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경물

20세기 초, 중국의 그림신문에 연재된 ‘세계의 경물’ 코너

일상의 공간을 넘어선 다른 어떤 곳에 관한 경험과 지식은 지금-이곳을 규율하는 질서를 상대화함으로써 새로운 사유를 추동하고 대안적 삶을 꿈꿀 수 있도록 합니다. 19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의 중국, 일본, 조선은 밀려들어 오는 서구열강의 요구를 물리치지 못하고 하나하나 개항을 하게 됩니다. 비록 유럽인들처럼 먼저 나서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문호를 열어 세상을 마주하게 되긴 했지만, 그로 인해 가능해진 지리적 상상은 좀 더 나은 다른 삶을 사유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행동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지요.   영국과 치른 전쟁에서의 패배를 두고 고심하던 사람 중 가운데 하나인 웨이위안(魏源)이 엮은 《해국도지(海國圖志)》와 같은 책은 세계의 지리와 각 나라의 역사, 제도를 다룬 책으로 중국에서는 물론 조선과 일본의 개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진지한 저술이 한편에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보다 대중적인 호기심을 겨냥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도 있었지요. 특.히 19세기 후반, 서구의 선례를 따라 발간되기 시작한 화보(illustrated newspaper)의 많은 지면은 직접 가볼 수 없었던 나라 안팎 곳곳에서 일어나는 진기한 일들로 채워졌습니다. 상하이에 들어와 무역업에 종사하던 어네스트 메이저라는 영국인은 곧 벌이가 좋은 출판인쇄업으로 전환하는데, 큰 성공을 거둔 《점석재화보(點石齋畫報)》(1884)를 내기 전, 영국에서 발간되던 화보들의 판형을 그대로 가져와 시험적으로 발간한 《환영화보(寰瀛畫報)》(1877)의 경우 세계 곳곳의 경물을 주 내용으로 했습니다. 《점석재화보》는 중국 안팎의 신기한 사건들을 그려 보여주는 데 중심을 두고 있지만 해당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배경을 가능한대로 사실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방 안에 앉아 세계 도처를 여행하는 효과를 낳았지요.    1909년에 창간된 《도화일보(圖畫日報)》는 시사, 교양상식, 연예소식 등을 두루 포괄하는 종합지인데, 여러 고정난들 가운데 단연 으뜸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매일 첫 페이지를 장식한 ‘대륙지경물(大陸之景物)’ 코너였습니다. 여기서 ‘대륙’은 지구 또는 세계를 뜻합니다. 이 화보는 창간호 만평에 나타나는 것처럼 세계에 대한 지식을 표방하고 있었고 ‘대륙지경물’ 코너는 자연스레 이 매체의 대표 코너로 자리 잡아 종간 때까지 총 405개 화면을 통해 403군데 ‘경물’을 소개했습니다..

* 《도화일보》 첫 호(1909년 8월 16일)의 9면에 실린 이 ‘우의화(寓意畵)’는 이 간행물의 방향에 대한 일종의 시각적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지식을 상징하는 지구의와 그 위에 쓰여진 “環球圖畵”란 글귀를 사람들이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도화일보》의 시야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으며 그것이 추구할 ‘신지식’은 남녀노소, 각계각층, 동서양인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교양’임을 표방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계몽을 상징하는 밝게 빛나는 태양은 이 매체의 계도적 역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상하이도서관 소장본을 통해 이 화보의 표지 배경 그림이 몇 차례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대개 지구의를 그려 놓았다. 이는 ‘환구사(環球社)’라는 발행사의 명칭과도 관련되며 이 그림에서 표방하는 매체의 기본지향과도 관련된다.

  ‘대륙지경물’ 코너는 당시 그 누구도 함부로 엿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자금성 태화전(太和殿)을 보여준 첫 화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세계 도처의 가볼만한 곳들, 알아야 할 장소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세계 대부분의 장소를 다니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러 매체들의 주요 지면과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지구 곳곳의 다녀볼만한 곳들이지요. 뉴욕 맨하튼의 브로드웨이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거나 모르는 것이, 지구 온난화 때문에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거나 모르는 것이, 지금-여기 우리의 일상과 무슨 그리 대단한 상관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기실 우리가 세상을 보고 사유하는 폭과 상관이 있고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질과 상관이 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지리적 상상을 자극하는 화면들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유서 깊은 전문지가 아니더라도 신문, 잡지, 텔레비전, 그리고 웹과 같은 뉴미디어의 단골 메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발행지였던 상하이를 위시해서 중국 곳곳 독자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빼앗았으며, 나라 곳곳에서 혁명의 열기가 끓어올라 일상이 편치 않던 시절에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꿈꾸는 데 작은 동력이 되었을 그 화면들, 빛바랜 옛 지면상에 남아 있는 지구 상 곳곳의 경물들을 함께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날 우리가 꼽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몇 군데…’ 운운하는 곳들이 대개 망라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대체로 한 세기에서 한 세기 반 전에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점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군요.  

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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