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 사랑

山楂樹之戀

금년(2012년) 3월 12일부터 중국 장쑤 위성TV(江蘇衛視)에서는 첫사랑을 다룬 총 35집 드라마 『산사나무 사랑(山楂樹之戀)』(감독: 李路)을 절찬리에 방영하였다. 이 드라마는 재미 화교작가 아이미(艾米)의 동명 소설을 개편한 것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말기를 배경으로 청춘 남녀 라오싼(老三: 周建新)과 징추(靜秋)의 첫사랑 이야기를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인성(人性)보다는 계급성(階級性)이 인간 평가의 우위를 점하던 시절, 그리고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도 계급성에 따른 명확한 경계 긋기가 강요되던 시절, 그 팍팍한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순수하고 진실한 첫사랑은 풋풋한 청춘 남녀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 마니아들은 『산사나무 아래』라는 중국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벌써 재작년의 일이지만,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장이머우(張藝謀)의 『산사나무 아래』라는 영화가 바로 아이미의 동일한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올린 것이다. 궁리(鞏俐)와 장쯔이(章子怡)란 중국의 대표적 여배우를 발굴한 장이머우답게 『산사나무 아래』를 위해 새로 캐스팅한 남녀 배우 더우샤오(竇驍)와 저우둥위(周冬雨)도 풋풋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관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다만 여주인공 저우둥위가 너무 가련하고 나약한 이미지로만 일관되어 있어서 원작 소설에서 드러나는 주인공 징추의 글래머러스하고 억척스런 이미지가 거의 살아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었다. 물론 중국어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우리나라 관객들은 그냥 순수한 첫사랑 영화로만 관람하면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도 육체적 관계로 발전하지 않고 깨끗한 사랑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보듬어주며 육체적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다. 이 점에서도 이 영화는 그야말로 첫사랑 영화의 문법에 걸 맞는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더욱이나 남자 주인공 라오싼은 결국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는가? 물론 원작소설에서는 두 주인공의 베드신 대목이 매우 농도 짙은 러브신으로 처리되어 있다. 장이머우가 원작의 농염한 장면을 모두 걸러내고 애틋하고 청순한 이미지만 남긴 것은 그 나름의 첫사랑 영화 문법을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시도한 결과라고 할 만하다. 사랑과 욕망이 모두 즉흥적이고 금전적으로 소비되는 목전의 사회에서 이처럼 플라토닉한 사랑은 얼마나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꿈인가? 중국 대륙에서는 2010년 9월 16일 이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1억 6천만 위안(元)의 매출을 올렸으며, 문예 영화 장르 부문에서 중국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새로 썼다. 여세를 몰아 이 영화는 같은 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후보와 홍콩 금상장(金像獎) 아시아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중국 화표장(華表獎) 우수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위의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 소설 『산사나무 사랑(山楂樹之戀)』의 작가 아이미(艾米)는 재미 화교 작가이다. 원작 소설의 주인공 징추(靜秋)와는 친구 사이로 두 사람 모두 10대 후반에 가혹한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징추의 회고에 의하면 본래 문화대혁명이 끝난 직후 1977년에 징추 자신이 그녀와 라오싼의 첫사랑을 다룬 3만자 정도의 단편소설을 써서 『L성 문예(L省文藝)』에 투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도 문화대혁명의 여파가 짙게 남아 있던 비상 시기여서 ‘전투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가 반환되었고, 그 원고는 여러 번의 이사 과정에서 분실되었으며, 결국 당시의 생활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해둔 간단한 일기만 남아있었는데, 아이미는 징추의 그 일기를 바탕으로 『산사나무 사랑』이란 장편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징추가 『L성 문예』에 원고를 투고한 시기를 전후하여 1977년 류신우(劉心武)의 「담임선생(班主任)」과 1978년 루신화(盧新華)의 「상흔(傷痕)」이 발표된 것을 감안해보면, 만약 징추의 단편소설이 『L성 문예』에 발표되었다면 아이미 부친의 언급처럼 상흔문학 최초의 작품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징추와 라오싼의 청순한 첫사랑은 상흔문학이 유행한 1970년대 말에서 거의 30년도 더 지난 21세기의 벽두에 중국의 독서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2006년 인터넷(文學城) 소설로 연재될 때도 수많은 중국 독자들이 징추와 라오싼의 애증의 추이에 따라 웃음과 울음을 함께 하였다. 