形千里 한 자 거울이 천리의 형상을 환히 비춘다.

이런 말을 들은 비환은 바람에 연기가 쓸려 사라지듯, 눈에다 끓는 물을 붓듯이 의혹이 사라지며 환히 깨달았다. 벽봉장로는 제자가 스스로 범속한 경지를 뛰어넘어 성인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얘야, 깨달은 바가 있느냐?”

“예.”

“그래, 무얼 깨달았느냐?”

“바로 이것입니다.”

空華三界如風卷烟 덧없는 삼계(三界)는 바람에 쓸리는 안개와 같고
幻影六塵如湯沃雪 환영에 지나지 않는 속세는 뜨거운 물 부은 눈처럼 사라져 버리지!

“과연 깨달았구나. 하지만 네 법명은 깨달음과는 조금 거리가 있구나.”

“제 법명이 정과(正果)에 어긋난다면 사부님께서 하나 지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걸 짓긴 해야겠다만, 네 스스로 하나 지어보고, 나도 하나 지어보는 게 어떠냐?”

“사부님께서 먼저 말씀해 보십시오.”

“얘기하지 않으련다.”

“그럼 제가 어떻게 압니까?”

“나한테 달리 방도가 있느니라.”

“그게 무슨 방도인데요?”

“우리 둘이 지은 법명을 각자 손바닥에 적도록 하자꾸나.”

“하하, 이야말로 ‘심심상인(心心相印)’의 방법이겠군요.”

스승과 제자는 각자 붓과 먹을 준비해서 두 글자의 법명을 썼다.

“네가 먼저 손을 펼쳐 보여봐라.”

“사부님께서도 손을 펼쳐 보이십시오,”

벽봉장로는 손을 바깥으로 옮겨놓고 말했다.

“내 손은 여기 있으니, 네 손을 먼저 펼쳐 보이도록 해라.”

“사부님 먼저 펼쳐 보이시지요.”

이렇게 서로 미루다가 둘이 함께 손을 펼치고 보니 두 손바닥에 똑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다만 그것은 예전의 법명과 발음은 같지만 글자는 다른 것이었다. 그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비(非)’와 덧없는 환상의 ‘환(幻)’이었다. 벽봉장로는 제자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딱 들어맞는 것을 보자 무척 기뻐했다.

“이제부터 네 법명은 ‘비환(非幻)’이니라.”

벽봉장로의 제자인 이 비환이 바로 훗날 무애영선사(無涯永禪師)라고 불리게 되는 분이다. 비환이 물었다.

“두 개의 법명은 발음이 같은데 왜 하나만 써야 하는 겁니까?”

“너도 알다시피 자성(自性)이 미혹되면 중생이요, 자성을 깨우치면 부처이며, 자비로우면 관세음보살이요, 기꺼이 버릴 줄 알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며, 청정할 수 있으면 석가모니요, 공평하고 바르면 아미타불이 아니더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환은 육신은 비록 동녘 땅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서천으로 날아갔다. 이에 그는 황급히 부처님께 귀의하여 절을 올렸다. 그때 차를 날라 오던 차두(茶頭)가 비환이 경건하게 참배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어 정과에 귀의하게 되었다. 이에 그가 황급히 소리쳤다.

“정두(淨頭) 형님, 얼른 방석을 가져와서 작은 스님을 싸도록 해요!”

“무슨 일이야? 왜 작은 스님을 방석으로 싸라는 거야?”

“작은 스님이 오늘 아침에 득도하셨어요.”

“득도하셨는데 방석이 왜 필요해?”

“아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는다.[朝聞道夕死]’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요?”

벽봉장로가 그 말을 듣고 차두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나하고 같이 서쪽 뜰에 가서 구경이나 하고 오자꾸나.”

“거기서 뭘 구경한다는 겁니까?”

“과일나무의 열매가 익었는지 보자는 게지.”

“조금 전에 거기서 왔는데, 뜰에 가득한 과일나무에 과일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더군요.”

“그럼 어서 가서 따야 하지 않겠느냐?”

