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봉의 일생을 지도 한장에 그려보다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고 조선의 백성들을 군홧발로 짓밟은 채 개새끼(走狗)들을 앞세우고 피를 빨아먹을 때당연히 많은 선조들이 목숨을 던지면서 항일 독립 해방 투쟁을 벌였습니다.

조선 왕조를 회복하자는 것은 시대에도 맞지 않았고 독립운동의 실제 역량의 분포로 보아도 설 자리도 낄 틈도 없었지요.나라를 거덜낸 당사자가 조선 황실과 황후 집안이 합동했던 민씨 척족정권이었으니……

목숨을 던져서라도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독립운동 해방운동은, 크게 보면 20세기 초에는 국내외 <의병활동>으로 시작해서,

1910년대 만주 망명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력을 다한 <항일 혈전>이 이어졌습니다.3.1운동이 실패한 이후 1920년대 이후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할 때까지는 크게 보면 <김구의 임시정부> <김원본의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만주의 동북항일연군> 세 갈래라고 요약할 수 있을까요? 저의 부족한 지식과 임의의 직관으로는, 이렇게 이해됩니다.

그 가운데 2016년 1월의 1차 독립운동 답사여행을 준비하면서 거점으로는 황푸군관학교, 인물로는 김원봉의 일생을 집중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원봉 평전 등을 읽어보아도 그의 일생이 산뜻하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도 위에 요약을 해보았는데,.

이것도 넓디넓은 중국 땅에서,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갈래갈래 의견과 주의주장이 엇갈린 독립운동의 몇 갈래 줄기 속에서 김원봉의 독립투쟁 일생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지요 ^^

그래도 한번 시도해보았는데, 겨우 이런 정도로 그려지는군요. 이것 역시 이해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이것을 그리면서 제 머리 속에는 비교적 명료하게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저 혼자만 알아보는 지도일지도 모릅니다 ^^

밀양, 서울, 톈진, 류허, 지린,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상하이, 베이징, 난징, 우한, 구이린, 충칭, 서울, 평양으로 이어집니다.

청색 글씨는 김원봉의 일생을 요약한 것들이고, 적색 글씨는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의 경로를 표시한 것입니다. 조선의용대는 1941년 본대 대원을 제외하고는 북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김원봉이 구이린 충칭으로 가서 활동하고 있을 때 조선의용대는 김원봉과 헤어져 뤄양에서 황하를 도강해서, 팔로군과 합동으로 타이항산 지역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1944년 옌안으로 갔다가 1945년 8월 하순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자 북한으로 귀국했습니다.

by 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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