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와 망년회

며칠 전 EBS 초급 중국어 방송에서 ‘망년회’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방송국 홈페이지 게시판에 아래와 같은 의견이 올라왔다. 방송에서 ‘송년회’라고 말을 했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쟁은 없었겠지만, ‘망년회’라고 이야기한 덕분에 ‘망년회’라는 낱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하다.

— 게시판 의견 —————————————————————
– 우리나라에서도 망년회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긴 말보다는 송년회라는 말로 순화했습니다. 진행자분께서는 우리나라가 송년회가아니라 망년회라는 말을 사용한다고하셔서 깜짝놀라네요.

– 송쌤이 망년회라는 단어를 쓰셔서 좀;;; 
—————————————————————————–

나 역시 ‘망년회’가 ‘송년회’로 순화 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순화된 이유가 일본어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망년회’라는 말에 아무런 부정적인 느낌이 없다. 사람들은 왜 ‘망년회’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할까? 내가 ‘망년회’를 ‘보넨카이(ぼうねんかい)’라고 일본어로 발음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사실 ‘망년회’는 아무 죄가 없다. 방송과 뉴스에서 ‘망년회’라는 낱말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송과 뉴스에서는 왜 ‘망년회’라는 말을 없애려고 할까? 뭔가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이 ‘망년회’에 부정적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까닭은 ‘망년회’의 발음에서 ‘망하다’라는 의미가 연상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망년회’는 한자로 ‘忘年會’라고 쓴다. ‘亡年會’가 아니다. 잊을 망(忘)자를 써서 1년 동안 안 좋았던 기억을 다 잊고 새로운 새해를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냥 세월을 보내는 ‘송년회’(送年會) 보다 안 좋은 기억을 잊고 보내자는 ‘망년회’가 오히려 더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은가? ‘망년회’라는 말을 없애지 말고 흥청망청 마시고 취하는 연말 풍속을 없애는 것이 먼저다.

‘망년회’를 ‘송년회’로 순화한 또 다른 이유는 ‘망년회’가 일본어에서 온 낱말이라 일본제국주의의 잔재를 없애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언하건데 우리말에서 일본어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나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사진(寫眞)’도 일본어이고, ‘영화(映畵)’도 일본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모두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사진’이나 ‘영화’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망년회’라고 말하면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망년’이라는 표현도 일본어에서 건너오기 전에 중국의 <후한서>나 <삼국연의>에도 나오는 표현이며, 우리 조선시대 문헌에도 나온다. 여기서 ‘망년’은 ‘나이를 잊다’라는 뜻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 사람의 재주나 인품을 보고 사람 사귀는 것을 ‘망년지교(忘年之交)’라 한다. 중국의 한자어가 일본으로 전해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가 변하거나 새로운 의미가 생겼고, 새로운 의미를 담은 낱말이 다시 또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경제’라는 낱말도 마찬가지다. 중국어에서는 원래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이었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후에 ‘이코노믹’이라는 뜻이 생긴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묵’이라고 하지 않고 ‘오뎅’이라고 말하면 완전히 매국노 취급당한다. 사실 알고 보면 ‘어묵’과 ‘오뎅’은 다르다. ‘어묵’은 ‘오뎅’에 들어가는 하나의 재료일 뿐이다. 일본 인터넷에서 ‘오뎅’을 검색만 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 오뎅에는 大根(무), ゆで卵(삶은 달걀), ちくわ(치쿠와), さつま揚げ(사쯔마아게), こんにゃく(곤약), 昆布(다시마), しらたき(시라타키) 등 여러 가지가 재료가 들어간다.

만약 ‘오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많이 느낀다면 한 발 양보해서 ‘어묵’이라고 하기로 하자. 그럼 ‘우동’은 어쩌란 말인가? ‘우동’도 엄연한 일본말이다. 우리가 ‘우동’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하면서 ‘오뎅’만 미워한다면, ‘오뎅’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오뎅’이 불쌍하다.

‘오뎅’은 ‘오뎅’이다. ‘오뎅’을 억지로 ‘어묵’이라고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일본어의 잔재를 없애는 것보다 정확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언제까지 ‘오뎅’만 붙잡고 싸우고 있을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오뎅’을 ‘어묵’으로 순화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우리 사회의 친일파를 처벌하는 것이다. 친일언론, 친일기업, 친일정치인, 친일문학가한테는 관대하고 너무 ‘오뎅’만 미워하는 것 같다.

‘오뎅’ 뿐 아니라 ‘요지’도 억울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이쑤시개’라고 하지 않고 ‘요지’라고 말해도 매국노 취급당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놓치는 것이 하나있다. ‘요지’는 일본말이기 전에 우리말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말이다. 
우리가 말하는 ‘양치질’은 원래 ‘양치질’이 아니고 ‘양지질’이었다. 고려시대 계림유사의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과거 칫솔이 없던 시절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해서 이를 닦고 청소했다. 우리말의 ‘양치질’은 원래 ‘양지질’이었고, 버드나무 가지를 의미하는 양지는 한자로 ‘楊枝’ 라고 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楊枝’를 일본어로 ‘ようじ'(요지)라고 발음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말의 ‘양지’가 일본으로 건너가 ‘요지’가 되었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요지’라는 말이 일본어라고 해서 쓰지 말자고 하는 것은 우리말 뿌리까지 부정하는 꼴이 된다면 지나친 것일까? 여기서 우리말을 되찾는 방법을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요지’의 뿌리는 우리말이니까 일본어의 ‘요지’를 다시 우리말로 만들어 보자.

방법은 간단하다. ‘버들 양(楊)’자에 독음을 하나만 추가하면 된다. ‘楊’을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쓸 때는 ‘양’으로 발음하고, 이쑤시개를 말할 때는 ‘버들 요’라고 발음하도록 사전에 등재하면 ‘요지’은 우리말이 될 수 있다. 언어는 살아있다.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이쑤시개’라고 4음절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요지’라고 발음하면 훨씬 경제적이고, 이를 쑤신다는 경박스러운 어감도 사라진다. 무조건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한다고 잘 사용하던 낱말을 없애지 말고 우리말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자. 우리 것이 아니라고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것으로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선조가 5천년 동안 사용해 온 한자는 중국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본어 잔재 청산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망년회’, ‘오뎅’ 그리고 ‘요지’와 같은 낱말을 사용하면 매국노 취급하는 것도 일종의 ‘프레임 전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어 낱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매국노 취급하면서 진짜 친일파 매국노들은 사회 곳곳에 숨어 들어간다.

참고자료

경남매일 

Y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