벽봉장로는 즉시 법회를 정리하여 마무리 짓도록 했다. 이미 이 법회가 칠칠 사십구 일에 이르렀는지라 하늘에는 일체의 보련화운(寶蓮華雲)과 견고향운(堅固香雲), 무변색루각운(無邊色樓閣雲), 각양각색의 묘의운(妙衣雲), 한없이 청정한 전단향운(旃檀香雲), 오묘하고 장엄한 화개운(寶蓋雲), 소향운(燒香雲), 묘만운(妙曼雲), 청정하고 장엄한 패운(貝雲)이 피어났다. 그리고 이 법회에 모인 일체의 비구승(比丘僧)과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사중(四衆)’이 청정법신(淸淨法身)과 원만보신(圓滿報身),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을 이루었다. 또한 이 삼신(三身) 안에 일체의 과거심(過去心)과 현재심(現在心), 미래심(未來心)이 갖춰지고, 삼심(三心) 안에도 일체의 본래 고요하고 한없이 통달한 진정한 지혜, 일체의 자각무명(自覺無明)이라고 번뇌를 끊어버리는 내적 지혜, 일체의 근문(根門)을 분별하고 속세의 본질을 인식하는 외적 지혜가 갖춰졌다. 또한 비구승과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사중’의 머리 위에는 일체의 불사의(不思議)를 핵심으로 하는 《유마경(維摩經)》과 무임(無任)을 핵심으로 하는 《금강경(金剛經)》, 일체의 법계(法界)를 핵심으로 하는 《화엄경(華嚴經)》, 일체의 불성(佛性)을 핵심으로 하는 《열반경(涅盤經)》이 얹혀 있었다. 또 ‘사중’들은 각기 일체의 금륜보(金輪寶)와 백상보(白象寶), 여의보(如意寶), 옥녀보(玉女寶), 주장보(主藏寶), 주병보(主兵寶), 감마보(紺馬寶)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청정하면서도 오색 꽃처럼 아름다운 일체의 은색세계(銀色世界)와 금색세계(金色世界), 보색세계(寶色世界), 묘색세계(妙色世界), 연화색세계(蓮花色世界), 첨포색세계(檐葡色世界), 우담바라화색세계(優曇鉢羅花色世界), 금강색세계(金剛色世界), 파려색세계(頗黎色世界), 평등색세계(平等色世界)가 펼쳐졌다. 이 때문에 여러 불자들은 모두가 보리(菩提)의 깨달음을 얻어 마음이 맑은 거울처럼 깨끗하게 세상의 진리를 비춰볼 수 있게 되었다. 차두와 반두, 채두, 화두, 정두도 모두 죄악의 꽃이 시들어 떨어지고, 인과의 업(業)이 바람에 날려가 사라져 버렸다. 원숭이와 새들도 육시(六時)에 맞춰 찾아와 참배하며 모두들 보시를 받았으며, 금빛 터럭을 가진 사자[金毛獅子]와 뿔 없는 무쇠 소[無角鐵牛]도 모두 육신의 탈을 벗고 작은 방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항주성에서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온 성 어디든지 선하지 않은 곳이 없고, 남녀를 막론하고 선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찬불사(贊佛詞)〉라는 시가 이를 증명한다.

