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대한 상념

라오서老舍(1899∼1966년)
원래 이름이 수칭춘舒庆春이고, 자는 서위舍予이다. 만주족 정홍기인正红旗人 사람이다. 중국의 현대소설가, 극작가로, 신중국 최초로 인민예술가의 호칭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소설 『뤄퉈샹쯔骆驼祥子』, 『사세동당四世同堂』》, 희곡 『차관茶馆』 등이 있다.

만약 나더러 베이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라고 한다면, 겁날 게 없다. 내가 아는 바를 점검하면서 쓰고 내가 모르는 것은 피하면 되기 때문이다. 베이징 전체를 하나하나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쩔 도리 없다. 베이징은 그만큼 땅이 크고, 사건도 많아 내가 아는 게 정말 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여기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까지 공부하다 떠났다. 명승지로 말하자면, 타오란팅陶然亭에 가본 적도 없으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이걸로 유추해 보건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나의 베이징’일 따름이고, 나의 베이징은 아마도 구우일모九牛一毛 격일 것이다.

타오란팅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베이징 시민들

그러나 나는 베이징을 진정 사랑한다. 이 사랑은 말하려 해도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얼마만큼? 말로 다할 수 없다. 어머니가 좋아하실 일을 하고 싶을 때는 나 홀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머니의 건강에 생각이 미쳐 마음이 놓이지 않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말로는 내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홀로 미소 짓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약간이나마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따름이다. 내가 베이징을 사랑하는 것도 이와 흡사하다. 이 고성의 어느 일면을 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것은 베이징을 너무 작게 보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베이징은 말단지엽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나의 심령과 통째로 결합되어 있는 일단의 역사다. 커다란 땅덩어리, 몇몇의 풍경과 명승지, 비 내린 뒤의 스차하이什刹海의 잠자리로부터 내 꿈속의 위취안산玉泉山의 탑 그림자까지 모든 것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진다. 작은 사건 하나하나에 내가 있고, 나의 상념 하나하나에 베이징이 있는데, 말로 다할 수 없을 따름이다.

진정 원하노니 시인이 되어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글자들을 나의 심혈에 침투시켜 두견새와 같이 베이징의 뛰어남을 토해내고 싶다. 아! 나는 시인이 아니다! 나는 영원히 나의 사랑, 음악과 그림으로 이끌어낸 듯한 사랑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이것은 베이징을 저버리는 것일 뿐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미안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최초의 지식과 인상을 모두 베이징에서 얻어왔기 때문인데, 내 혈액과 성격, 기질 속의 수많은 것들이 이 고성에서 부여받은 것이다. 나는 상하이와 톈진을 사랑할 수 없다. 내 마음 속에는 베이징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로 다할 수 없다!

런던, 파리, 로마와 이스탄불은 유럽의 4대 ‘역사 도시’로 불렸다. 나는 런던의 사정을 약간 알고 있고, 파리와 로마는 가본 적이 있지만, 이스탄불은 근본적으로 가본 적이 없다. 런던이나 파리, 로마에 대해 말하자면, 파리가 베이징에 좀 더 가깝다. 하지만 나더러 ‘파리에 살라’고 한다면, 나는 집이 없는 것과 같은 적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보건대 파리는 너무 번잡스럽다. 당연히 그곳에도 광활하고 고요한 곳이 있긴 하지만 너무 광활하다. 베이징은 복잡하면서도 변두리가 있고, 내가 만져볼 수 있는 고성의 붉은 색 담장 같은 것이 있다. 지수이탄積水潭을 마주하고 성벽을 등 뒤로 한 채, 돌 위에 앉아 물속의 작은 올챙이나 갈댓잎 위의 하늘하늘한 잠자리를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 종일 앉아 있노라면, 마음속이 온전히 편안해지고 추구하는 바도 두려운 것도 없이 요람 속에서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와 같아진다. 그렇다. 베이징에도 번잡한 곳이 있지만 태극권과 같이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 파리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자극을 위해 커피와 술이 필요하다. 베이징에서는 따스한 쟈스민차만 있으면 충분하다.

파리의 배치는 런던에 비해 훨씬 더 균형이 잡혀 있지만, 베이징에는 훨씬 못 미친다. 베이징은 인위적인 가운데 자연스러움이 드러나 있어 거의 어느 곳이든 그렇게 부대끼지도, 그렇게 편벽되지도 않다. 가장 작은 후통 속의 집에도 정원과 나무가 있고, 가장 광활한 곳이라 해도 상업가와 주택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배치법이 천하제일이다. 베이징의 장점은 곳곳이 설비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는 데 있지 않고, 곳곳이 비어 있어 사람이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데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다수 있는 데 있지 않고, 건축물 사방에 비어있는 곳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는 데 있다. 성루 하나하나, 패루 하나하나가 모두 아주 멀리서도 보인다. 하물며 길거리에서 베이산北山과 시산西山을 볼 수 있음에랴!

배움을 좋아하고 오래된 물건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베이징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여기는 책도 많고 골동품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배움을 좋아하지 않고, 골동품을 살 돈도 없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라면 나는 오히려 베이징에 꽃과 채소, 과자가 많은 것을 좋아한다. 화초는 돈이 드는 완상물이지만, 이곳의 ‘화초’는 아주 값이 싸며 집집마다 정원이 있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정원에 꽃을 심을 수 있고,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긴 해도 그런 대로 볼 만하다. 담장 위의 나팔꽃, 산대나무, 쟈스민은 모두 그다지 돈과 품을 들이지 않고도 나비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다! 푸른 채소와 배추, 편두콩, 청대콩, 오이, 시금치 등등은 대부분 성 밖에서 지고 와서 집 앞까지 가져온 것들이다. 비가 온 뒤에는 왕왕 부춧잎 위에 비 내릴 때 튀긴 진흙이 점점이 묻어 있기도 하다. 푸른 채소 매대 위의 붉은 색과 녹색은 거의 시처럼 아름답다. 과일들은 시산과 베이산에서 온 것이 많은데, 시산의 능금과 해당海棠, 베이산의 대추와 감은 성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흰 서리가 한 겹 씌워져 있다. 흠, 미국의 오렌지는 종이에 싸여져 있는데, 베이징의 서리 앉은 자두를 만나면 부끄럽지 않을까!

그렇다. 베이징이라는 도성에는 이곳 토종의 꽃과 채소, 과일들이 많이 있어 사람들이 더욱 자연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 이면을 말하자면, 하루 종일 매연에 휩싸여 있는 런던의 공장도 없고, 그 외면을 말하자면, 원림과 채소밭이 농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확실히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주워들고采菊東籬下’ ‘망연히 남산을 바라볼悠然見南山’ 수 있다. 아마도 ‘남’자를 ‘서’나 ‘북’자로 바꾸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리라. 나같이 빈한한 사람이라도 베이징에서는 약간의 맑은 복을 누릴 수 있다.

그래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기로 하자! 눈물이 나려 한다. 진정 베이징이 그립구나!

1936년 12월 우주풍사宇宙風社 출판『북평일고北平一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