징추가 마지막 장면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라오싼의 손을 잡고 “저 징추예요. 저 징추예요.(我是靜秋. 我是靜秋)”라고 울부짖을 때, 해당 인터넷 페이지 앞은 그야말로 네티즌들의 눈물로 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후 이 소설은 2007년 『아주주간(亞洲週刊)』 선정 중국어 최우수 소설 1등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신주간(新週刊)』 선정 2007년 10대 감동 소설상을 수상하였으며, 또 같은 해 『당대(當代)』 잡지 2007년 독자 선정 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하였다. 계속하여 2009년 장쑤인민출판사(江蘇人民出版社)에서 이 책을 출판할 때도 초판을 무려 80만부를 찍었고, 이후에도 2쇄ㆍ3쇄를 거듭하면서 2010-2011년까지 소설부문 최고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산사나무 사랑』이라는 중국 소설ㆍ영화ㆍ드라마가 겉으로 보기에는 청춘 남녀의 애절한 첫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현대사에서 평행선을 그어온 두 가지 중요한 역사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산사나무’를 둘러싼 두 가지 전설에 연원을 두고 있다. 첫째 전설은 「산사나무」라는 러시아 가곡의 가사와 관련이 있다. “가장 용감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도대체 누구니?/ 사랑하는 산사나무야/ 내게 좀 말해주렴./” 아이미의 원작 소설 『산사나무 사랑』의 첫 번째 모티브가 되고 있는 러시아 가곡 「산사나무」의 여주인공은 앞의 가사처럼 멋진 두 청년을 동시에 사랑한다. 그러나 두 청년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산사나무에게 물어본다는 내용이다. 이 모티브는 이데올로기나 현실 조건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개인의 사랑을 의미한다. 이것은 집단과 계급을 강조해온 중화인민공화국의 주류 사상과는 매우 상이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모티브는 원작 소설 『산사나무 사랑』의 배경인 시춘핑(西村坪) 마을의 ‘산사나무’이다. 소설의 묘사에 의하면 이 산사나무는 본래 하얀색 꽃을 피우는 나무였는데, 항일 전쟁 기간 동안 일제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이 그 나무 아래 묻힘으로써, 열사들의 뜨거운 피가 나무뿌리에 스며들어 마침내 붉은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투쟁과 희생과 혁명을 강조해온 중화인민공화국 주류 사상의 저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징추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걸 맞는 새로운 교재를 편찬하기 위해 시춘핑으로 하방(下放)되고, 첫날 마을로 내려가는 산 고개에서 붉은 꽃을 피우는 산사나무 전설을 듣고 감동을 받지만, 그 투쟁과 혁명의 이미지는 거기에서 끝난다. 오히려 그 이후 칭추와 라오싼은 그 산사나무 아래에서 손을 잡고 첫 포옹과 첫 키스를 나눈다. 러시아 가곡 「산사나무」도 시춘핑 산사나무 주위를 계속해서 맴돈다. 더더욱 결정적인 것은 중국 당국의 무리한 지하자원 채굴 과정에서 백혈병을 얻은 라오싼이 그 산사나무 아래에 묻혀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에서는 공무로 희생된 유공자에 대한 예우 차원이겠지만, 라오싼의 입장에서는 첫사랑의 장소에서 징추와 영원히 만나기 위해 그곳에 묻히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투쟁과 혁명의 상징 핏빛 산사나무는 오히려 사랑과 그리움의 상징 산사나무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금전과 욕망과 소비와 즉흥적 쾌락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단편적이고 무감각한 현실을 멍청하게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꾸밈없고 청순한 사랑보다 더 큰 위안이 어디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초엽 독자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산사나무 사랑』은 목하 경제ㆍ사회 부문에서 무한경쟁에 지친 중국인들의 삭막한 심정을 사랑으로 어루만져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by 청청재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