群相倡明茂 군중이 서로 경건히 살펴 덕을 쌓으니
四氣適淸和 사계절의 기운 맑고 조화를 이루네.
凌晨將投禮 이른 새벽이면 부처님께 나아가 참배하고
首宿事奢摩 저녁이면 선정(禪定)에 들어 수행하네.
閃居太陽來 어느새 태양이 떠올라
朗躍周九阿 온 세상을 두루 비추네.
諸天從帝釋 모든 신들 제석천(帝釋天)을 따르고
旌拂紛婀娜 깃발을 아름답게 휘날리네.
修羅戢怨刀 아수라는 원망의 칼을 거두고
波旬解障魔 파순은 마의 장애를 풀었네.
馥鬱旃檀樹 울창한 전단나무
彪炳珊瑚柯 아름다운 산호 가지
醍醐酿甘露 감로로 제호를 빚고
徐挾神飆過 느긋하게 신을 끼고 회오리바람을 타네.
千葉靑芙蓉 부용꽃처럼 푸른 잎
一一凌紫波 잎사귀마다 자줏빛 안개 일렁이네.
流鈴相間發 방울소리 들리고
寶座鬱嵯峨 높고 낮은 보좌가 가득 찼구나.
上有慈悲父 그 위의 자비로운 부처님은
金頂繡靑螺 정수리에 소라 모양으로 머리 틀었네.
端嚴八十相 단정하고 엄숙한 여든 개의 상을 지니셨으니
妙好一何多 하나같이 훌륭한 그 상은 얼마나 많은가!
微吐柔細旨 부드럽고 자상한 가르침 내리시니
雍和鳴鳳歌 봉황의 노래처럼 목소리도 온화하구나.
惠澤徹無間 은택이 무간지옥까지 두루 미치고
哀響遍婆娑 자애로운 목소리 사바세계에 두루 퍼지네.
密迹中踊躍 은밀한 행적 속에서 우뚝 나오나니
大士亦隗俄 보살들도 그 모습에 심취했지.
獨解舍利子 홀로 사리자를 해탈시키고
回心乾闥婆 건달파의 마음 돌리게 하셨지.
靈花散優鉢 신령한 우담화 꽃잎 뿌려지고
智果結庵羅 지혜의 인과는 엄라 열매로 맺혔네.
法鼓撞震方 법고가 사방을 울리고
慧燈導恒河 지혜의 등은 항하(恒河)의 길을 인도했지.
方廣詎由旬 그 넓이를 어찌 유순(由旬)으로 잴까?
成道僅剎那 도를 이루는 것은 겨우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네.
冥心歸眞諦 속된 마음 없애고 참다운 진리로 돌아가야지
毋使歎蹉跎 때를 헛되이 보냈다고 한탄하지 않으리라!

‘벽봉회’가 마무리되자 벽봉장로가 비구승과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등 불자들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서 법회를 잘 마무리 지었으니, 이 몸도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불자들이 일제히 “아미타불!” 하면서 여쭈었다.

“스님의 제도로 저희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가게 되었으니 그걸로 이미 한없는 공덕을 쌓은 셈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오리혀 경의를 표하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기 네 개의 뜰에 있는 과일나무에 열매가 가득 달렸기 때문이니라. 그 나무들은 내가 몇 년 동안 심은 것들이다. 그대들은 정원으로 가서 각자 하나씩 따 먹도록 하라. 그래야 이 몸이 그걸 심은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불자들은 감히 그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일제히 법회 자리를 떠나 서쪽 정원으로 갔다. 과연 그곳에는 과일나무가 가득 서 있고, 나무마다 열매가 가득 달려 있었다. 그들은 순서대로 한 사람이 하나씩 따서 먹었다. 개중에는 단 것도 있고 신 것, 쓴 것, 텁텁한 것도 있어서 맛이 각기 달랐지만 모두들 똑같이 제대로 된 열매[正果]였다. 그들은 꿰인 생선처럼 줄을 이어 법회 자리로 돌아가면서 하나의 법회는 마무리되었지만 영원히 끝나거나 쉬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벽봉장로는 이미 제자인 비환을 데리고 다른 복된 땅을 찾아 떠나 버린 뒤였다.

한참 길을 가는 도중에 비환이 말했다.

“사부님, 저번의 그 시에 대해 좀 더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야 엉뚱한 곳에 헛걸음을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게 바로 어떤 산을 가리킨다는 걸 모르겠느냐? 그 산에는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앞쪽에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것이 대왕봉(大王峰) 또는 천주봉(天柱峰)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예전에 위왕자건(魏王子騫)과 장담(張湛)등 열세 명이 모두 이 봉우리 아래에서 득도하고 이 봉우리 안의 골짝에 살았지. 그곳은 그냥 석실(石室)이긴 하지만 하나의 별천지여서, 그 안에 해와 달과 별들 및 산천과 강물들이 있었지. 봉우리 위에는 측백나무와 잣나무 대나무가 우거졌고, 신선세계의 귤나무와 살구나무가 자라고, 영원히 죽지 않는 영지(靈芝)를 비롯한 기화이초들이 자라고 있었지. 그래서 그 아이의 시에 ‘동굴 속 신령하고 괴이한 신선이 열셋[洞中靈怪十三子]’이라고 했던 게야.”

“그 구절이 그런 뜻이군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아름다운 산[天下瑰奇第一山]’이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그 구절도 합쳐서 얘기한 것이지.”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이 산에는 신선이나 귀신이 깎은 듯한 벼랑과 푸른 물이 흐르고 있으니 용이나 호랑이가 살고, 말들이며 무지개가 깃드는 천하제일의 산이라는 얘기지.”

“그럼 ‘자욱한 구름 밖에서 뱃노래 호탕하게 부르는[棹曲浩歌蒼靄外]’ 풍경은 어디 있나요?”

“이 산 아래 아홉 굽이 계곡이 그윽하게 감싸도 도니, 멋진 배를 띄우고 오가면서 휘파람 불고 호탕하게 노래하면 산과 골짝이 진동하지. 그러니 그 표현이 딱 맞지 않느냐?”

“그럼 ‘자줏빛 노을 속에서 만정(幔亭)에 모여 고상한 잔치 벌인다[幔亭高宴紫霞間]’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요?”

“대왕봉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면 만정봉(幔亭峰)이 있는데, 진시황 때에 옥황상제께서 황태모(皇太姥)와 위왕자모, 무이군(武夷君)을 위해 허공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그 위에 만정(幔亭)을 세웠는데, 오색찬란한 건물 중간에는 홍운인(紅雲裀)과 자하욕(紫霞褥)을 깔았지. 그리고 그곳에 살던 이들을 초청해서 ‘증손주(曾孫酒)’라는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었지. 그 자리에서 선녀들은 〈빈운곡(賓雲曲)〉을 부르고 ‘익운요(搦雲腰)’라는 춤을 추었지. 나중에 이들 남녀가 다리 위에서 술을 마셨는데, 모두 이삼백 년을 살았거든. 그래서 그런 시 구절을 쓴 게야.”

“사부님, 이 산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인데, 이 산에 다른 이름도 있습니까?”

“옛날에 무이군이라고 자처하는 신선이 이 산에 살았기 때문에 무이산이라고 부르지.”

“그럼 그 시 속의 산이 무이산인 건 알겠는데, 그 아이는 대체 그 산의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내려가 보면 찾을 방법이 있을 게다.”

벽봉장로는 법력이 대단해서 공중에 올라가고 싶으면 올라가고,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갈 수 있었다. 그가 막 금빛 광채를 거두고 나자, 마침 계곡의 여섯 굽이 계곡물 왼쪽에 있는 자그마한 봉우리에 도착했다. 그 봉우리 위의 돌들은 모두 신선의 손바닥처럼 생겼는데, 붉게 빛나면서 자줏빛 안개를 꽃처럼 피워내고 있었다.

‘신선이 남긴 이 손바닥은 열 손가락이 모두 봄날 파처럼 곱고 반야의 지혜가 담겨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그가 비환을 불렀다.

“얘야, 이것 좀 봐라.”

비환은 사부의 부름에 황급히 다가가 공손히 절을 했다. 그런데 벽봉장로가 고개를 들고 보니, 두 명의 비환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어떤 귀신이 장난을 치는 게로군.’

속으로야 그런 눈치를 챘지만, 벽봉장로는 자비를 근본으로 삼고 상대에 맞춰 깨달음을 주는 것을 중시했기 때문에 전혀 노여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인자하게 입을 열었다.

“비환아!”

그러자 두 명의 비환이 일제히 대답했다.

“예!”

“누가 진짜 비환이냐?”

두 명의 비환이 동시에 대답했다.

“제가 진짜입니다!”

“진짜 비환이 왼쪽으로 서도록 해라.”

그러자 두 명의 비환이 일제히 왼쪽으로 갔다.

“진짜는 오른쪽으로 서도록 해라.”

다시 두 명의 비환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갔다.

“진짜가 가서 저기 신선의 손바닥[仙人掌]을 짊어지고 와라.”

이 선인장은 별것이 아니었지만 수많은 요괴들이 나서서 짊어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알고 보니 이 여섯 개의 신선의 손바닥은 모두 돌덩이였는데, 그 생김새가 신선의 손바닥 같았고 그 위에 지문까지 찍혀 있었다. 돌덩이 하나의 무게는 대략 천백 근쯤 되었다.

“진짜 비환은 저 신선의 손바닥을 가져오너라.”

그러자 여섯 명의 비환이 나타나 여섯 개의 돌을 하나씩 짊어지고 왔다. 조금 전보다 네 명이 더 늘어난 것이었다. 벽봉장로가 봉우리에 앉아 지혜의 눈을 뜨고 살펴보니, 이 여섯 가운데 둘은 사람이고 넷은 귀신이었다.

‘물이 흐리면 연어와 물고기를 구별할 수 없고, 물이 맑아야 둘의 실체가 드러나는 법[渾濁不分鰱共鯉, 水淸方見兩般魚]이지. 정문일침(頂門一鍼)을 날려줘야 되겠구나.’

그가 다시 분부를 내렸다.

“그걸 이리로 가져오너라!”

여섯 명의 비환이 각자 신선의 손바닥을 짊어지고 재빨리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을 들고 그들을 향해 휘두르자, 산과 골짝이 울리면서 학이 울고 원숭이가 울부짖었다. 그러자 두 명의 비환만 남고 나머지 넷은 모두 거꾸로 심은 파처럼 폭포 속으로 처박혀버렸다. 그걸 보자 벽봉장로는 사정을 환히 알게 되었다.

“비환아!”

두 명의 비환이 또 일제히 대답했다. 벽봉장로가 살며시 입을 벌리고 입김을 훅 불자 맑은 바람이 두 비환의 얼굴을 쓸면서 죄업의 꽃과 열매를 모조리 없애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생김새가 다른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비환이었고 하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말을 하지 못했다. 벽봉장로는 요사한 기운이 너무 무거워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다시 그들에게 입김을 훅 불었다. 다시 맑은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쓸었다. 비환은 그제야 옆에 있는 이가 자신의 제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화도 나고 너무 기쁘기도 했다.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게냐?”

그러자 운곡이 대답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깊은 사정이 있습니다.”

“그런 사정 따위는 말할 필요 없어. 사조님께서 위에서 지켜보고 계시거든.”

운곡은 ‘사조’라는 말에 움찔 놀라더니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올렸다. 사조와 사부에게 절을 올리고 나자 비로소 불문의 제자다운 모습이 나타났다. 이 운곡은 벽봉장로의 사손(師孫)로서, 훗날 ‘무진부선사(無盡溥禪師)’라고 불리게 된다. 비환이 안탕산에서 시를 본 일과 무이산으로 찾아 나선 연유를 자세히 들려주자, 운곡은 그저 연신 “아미타불, 아미타불!”을 읊조릴 뿐이었다. 이어서 벽봉장로가 물었다.

“그래, 조금 전에 말한 사정이란 게 무엇이냐?”

운곡이 대답했다.

“사부님과 작별한 후 저는 인간 세계를 두루 돌아보며 산수와 숲, 바위들과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숲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좋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더군요.”

“훌륭한 결과란 많은 고생 끝에 나오는 법이지.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더냐?”

“이 산에는 예로부터 한 가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무슨 내용이더냐?”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溪曲三三綠 굽이굽이 아홉 계곡 녹음이 울창하고
峰環六六靑 둘러싼 서른여섯 봉우리도 푸르구나.
三三都見鬼 아홉 굽이에는 모두 귀신이 나타나고
六六盡埋精 서른여섯 봉우리엔 모두 정령(精靈)이 묻혀 있네.

“허허, 요괴와 귀신이 그리 많더란 말이냐?”

“많기도 할뿐더러 아주 대단한 놈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신선의 손바닥을 짊어지고 왔던 그놈이더냐?”

“그놈은 손자뻘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그 큰 놈은 산속에 있느냐 물속에 있느냐?”

“바로 이 아홉 굽이 계곡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생겼느냐?”

“언제나 배 모양으로 변해서 물 위에 나타나 있다가, 사람들이 멋모르고 타면 잡아가버립니다. 그놈이 나타날 때면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면서 음산한 바람이 불거나, 내리던 비가 갑자기 그치면서 구름이 걷혀버립니다. 신통력이 아주 크고 변화무쌍합니다. 저도 그놈의 성질을 건드렸다가 몇 년 동안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놈은 물속에 산다는데, 너한테 어떻게 수작을 부린 게냐?”

“물속에서는 손을 쓰지 못하니까 변신술을 써서 벼랑 위로 찾아왔습니다.”

“조금 전에 네가 사부에게 손을 쓴 것은 무엇 때문이냐?”

“사부님께 손을 쓰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 괴물이 늘 졸개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사조님이나 사부님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제가 여러 차례 그놈하고 힘을 쓰거나 꾀를 써서 싸우고, 보물로 겨루고, 신통력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오늘은 진짜 사조님과 사부님께서 찾아오신 겁니다.”

“오늘은 왜 나타나지 않은 거냐?”

“그놈은 칠칠 사십구 일 동안 와 있다가 또 칠칠 사십구 일 동안 떠나 있습니다. 오늘 이 졸개 요괴들이 사부님께 방해를 받았으니, 분명히 그놈한테 보고하러 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놈은 사십구 일 뒤에나 나타날 것입니다.”

“그놈의 출신 내력은 알아보았느냐?”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벽봉장로는 비환을 왼쪽에, 운곡을 오른쪽에 세우고 몇 마디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알록달록 옷을 차려입은 문인과 무사, 늙은이와 젊은이, 키 큰 이와 작은 이들이 나타났는데, 사람인지 신선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었다. 비환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들은 온 몸에 눈부신 금빛을 두르고 봉우리 위에 앉아 있는 벽봉장로와 자줏빛 구름을 타고 공중에 떠 있는 제자를 발견하고 모두들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앞으로 다가왔다. 비환이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각자 성함을 말씀해 보시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더니, 하나씩 이름을 밝혔다.

“동방게체(東方揭諦)가 인사 올립니다.”

“서방게체(西方揭諦)가 인사 올립니다.”

“남방게체(南方揭諦)가 인사 올립니다.”

“북방게체(北方揭諦)가 인사 올립니다.”

“중방게체(中方揭諦)가 인사 올립니다.”

“일유신(日遊神)이 인사 올립니다.”

“야유신(夜遊神)이 인사 올립니다.”

“순산라후(巡山邏候)가 인사 올립니다.”

마지막에 있던 늙고 키도 작은데다가 다리까지 저는 이가 절뚝거리며 다가와 절을 올렸다.

“이 지역 토지신이 인사 올립니다.”

벽봉장로가 말했다.

“토지신은 앞으로 나오라.”

토지신이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오자 벽봉장로가 물었다.

“이 산에는 무슨 요괴들이 있느냐?”

“자잘한 정령이나 요괴는 몇 수레나 될 정도로 많고, 제법 그럴싸한 정령이나 요괴는 바구니나 상자 몇 개를 채울 정도로 많지만, 대단한 요괴는 하나밖에 없는데 아주 염라대왕 같습니다.”

“얼마나 사나운데 그러느냐?”

“그놈만 사나울 뿐 아니라, 온 집안의 형제들이 전부 병사들입니다.”

그 요괴의 형제들이 어떤 놈들인지, 나중에 벽봉장로가 그놈들을 어떻게 항복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